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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한국 기독교, 그리고 저널리즘
[325호 커버스토리]
[325호] 2017년 11월 28일 (화) 15:40:21 변상욱 CBS 대기자 goscon@goscon.co.kr
   
▲ 가짜 뉴스는 처음부터 왜곡할 의도를 갖고 만들어져, 미디어 수용자들을 특정 목적에 맞추어 선동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bay.com)

‘가짜 뉴스’는 무엇이며 왜 생기는가
‘가짜 뉴스’(fake news)란 무얼까?

가짜 뉴스를 ‘왜곡보도’나 ‘오보’(誤報)와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학문적 정의를 구하기 이전에, 현장에서 체득한 바로는 이렇다. 즉 기사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려는 마음을 먹고 밀고 나간 뉴스가 ‘가짜뉴스’, 사실에 입각하여 쓰다가 비틀거나 외압에 의해 변형된 뉴스를 ‘왜곡보도’, 부실한 취재와 착오에 의해 사실과 달리 작성된 뉴스를 ‘오보’라고 통상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는 왜 생길까? 첫째는 기사 생산의 패턴이 문제가 되는 경우다. 특히 수사 사건에서 검찰·경찰이 처음부터 누가 범인인지 심증을 갖고 증거를 찾는 경우와 흡사하다. 경찰은 성급히 범인을 잡으려 무리한 수사를 하고 언론들은 사건의 진실과 결론을 추정과 추론에 의해 만들어두고 속보 경쟁에 나서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오보와 가짜 뉴스의 토양이 만들어진다.

1988년 공업용 소기름을 라면 제조 과정에 썼다는 혐의로 라면 회사 직원들이 구속기소되었다가 9년 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끝나버린 우지파동 사건, 2006년 쓰레기 수준의 중국산 불량 무말랭이를 만두소로 썼다는 쓰레기 만두 파동이 대표적인 예다. ‘쓰레기 만두’라는 제목에서 프레임이 이미 결정된 사건이었고 결국 만두회사 사장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가까운 예로는 2017년 봄의 ‘대왕 카스테라’ 보도, 2017년 가을 ‘240번 버스’ 보도 역시 지레짐작으로 갑질한 범인을 설정하고 덤벼들어 특종 경쟁을 한 언론사들이 오보 내지는 왜곡보도로 가짜 뉴스를 퍼뜨린 사건들이다. 

둘째, 정치 분야의 가짜 뉴스는 설정된 심증이나 추론이 아니라 정파적 목적과 편향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전에서 보도를 특정 후보나 그 후보의 소속 정당에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목적이 먼저 존재하고, 이 목적에 따라 기사 내용과 제목을 적당히 맞추는 일이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언론사나 매체의 정파적 목적에 부합하는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면 ‘거침없는 상승’ ‘맹추격’이라고 쓰지만, 경쟁 후보의 지지율이 오를 때는 ‘소폭 반등’, 떨어지면 ‘날개 없는 추락’이라고 쓰는 방식이다. 그뿐 아니라 지지율 증감을 그래픽 이미지로 표현할 때도, 정파적으로 가까운 후보의 지지율 큰폭 감소는 완만하게 처리하고 경쟁 후보의 지지율 소폭 감소는 그래프 간격을 크게 잡아 큰 기울기로 그려서 문제가 되는 사례도 있었다.

셋째는 가짜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폭주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사건 뉴스를 접하면서 범인을 빨리 알고 싶고 선거를 앞두고는 누구를 찍을지 빨리 정하고 싶어 독자와 시청자가 서두를 경우 가짜 뉴스의 등장을 부추기게 된다. 심리학에서도 인간은 복잡한 사고와 끈질긴 검토를 피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런 조급한 심리에 부응하기 위해 언론도 성급히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 뉴스를 내보낸다.

가짜 뉴스를 식별하는 법
그렇다고 언론사가 설정한 프레임에 의해 생산되거나 정파적 편향성에 의해 보도되는 가짜 뉴스를 그냥 바라만 봐야 할까? 독자나 시청자가 미디어 수용자로서 가짜 뉴스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이에 맞서 대항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이름이 확실한 언론사의 기사, 보도하는 기자의 이름이 확실히 명시된 기사를 골라 읽는 것은 나름 괜찮은 방법이다. 다만 해당 언론사가 진보나 보수 또는 개혁이나 수구 중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 독자가 미리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해당 언론사가 어떤 방식으로 여론을 유도해 왔는지 그 맥락을 짚고 있어야 한다. 큰 언론사는 표 나지 않게 크게 속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하기 전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입에 오르내리다 반기문 대세론이 등장하더니, 다시 황교안 대안론이 등장했다. 이것은 보수 정권이 이어지기를 원하는 언론사들이 후보를 바꿔가며 여론을 살피면서 간을 보느라 일부러 띄운 것이지 정말 대세론이 등장한 건 아니었다.

둘째, 같은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에 서 있는 2개 이상의 언론사가 다룬 기사를 비교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교해 읽으면서 어떤 점이 다른지 파악했다면, 일정 시간이 지나 어느 쪽이 거짓말을 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것이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 즉 ‘뉴스 문해력’의 내공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직업 기자가 가짜 뉴스에 덜 속는 것은 일상 속에서 꾸준히 기사를 서로 비교하며 읽을 뿐 아니라 나중에 드러난 결과로 판가름하며 익혔기 때문이다.

셋째, 이미지로 독자를 몰아가는 가짜 기사도 경계해야 한다. 기사 내용과 함께 배치된 사진과 그래픽이 앞뒤로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는데, 쉬운 예는 텔레비전 뉴스이다. 노동조합 파업 기사 앞에 북한 핵미사일 기사와 관련 그래픽을 배치할 때와 생활고로 자살한 가장의 소식이 배치되는 건 한참 다르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파업이 곧장 정당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무언가를 비판하는 기사의 경우는 그 비판 근거가 타당성이 있는지, 신뢰할 만한지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섯째, 기사의 어미를 유심히 살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했다/~이다”인 경우는 믿을 만하지만, “~라고 한다” “~라고 알려졌다” “~(으)로 전해지고 있다” “~할 가능성이 있다” “~이(가) 유력하다” 등은 반쯤 접고 읽거나 의심해보아야 한다.

여섯째, 취재 기자가 주인공을 만나 쓴 기사인지, 현장에 직접 가보고 쓴 기사인지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사실 의외로 직접 취재한 기사는 별로 없다.

일곱째, 때로는 맨 말미에 등장하는 ‘전문가의 소수의견’이 그 기사의 핵심인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결코 적지 않으니 끝까지 살펴 읽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은 1차원적인 가짜 뉴스 식별법인 셈이다. 이제 좀 더 입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첫째는 뉴스 보도를 통해 돈 또는 여론의 흐름에서 누가 이득을 취하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해당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누구에게 이득이 돌아가는지를 분석하면 가짜 뉴스가 더 쉽게 보인다. 대표적인 최근의 사례가 원전과 탈핵을 둘러 싼 찬반 기사들이다. 원전 강행을 찬성하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인터뷰를 한 전문가가 모두 원전 찬성론자라면 해당 기사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뉴스를 감시하는 미디어 비평 전문지 또는 해당 분야의 NGO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에 대한 평이나 관련 분석을 읽어보는 방법이다. 〈한국기자협회보〉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등이 그런 매체들이다.

셋째, 또 해당 언론사의 노동조합이 부정기적으로 내놓는 공정방송 보고서나 노보(勞報), 언론시민단체의 모니터 보고서를 활용할 수도 있다.

넷째, 새로운 기사가 크게 보도되고 퍼져나가면서 그로 인해 직전에 사회적 반향이 커지다가 묻혀 버린 뉴스가 있는지 찾아보자. 이것이 프레임 전환에 속지 않는 비결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연예인 관련 기사나 보도가 나오면 이를 무조건 정치적 음모에 의한 결과로 몰아가는 태도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도서관협회연맨(IFLA)이 제공하는 '가짜 뉴스 식별법'. 모두 8가지 체크 포인트를 제시한다. 1. 기사 출처 및 해당 뉴스 사이트의 목적을 확인하다 2. 제목이 아닌 본문 전체를 읽어보라 3. 기사 작성자가 실존하며 믿을 만한 인물인가? 4. 관련 근거가 확실한가? 5. 기사 날짜를 확인하라(현재 이슈와 무관한 재탕 기사 아닌가?) 6. 혹시 농담이나 풍자는 아닌가? 7. 자신의 선입견을 점검하라 8. 전문가에게 물어보라

가짜 뉴스와 SNS
가짜 뉴스의 확산은 주로 SNS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특히 SNS와 관련된 두 가지 현상에 의해 증폭된다.

첫째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이다. SNS에서 자신의 글과 의견이 확산되고 반응이 있으면 동굴 속에서 자기 목소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같은 성향의 사람들만 모인다. 이로 인해 편견은 상식이 되고 통찰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로 가상의 공동체가 이뤄지는데 그 공동체는 정파적 대결이 치열해지면서 거리로 진출하고 지원세력을 만나 조직화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오피니언 리더도 등장한다. 흔히 ‘그레이트 아마추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의 언행은 뉴스가 된다. 여기에 동조하며 그레이트 아마추어를 동경하는 일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가짜 뉴스 생산에 뛰어들기도 한다.

둘째는 SNS 알고리즘을 통해 ‘필터 버블’에 갇히는 현상이다. 이것은 과거 특정 신문만 배달해서 구독해온 사람이 갇히게 되는 ‘편견의 감방’과 비슷하다. SNS의 맞춤형 필터링 서비스가 사용자의 과거 검색 이력을 살펴 해당 유형의 정보만을 받아보게 만듦으로써 사용자들은 자신의 관점에 반(反)하는 정보로부터 격리되어 버린다. 자신만의 이념적 거품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가짜 뉴스의 애독자로서 그 생성과 확산에 기여하게 된다.

SNS 상에 떠도는 가짜 뉴스를 적발하기 위해 별도의 전문 팩트체크 기관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들마저 팩크체크를 저버리는 시대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별도의 기관을 만든다는 건 요원한 일이다.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파되는 가짜 뉴스를, 인원과 비용을 들여 확인한다 해도 효과는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 기독교계의 가짜 뉴스
2017년 한국교회도 가짜 뉴스에 시달렸다. 가장 크고 비중이 컸던 것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스런 기사들과, 동성애가 전국으로 번져 젊은이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될 거라는 포비아성 기사들이다. 언론사의 자발적인 가짜 뉴스라기보다 교계의 특정 세력들이 가짜 정보를 전파한 뒤 교계 언론에게 교회 수호를 위해 참여하라고 종용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의 침체와 위기를 벗어나고자 희생양을 만들어낸다는 분석이 가능한데, 언론은 그런 분석을 토대로 신중히 접근하지도, 그런 분석을 기사 말미에 실어 균형감을 갖도록 배려하지도 않는다.

‘이슬람 공포’를 예로 들어보자. 계속해서 번지고 있는 이슬람 관련 정보와 기사의 내용에는 ‘이슬람 선교사 2만 명이 국내로 들어와 암약하면서 한국을 점령하려 한다’는 것과 ‘8단계 전략을 세워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이슬람 신자가 30만 명 수준이고 해마다 무슬림과 결혼하는 한국 여성이 2천5백 명이라는 내용도 있다. 거기다 국내로 침투한 이슬람은 좌파 세력과 결탁해 활동한다는 내용이 덧붙는다. 이슬람 세력이 5%에 육박하면 자생 테러단체들이 생긴다는 공포스런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발표 내용이나 옮겨 쓴 기사를 잘 읽어보면 오랜 세월 추적 조사한 것이 아니라 “~라고 한다”는 내용이 많다. 이런 정보를 배경으로 인터넷 등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며 외국인 혐오로까지 번져나갔다.

2016년과 2017년에 퍼져나간 이 내용은 사실 2007-2008년 무렵에 이미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던 가짜뉴스들이다. <한겨레> 2009년 1월 22일자 “이슬람 할퀴는 종교적 색안경” 기사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당시 취재에 따르면, 국내 이슬람 신자 규모는 일부 기독교세력이 주장하는 30만 명이 아니고 14만 명 선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얼마나 될까? 현재 수준은 15만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2017년 6월 15일자 <서울경제> “국내 이슬람인구 2023년에 100만 명 넘을까” 기사를 참조·비교해 읽어보자). 8년 사이에 1만 정도 늘어난 수준인데 앞으로 5년 안에 100만 명으로 늘어난다는 건 믿기 어려운 얘기다.

2009년 한겨레신문 취재기사에서 국내 거주 무슬림 가운데 순수 한국인은 3만5천 여 명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서울경제>의 취재기사는 순수 한국인 무슬림 수를 4만 명 정도로 잡았는데, 중동건설 때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억지춘향으로 무늬만 무슬림으로 등록한 허수가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다고 봐야 한다. 또한 2009년 당시 한국이슬람교중앙회는 국내 선교사가 2만 명이라는 기독교 일부의 주장에 대해 ‘15명 정도’라고 밝혔다. 이것이 과연 이슬람세력이 숫자를 속이면서 완벽히 위장하고 있는 것일까?

국제결혼을 수단으로 삼아 한국을 접수한다는 내용은 또 어떤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 국가로부터 결혼을 통해 입국한 무슬림 여성들이 도시와 농어촌에 흩어져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마치 훈련받은 국정원 ‘댓글요원’들처럼 일사분란하게 한국 점령 공작을 편다는 건 황당한 이야기에 가깝다.

외국인 범죄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전체 숫자가 늘어나면 그에 따라 범죄 건수도 늘어난다. 그런데 한국인 범죄율이 4%일 때 외국인 범죄율은 1.3% 수준이었다. 이는 물론 2006년 통계치다. 이후 외국인이 늘면서 외국인 범죄율도 빠르게 상승했다. 그럼에도 최근 외국인 범죄율은 한국인 범죄율의 4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인 범죄는 출입국관리법, 교통법 관련 위반이 대부분이고 흉악범죄율은 상당히 낮다.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정부에서 강하게 통제관리하기에 쉽게 늘지도 않을 뿐더러, 무슬림 중 상당수도 할랄 등 이슬람 전통을 지키기 힘든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 

보수 기독교계와 극우정치세력의 ‘정교 연합’
현장을 지켜본 판단으로는, 한국 기독교 보수우익 진영의 ‘3대 사회악(좌파·이슬람·동성애) 척결 운동’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기독교는 ‘장로 대통령’으로는 확실한 정치적 보장이 어렵다고 보고 ‘기독교정당’ 운동을 시작한다. 이때 개신교 진영의 대중동원을 눈여겨 본 보수우익세력은 정권이 보수개혁(김영삼)에서 진보개혁(김대중)으로 옮겨지고 진보세력이 한 번 더 집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독교 보수세력과의 연대를 구상한다. 그리하여 극우정치세력이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 ‘좌파로부터 나라를 구할 힘은 기독교 보수우익의 힘뿐’이라고 설득하여 동맹을 맺은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는 잘 조직된 거대한 반공보루가 있습니다. 인구의 약 30%나 되는 개신교 세력과 약 70만 명을 헤아리는 군대가 그것입니다.”(<조갑제닷컴>, 2000년 6월 1일)

이후 조용기·김장환·최성규·곽선희·김진홍·길자연 목사 등이 줄줄이 <월간 조선>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거나 조갑제 씨 등과 만났다. 이후 이 보수 기독교계의 정교(正敎) 연합세력은 좌파 척결, 이슬람 타도, 동성애 박멸이라는 격한 구호를 시대 흐름에 맞춰 제시하면서 움직여 왔다. 동성애를 좌파와 연계시킨 뒤 다시 전교조와 연결하고 대법원장 후보나 크리스천 헌법재판소장 후보까지도 좌파·동성애 옹호의 죄목을 달아 비판하는 양태는 정권 회복을 바라는 정치적 우파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기독교의 확장을 꾀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국가 권력 제4위에 오를 크리스천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반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피면서 기독교언론은 언론으로서의 균형과 감시기능을 수행했는지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가짜 뉴스를 내보내지는 않았다 해도 본질을 피해간 뉴스와, 황당하지만 주장하는 대로 받아쓰는 발표저널리즘도 ‘미필적 가짜’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원적 해결책은 있는가
그럼 기성 언론의 가짜 기사 내지는 가짜에 가까운 기사들, 그리고 SNS를 통한 가짜 뉴스의 전파는 어찌할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진실 보도를 위해 기성 언론과는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실은 어떤 특출한 전문가나 독자적인 뉴스기관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보가 집단적으로 공유되어 의견과 주장들이 넘쳐나는 ‘사회적 공유’ 한가운데서 진실을 찾아가는 방식은 어떨까. 기사를 내보낸 뒤 기사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독자와 시청자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고려해보자는 얘기다. 독자가 기사에 댓글만 다는 것이 아니라 기사를 어떻게 수정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언론사와 다른 독자들은 그 타당성을 공개된 장에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기사를 쓴 기자와 데스크, 이후 참여한 시민 독자가 그 기사의 공동작성자로 인정받고 책임도 공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민을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받아들여 보도과정의 한 축으로 참여시키는 시스템을 상상해 본다.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가 독자와 시청자에게 펀딩과 정보만 요구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오만한 구체제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저널리스트가 진실을 최상의 가치로 놓고 그것만을 추구한다면, 진실에 접근하도록 돕는 사람이 데스크나 동료 기자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파트너로 삼는 것이 과연 부적절한 일일까. 정직하고 진실한 보도를 하고자 한다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새로운 저널리즘의 형태가 아닐까?  
 

변상욱
1983년 CBS에 기자로 입사한 이래 사건취재팀장, 법조팀장, 뉴스앵커, 해설주간을 거쳐 현재 대(大)기자로 변함없이 뉴스 현장을 누빈다. 신천지특별대책팀장, 이단사이비 특별취재단장, 미디어 총괄 콘텐츠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법원 양형자문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기독교언론포럼 공동대표, 국민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민주언론상, 송건호 언론상,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고 《언론가면 벗기기》 《권력과 맘몬에 물든 한국교회》(공저) 《굿바이 MB》 《대한민국은 왜 헛발질만 하는가》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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