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호 이슈 톺아보기]

   
▲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는 원형감옥 '파놉티콘'의 구조는 오늘날 교회당 내부 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사진: 위키미디어코먼스)

한국교회의 ‘예외적 정상’
여러 해 동안 명확치 않게 어중간하게 행동하던 목사 ‘하나’가 결국 일을 내었다. 기독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크게 이슈가 되는 분위기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냉소도 불편하지만, 솔직히 지금 진행되는 대응들이 얼마나 전향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명성교회 세습이 예외적 사건인가? 아니면 한국교회 정서 속에서 늘 그래왔던 일반적 사건인가? 물론 등록 교인 10만을 넘는다는 그 교회의 규모를 생각할 때 충격의 강도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결코 예외적인 사건은 아니다. 불편하지만, 이 세습은 한국교회의 ‘예외적 정상’(exceptional normal)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예외적 정상’은 에도아르도 그렌디(Edoardo Grendi)가 포스트모던 시각으로 역사학을 이해하는 개념으로 상정한 것이다. 매우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한 사건이, 실제로는 당대의 보편적 정서와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건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자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평범한 택시기사 김사복이 목숨을 걸고 광주행을 택한 결정은 분명 예외적인, 따라서 비범한 행동으로 평가될 수 있다. 누구나 그런 행동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김사복의 행동은 적어도 사회 정의에 대한 그 시대 보편적인 사람들의 갈망을 대표하는 정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예외적’이지만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이번 명성교회 세습 역시 예외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은 한국교회의 구조 속에서는 일반적으로 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사건이 예외적이라면 해결책 역시 명확하다. 진짜 문제는 김삼환 목사의 아들이 아닌 제3자가 담임으로 온다고 한들 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물타기 하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명성교회 세습은 그것대로 비판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이제는 좀 더 근원적인 담론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