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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는 혁신을 고무한다”
[325호 3인 3책] 유배된 교회 / 리 비치 지음 / 김광남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 2017
[325호] 2017년 11월 28일 (화) 17:26:33 김광남 번역가, 저술가 goscon@goscon.co.kr
   
 

어쩌다 보니 논문집이나 다름없는 신학이론서들을 주로 번역하게 되었다. 힘에 부치기는 하나 다행히 그런 책들이 체질에 맞아 나름 작업하는 재미도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좀 더 현실적인 책, 특히 교회의 현실을 다루는 책을 번역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 바람을 이뤄준 책이 리 비치라는 신학자가 쓴 《유배된 교회》였다. 문장이 복잡해서 애를 먹기는 했으나 예리한 통찰이 많아 작업하는 내내 꽤 즐거웠다.

비치는 오늘날의 교회가 “유배 상태”(in exile)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유배”는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지금 교회는 더 이상 과거처럼 문화의 중심에 있지 않다. 교회는 과거에 가졌던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채 생존에 급급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생존을 위해 애쓰는 교회는 생존하기 어렵다.

유배는 좋은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환경, 낮아짐, 핍박, 조롱, 그리고 심지어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배는 평온한 시기라면 이루기 어려운 혁신을 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바벨론 유배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했고, 오늘날 ‘유대교’라고 불리는 종교의 틀을 마련했으며,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의 경전이 된 문서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유배는 역동적인 창조의 시기이기도 했다.

비치에 따르면, 에스더서, 다니엘서, 그리고 요나서 같은 문서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기에 이뤄낸 종교적 혁신을 보여준다. 그런 문서들의 주인공들은 유배 혹은 그 이후의 디아스포라라는 낯설고 불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적대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예시한다. 신약시대의 교회 역시 유배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그 무렵까지도 실제적 유배 상태에 있던 동족들에게서조차 배척을 받아 세상의 변방 중의 변방으로 밀려나야 했다. 기독교 초기에 쓰인 여러 서신들, 특히 야고보서, 히브리서, 그리고 베드로전서는 그와 같은 유배 상황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가 경험하는 혹독한 유배 상황은 전례가 없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함으로써 나타났다가 최근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한,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야말로 독특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처음부터, 즉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부터,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났을 때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부터 이미 유배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몸소 유배를 경험하셨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유배 신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아주 풍성한 자원을 갖고 있는 셈이다.

분명히 유배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유배를 앞서 경험한 이들이 제공하는 지혜에 귀를 기울인다면, 오늘 교회가 경험하는 유배는 침체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배는 혁신을 고무한다.”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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