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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인 청년 이학영 이야기
[326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집은, ○○다
[326호] 2018년 01월 04일 (목) 11:34:07 김영준 민들레교회 담임목사 @
   
▲ 학영 씨는 비장애인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인생을 살고 누리고 싶어 한다. (사진: 김영준 제공)

#01
서울과 강화 사이엔 48번 국도가 흐른다. 서울과 강화 사이에 한강이 흐르듯, 48번 국도가 흐른다. 차량이 많은 주말이면 48번 국도는 느리게 흐른다. 강화로 흐르는 사람들은 김포에 부러 들르진 않는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 넣을 일이 없으면, 김포에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어쩌다가 나는 김포에 멈추게 됐을까. 아니, 천천히 흐르고 있는 걸까. 

김포는 길목이다. 서울과 강화를 잇는, 몽골의 침입을 받았을 때 수도였던 강화와 조선 500년 이래 여전히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을 잇는 길목에 김포가 있다. 김포는 옛 수도와 현 수도를 잇는 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길이라 하셨다. 스캇 펙의 표현을 빌면, 끝나지 않은 길이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길과 진리와 생명을 동의어로 읽겠다. 진리와 생명은 길에 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길이든, 아직도 가야 할 길이든 길을 가다 보면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 일상 속에 낯선 사람이 침입한다. 낯선 일상이 된다. 길에선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낯설다.

#02
48번 국도를 흐르는 중이었다. 운전을 하는 중이었고, 지적장애인 두 명과 자폐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몹시 서먹했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뒤에 앉은 학영 씨는 자폐성 장애인이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면 긴장을 하는지 눈꺼풀 근육이 팽팽해지고 하얀 공막이 충혈되곤 한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48번 국도를 흘러가며 강변을 때리는 물소리 같이 아무 의미 없는 소리가 간절했다. 어색한 승합차 안을 채울 소리가 필요해서 뭔가 말을 던져야 했다. 마침 기다란 48번국도 양쪽에 높다란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었고, 학영 씨는 창밖으로 아파트들을 보고 있었다. 

“학영 씨,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집들.” 

대화를 이어보았다. “학영 씨 집은 어디에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영 씨는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기를 버거워한다.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악수를 할 때도 왼 어깨를 틀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시선을 피한다. 뒷자리에 앉은 학영 씨는 운전하는 내 뒤통수를 보며 대화하는 게 어쩌면 편했을까.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학영 씨의 대답을 듣는 순간 승합차 헤드라이트가 두 배는 환하게 길을 비추는 느낌이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밤길, 멈춰 있는지 흐르는지도 모르고 가는 길에 “빛이 있으라” 하신 신의 음성같이 환한 대답이었다. ‘엄마’가 ‘집’이란다. 질문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엄마 집은 어디에요?”라고 물었더니 “중흥에스클래스”라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의 집은 중흥에스클래스지만, 학영 씨의 집은 엄마다. 학영 씨는 ‘집이 어디냐’는 우문에 ‘엄마’라고 현답했다. 

자폐성 장애인은 논리가 아니라 연상으로 사고한다. 아이 때 부르곤 했던 원숭이 엉덩이는 빨게,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뭐 이런 노래처럼 자폐성 장애인은 단어와 단어를 논리로 잇지 않고 연상으로 비약하며 말하곤 한다. 집이 어디냐 물었을 때, 학영 씨에게 연상됐던 것은 주소가 아니었다. 집 근처 눈에 띄는 건물도 아니었다. 학영 씨에게 집은 아파트 동 호수나 번지수 따위로 수치화될 수 없고, 어떤 랜드마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던진 목사의 질문에 학영 씨는 고승의 화두로 답했다. 

집은, 엄마다. 

#03
엄마와 함께 학영 씨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당연히 교회는 학영 씨에게 엄마가 됐다. 예배 후 식사를 하는데, 같이 먹자고 제안하면 혼자 먹겠다고 한다. 같이 먹자고 다시 청해도 혼자 먹을 거에요, 라며 분명하게 대답한다. 다음 주에도 다시 물어볼 거다. 언젠간 목사랑 같이 먹고 싶다고 하지 않겠나. 식사는 혼자 하지만, 식사 후엔 청년들이 모이는 예배당 다락으로 올라와서 간이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함께하진 않아도 곁에 있다. 

#04
예배를 드린 후 집에 가서 학영 씨는 반드시 예배를 복기하며, 예배 후 식사 시간에 먹었던 음식을 쭈욱 나열해서 문자를 보낸다. “수제비를 먹었어요” “샐러드를 맛있다” “김치를 맛있다”“과자를 맛있다” “사탕을 맛있다” 문법에 맞진 않지만, 예배 후에 피드백을 해주는 거의 유일한 성도다. 목사가 토해내는 설교보다 집사가 차려주는 밥이 훨 낫겠지. 목사도 그렇다.  
수제비와 샐러드와 김치와 과자와 사탕이 학영 씨에게 예수님의 몸이 되고, 예수님의 피가 되길 축성한다. 예배학에서는 성만찬과 식사가 구별되겠지만, 성만찬의 기원이 식사 아니었던가. 식사를 기억하기 위해 성만찬을 하는 거다. 학영 씨는 매주일 식사를 기억한다. 성만찬을 한다.

#05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행 8:36) 

아이큐가 70이 되지 않는 자폐성 장애인이라 비록 교리문답을 하지 못할지언정, 매주일 성찬을 기억하며 함께 예배드리고, 곁이 되어주는 학영 씨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언어로 된 세례 문답은 곤란하겠기에, 그림으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공부했다. 중세교회가 남긴 성화들과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으로 사도신경 한 줄 한 줄, 주기도문 한 구절 한 구절을 짚어가며 세례문답 교육을 했다. 2015년 성탄절, 학영 씨는 회중 앞에서 사도신경을 읽고, 주기도문으로 대표기도를 한 후, 세례를 받았다. 2011년 민들레교회 창립 후 첫 번째 수세자가 되었다. 

세례는 죽음을 상징한다. 장로교회는 단출하게 치르지만 사람이 엄마 뱃속 양수에서 처음 태어나듯, 물에 잠겨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예식이다. 

#06
자폐성 장애인은 공적인 모임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발성도 독특해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있으면 눈에 띈다. 학영 씨 어머니는 그래서 꽤 오랫동안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말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장애인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자못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들의 폭력적인 시선 때문에 말할 수 없었던 학영 씨가 포럼의 발제자가 되었다. 김포에 있는 공립 특수교육기관인 새솔학교에서 열린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주민 협력 포럼”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대표가 되어 장애인의 욕구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들려준 것이다. 청중 앞에서 자폐성 장애인이 마이크를 들고 말하는 건 쉽지 않다. 다시 태어나는 수준의 사건이다. 3년 가까이 자조모임을 함께한 목사의 조력을 받아 학영 씨는 포럼 참석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학영 씨가 보내온 문자

‘일하는 거 힘들지만, 돈 벌고 싶다’고 했다. “(팟캐스트)라디오 방송하면서 하고 싶은 말 계속하고 싶고”, 노래방에서 마이크 들고 “노래도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 자조모임 중에 팟캐스트 방송 교육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는데, 헤드셋 끼고 마이크 앞에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게 재밌는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학영 씨는 자폐성 장애인지만, 자기표현의 욕구는 강했다.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돈을 벌고 싶어 했다. 당시 가장 긴급한 욕구는 “떡볶이를 사먹고” “잠바를 사는 것”이었다. 학영 씨는 일해서 돈을 벌고, 떡볶이를 사먹고, 잠바를 사러 쇼핑하러 가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고 싶다. 학영 씨의 욕구는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일상이 장애인들에겐 소원이다. 

#07
학영 씨는 소원 중 하나를 이루었다. 아니 이젠 일상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출근을 한다. 성공회에서 세운 직업재활시설 ‘강화도우리마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임가공을 한다. 수차례 카페에서 함께 일하자고 목사가 꼬셨는데, 거절당했다. 거기 점심이 맛있단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남은 점심시간에 쉬면서 가끔 문자를 보낸다. 몹시 추웠던 날에 ‘한파’라고 짧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내 식대로 자폐성 장애인이 보낸 ‘한파’를 번역해본다. “목사님 오늘 추워요, 아이들 따뜻하게 입혀서 학교에 보내셨나요? 카페 화장실 얼지 않게 불 펴놓아야 하구요.” 

집은 엄마, 라고 화두를 내릴 줄 아는 학영 씨라면, 한 단어에 따뜻한 잔소리를 능히 길게 담았을 것이다. 감히 헤아릴 뿐이다. 

#08
학영 씨는 날마다 김포에서 강화로, 강화에서 김포로 48번 국도를 따라 흐른다. 날마다 흐르지만, 항시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듯 더디지만, 그래도 흐른다. 

서울과 강화 사이를 흐르다가 길가에 높다란 아파트가 보이거든 거기가 기다란 48번 국도라는 것, 학영 씨가 매일 흐르는 길이요, “집은 엄마”라는 깨달음이 비추었던 곳이요, 비장애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은 장애인들의 끝나지 않은 길, 아직도 가야 할 길인 줄 아시라. 학영 씨 목소리로 새해 인사 올린다. 

“새해를 복 많이 받아요.” 

 

김영준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도 즐기는 목사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한 달엔 한 번 수요일에는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주1회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을 한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김포 민들레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이주민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달팽이학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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