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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2일째 1인 시위,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싸우나
[327호 커버스토리]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한 김동애·김영곤 부부의 10년
[327호] 2018년 02월 01일 (목) 11:13:22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 국회의사당 인근 농성천막 앞에서 김동애 김영곤 부부 ⓒ복음과상황 이범진

한낮에도 영하의 기온이 계속되는 지난 연말연초. 칼바람 부는 한파에도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앞 1인 시위를 하는 이들은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다. 지난해 12월 21일 청와대 앞에는 신천지에 가족을 빼앗긴 슬픔을 호소하는 사람, 불법 해고의 억울함을 알리는 사람, 사립대학의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 등…, 저마다 간절함을 부여안고 서 있다.

그중 3,759일째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김영곤(70)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가 눈에 띄었다. 그는 김동애(72)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본부장의 남편이다. 부부가 함께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해 10년 넘게 시위를 해왔다. 12월 21일은 청와대에서, 1월 2일은 고려대 본관 앞에서, 1월 3일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이들 부부와 동행하며 지난 10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흘간의 긴 대화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 1인 시위 중인데, 무엇을 위한 시위인지?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를 위해서다. 강사 교원 지위를 인정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을 국회가 유예했다. 2011년에 의결 통과해 놓고 7년째 유예시키고 있다. 강사법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 대학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들은 종종 이슈가 되기도 한다. ‘교원 지위 확보’가 왜 중요한가? 문구만 보면 무작정 ‘철밥통’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교원 지위 ‘회복’이 맞다. 세계적으로 대학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주지 않는 나라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세 곳뿐이다. 원래 1949년 만든 교육법상에는 우리나라도 강사를 교원 신분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걸 1977년에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빼버렸다.

― 1977년이면 40년 전인데, 그때 강사의 교원 지위를 박탈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박정희가 1979년에 죽지 않았나. 1977년이면, 긴급조치 이후로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하겠다고 별짓 다 할 때다. 당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이 군사독재를 반대하고 나서니까, 젊은 대학 강사들을 그 ‘배후’로 본 거다. 그들이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고등교육법상 교원 자격에서 강사를 뺐다. 그때 정권에 비판적인 교수들도 해직되지 않았나. 독재 정권의 지식인 길들이기 역사는 꾸준하고 집요하다. 전두환 정권 때는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서, 상대평가와 졸업정원제를 도입했다. 학생들을 대학 안에만 가두어 두려는 정책을 편 거다.

   
▲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해 10년 넘게 1인 시위 중이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로는 어땠나?
1988년 이래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한 운동이 꾸준히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전에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원들을 만나 교원 지위 회복을 약속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공약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 더 복잡해졌다니?
대학에 재벌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재벌은 6개월에 한 번씩 선불로 현금이 들어오는 ‘황금어장’인 대학을 가만두지 않았다. 재벌들이 학교 재단을 사들이거나 장악해 이윤을 내려 하니, 가장 만만한 게 강사들 착취하는 거였다. 재벌들 속성은 최대한 많은 노동자를 비정규직화 해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이다.

― 대학교 시간강사에게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강사법’ 시행이 유예된 지 7년째라고 했는데….
2006년 17대 국회 때 3개 여야 의원안이 있었다. 그때부터 계산하면 10년이 넘었다. 18대 국회 때 7개 여야 의원안과 1개 정부안을 통합하여 변재일 교과위원장 안으로 2011년 의결 통과시켰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법안 폐기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11월 30일에 교육부가 “다수가 시행을 반대하는 강사법을 개선하기 위해 폐기 등의 방안을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완전 폐기’와 ‘2년 유예’ 방안을 국회에 요청했는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가 1년 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의원안과 정부안을 절충하려 민주당 소속 위원장 안으로 국회가 의결한 것을, 민주당 새 정부가 들어서서 부인하고 나선 것인데 삼권분립 원칙과 절차에도 어긋난다. 이를 책임져야 하는 국회 역시 또다시 유예시켰다. 법안 통과 후 이제 네 번째 유예다.

― 사실 강사법 폐기 여론이 거셌다. 관련 기사들 모두 ‘대량 해고’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담았다.
대량 해고는 ‘가짜 뉴스’이고 과장 이슈이다. 강사에 대한 협박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신규 박사가 강사 시장에 진입하고 대학 입맛에 맞지 않는 기존 강사가 일부 교체되었을 뿐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시간 강사는 2007년 5만5천여 명에서 2015년 8만3천여 명으로 늘었다. 강사법 개정 이후 국립대 강사는 줄지 않았다. 사립대에서는 강사 대신 늘린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을 포함하면 강사 수는 줄지 않았다.

   
▲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 ⓒ복음과상황 이범진

―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한교조)도 “법 취지와는 달리 비정규직 양산과 대규모 해고를 부른다”는 이유로 강사법 폐기를 주장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6조에 따르면 교원은 1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책임시수)해야 하는데, 강사가 교원이 되면 소수에게 강의를 몰아주고 나머지는 해고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고등교육법 시행령 6조에 의하면 총장이 학칙을 바꾸어 교원의 강의시수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강의 시간을 6시간으로 한정하면 해결될 일이다. 아울러 전임교수가 주당 15시간까지 강의하는데 이것을 9시간으로 조정해야 한다. 대량 해고하겠다고 대학 측에서 협박하면 정부는 그것을 막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오히려 강사들에게 공포를 조장했다.

― 대학도 예산을 아끼기 위해 자기 대학에 ‘교원 강사’를 만들기보다는 다른 대학 강사를 초빙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결과적으로 약 3만~4만 명 강사가 해고될 거라고 주장하더라.
그것도 한교조의 주장인데 왜 ‘대량 해고’를 이슈로 잡았는지 묻고 싶다. 현 강사법의 문제는 교원 법적 지위를 주면서도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립학교연금법을 적용할 때는 교원으로 보지 않는 단서 조항에 있다. 처음에 우리는 이 단서 조항이 없는 온전한 교원 지위를 요구하며 현 강사법을 반대했었다. 강사법 시행 이후 이 단서를 떼기 위해 함께 싸울 의사는 없는지 한교조에 묻고 싶다. 사실 ‘고참 강사’들은 교원 지위 회복보다 강의 자리 유지를 원한다. 지방 국립대는 시간당 8만5천~10만 원의 강사료를 준다. 이미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들이 있다. 한 달이면 얼마인가? 강사가 교원이 되면 공개적인 절차에 따라 강사를 임용해야 하니, 기존의 기득권이나 친소관계에 따른 임용이 제한된다. 교원 지위 회복에 따른 강사 공개 임용이 두려운 강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2015년 전국대학원총학생회 협의회가 박사과정생 및 수료생 1,034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90.3%가 “강사에게도 교원 지위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강사법 시행을 전제로 1년 계약에 따른 방학 중 강사료와 퇴직금 지급,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 보장책을 찾아야 한다.

   
▲ 김동애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본부장 ⓒ복음과상황

― 예산이 감당될까?
현재 정규직 교수와 강사의 임금은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대다수 시간강사들은 소박하게 국립대 강사료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4대 보험, 1년 계약의 고용 안정, 방학 중 강사료 지급, 퇴직금 지급이 큰 욕심인가? 이 금액은 대학 재정에 결코 치명적이지 않다. 지난 10여 년간 전국 사립대학의 재정 규모는 10조 이상 증가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라는 단체가 있다. 전국 총장 모임인데, 1년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이 돈을 강사 처우 개선에 쓰면 어떨까? 예산 문제는 해결이 어렵지 않다.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확보하면, 강사료 인상 등 처우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

― 그 무엇보다도 ‘교원 지위 확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동애: 1999년부터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하려고 싸웠다. 1992년 3월 숙명여대, 충북대, 한성대 등에서 강의했을 때였는데 한성대에서 급히 정규교원 자리를 구한다고 해서 전임 대타로 대우교수(전임교원)로 강의를 했다. 7년 6개월이 지났을 때 갑자기 강사료가 절반으로 줄어 알아보니 애초에 전임교원이 아니라 비전임교원이었더라. 그 뒤로 직위해제 및 감봉 무효, 퇴직금 소송 등에 나섰다. 법으로 싸우려다 보니까 가장 큰 한계가 법적 지위가 없다는 거였다. 교원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교원, 즉 (분명 가르치고 있으나)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신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법으로도 어떻게 해볼 요량이 없다. 강사료 인상보다도 교원 지위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못 받는다. 시간강사들이야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서정민 선생의 유서 내용처럼 시간강사는 노예 취급을 받고 있다. 변호사조차도 지는 싸움이라고 말릴 정도였다. 그때를 계기로 한교조 내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때 우리가 근로기준법을 들이대며 싸우니까 오히려 검사가 조언을 해주더라.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고등교육법 대상이라고. 근로기준법 말고 고등교육법상의 교원 회복 운동을 하라고. 그 말이 맞더라. 그때부터 천막 치고 고등교육법 개정에 힘을 쏟았다. 그게 2007년 9월 7일이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강사들은 7년째 법적 보호 없이 떠돌고 있다.

   
▲ 고 서정민 박사 유족과 김동애 본부장 (사진: 김영곤 제공)

― 서정민 선생은 누구이고, 유서는 어떤 내용이었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서정민 선생은 조선대 시간강사였다. 2010년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지도교수 논문을 수십 편 대필하고, 심지어 그 제자의 논문도 써줬다. 10년 동안 54편의 대필로 학대당하면서 이가 다 빠졌다. 서 선생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자 정부가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은 거다. 2011년 국회를 통과한 것도 사실은 서 선생의 핏값으로 가능했다.
 
― 그 유서에는 선생님 이름(김동애)도 나온다.
동애: 처음에는 유서에 이름이 들어가 있는지도 몰랐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조선대 강의 때 한 번 만난 게 전부였다. 강의 때 단순히 강사료 인상과 같은 돈 문제가 아니라 교원 지위 회복이 본질이라고 말했는데, 내 이름을 기억해 유서에 썼다. “투쟁에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교수와 제자의 관계는 주인과 개의 관계라는 것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했다. 당시 서 선생 유서에 보면, 조선대 비정규직노조를 찾아가 투쟁 방법을 확인하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노조는 학교 측과 뜻이 같았다. 다른 강사들의 외면과 조롱 앞에서 정말 힘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가해자와 뜻을 같이할 수 있느냐고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했더니 오히려 ‘김동애’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더라. 대학사회에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종의 카르텔이 있다.

― 서 선생의 뜻은 결국 좌절된 건가?
유족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했지만, 인지대만 1,000여만 원 들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조선대 연구윤리위원회는 논문 대필이 공동 연구이고 관행이라며 혐의가 없다고 했고 한교조, 경찰, 검찰, 법원이 한뜻으로 묶여 있어서, 승산 없는 싸움을 이어갈 수 없었을 거다. 2016년 12월 9일 광주고등법원에서는 대필을 자발적으로 했고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아 홧김에 자살을 한 것이라며 연구 업무 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재판에서 상고 사건 가운데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편집자)으로 기각했다. 시간강사들에게 마음 놓고 논문 대필을 시켜도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서 선생의 아들은 아버지 죽음 이후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해군 장교였는데 아버지의 자결 등의 충격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강제 전역 당했다. 서 선생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루기 위해서라도 계속 1인 시위를 해야 한다. 조선대 연구윤리위원회는 이를 재조사해야 한다.

   
▲ 김동애 본부장이 고려대 본관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강사법 시행 유예를 주장하신 적도 있다. 시행 ‘유예’를 주장한 것이 자칫 강사법 폐기를 주장한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2013년 18대 국회 때 시간강사법 폐기와 연구강의교수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어 유예를 주장했다. 연구강의교수제는 법정교수 20%를 강사로 대체하는 내용이었다. 대학은 정규 교수로 61% 이상 채워야 하는 데, 연구강의교수제가 도입되면 그중 20%를 강사로 대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학교수의 비정규직화를 뜻한다. 지금도 정규 교수가 퇴직하면 그 자리는 갖가지 이름을 붙여 비정규 교수로 채워진다. 성균관대학이 2020년까지 장기 비전 계획이라고 수립했는데 대단한 내용이 아니다. 정년퇴직 자리를 비정규교수로 채우겠다는 거다. 이것을 법으로까지 허용해주면 대학교수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사들도 대폭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게 되어 있다. 심지어 공무원까지도 비정규직으로 소리 소문 없이 대체될 거다. 우리 사회 전문직 전체가 비정규직화되는 수순이어서 막을 수밖에 없었다.

― 듣다 보니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싸우다 보니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결을 위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모든 게 엮여 있더라. 사회 전체의 부조리가 다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정민 선생의 죽음이 이슈가 되니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등록금 공약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분위기에 몰렸다. 그 과정에서 35개 이상 대학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했다.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리가 발견됐다. 13년 동안 7개 대학이 의과대학의 14개 협력병원 소속 임상강사들에게 고등교육법의 근거 없이 교원 지위를 주고, 교비와 재단회계에서 임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균관대의대-삼성서울병원, 울산대의대-서울아산병원, 가천의대-길병원, CHA의과대-강남차병원, 관동대의대-제일병원, 한림대의대-강동성심병원, 을지의대 등 7개 사학법인 14개 병원) 그 돈이 무려 3조 7천억 원으로 추산된다. 대표적으로 성균관대가 협력병원인 삼성의료원 의료진들에게 학교 재정으로 돈을 지급했다. 

   
▲ 고려대 농성천막 주변 학생들의 지지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대학이 협력병원 소속 임상강사들에게 임금을 지급한 게 왜 문제가 되나?
‘협력병원’은 ‘부속병원’과 달리 학교법인과 관계가 없다. ‘협력병원’은 삼성이 1997년 학교법인 성균관대를 무상인수하면서 약속한 의대 설립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도입한 편법이다. 어쨌든 협력병원 근무 의사들은 학교법인 소속이 아니기에 교원 임용 대상이 아니다. 감사원에서 “교과부가 교원이 아닌 협력병원 의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사학연금 197억 원, 퇴직수당적립금 303억 원, 국민건강보험료 107억 원 등 총 607억7천만 원의 국고를 부당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원은 “7개 사학 14개 협력병원 재직 의사 1,818명을 교수로 인정할 수 없다며 교원 임용 계약을 해지하라”고 통보(12.1.19)했다. 대학 등록금으로 의사 월급을 준 것인데, 이 기간에만 등록금이 70% 이상 올랐다.

― 충격적인 사실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교과부나 학교 측 대응은?
감사원은 협력병원 재직 의사 1,818명 전임교원 임용계약을 해지하고 부당 지급된 국고 607억여 원도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대법원에서도 “협력병원 전임교수 파견은 위법하며 사학연금 및 건강보험료 국고지원금을 환수하라”는 고등법원 판결을 인용해 을지의대의 상고를 기각한 터였다.(2011.10.13) 교과부는 해당 학교에 지위 변경 및 국고 환수 계획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나 학교법인은 계획안 제출을 거부하고 이의신청을 했다. 교과부는 이의신청을 기각하되, 계약 해지 후 7월 1일부터 재임용을 통해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사학연금도 재개되도록 보장했다. 이를 위해 협력병원 겸직교수 지위를 인정하는 등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고등교육법을 바꿔서 협력병원 임상강사들에게 온전한 교원 지위를 부여했다. 이를 두고 삼성, 현대 등 재벌 병원에서는 ‘구사일생법’이라 불린다. 그러면서 일반 대학 강사에게는 단서 조항을 달아서 껍데기뿐인 교원 지위를 준 거다.

   
▲ 김영곤 대표가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국고 지원금 환수는 어떻게 되었나?
교육부 관계자의 말로는 60%를 환수했다고 하나 실상 당시 13년간의 행위는 배임 횡령이다. 국회는 임상강사 교원 지위 회복을 소급 적용하는 법안을 냈으나 강사와 학생이 반대하여 회기 만료 폐기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의대 교비나 재단회계 배임 횡령 책임을 면해주려는 법안이었다. 순천향병원, 제일병원-명지병원이 의대 부속병원으로 전환한 것처럼 강남삼성병원, 현대아산병원, 길병원 등 협력병원도 의대 부속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 고려대에서도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천막도 있고.
영곤: 2005년부터 7년 반 동안 고려대에서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2년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젊을 때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보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97년까지 노동운동을 하다가 접고, 8년 동안 자료를 모아 《한국 노동사와 미래》(전3권, 도서출판 선인)라는 책을 냈다. 그 책을 보고 고려대 강수돌 교수님이 자리를 마련해서 강의를 맡겼다. 그때부터 7년 넘게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당시 김동애 본부장은 해직당한 상태였으니까 강사료 40만 원으로 우리 부부가 생활했다. 2013년 고대 본관 앞에서 강사료 인상과 학생 수업 절대평가를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하다가 강사직을 잃었다. 본질은 노조 불인정이었다. 학교 측은 농성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농성텐트와 구호 현수막은 철거하되 집회시위 구호, 현수막 건물진입, 텐트 설치 등에 건당 50만 원을 부과하는 간접 강제금 청구는 기각했다. 이후 학생회관과 교양관 인근 ‘민주광장’으로 천막을 옮겨 농성을 이어간다. 학교 측은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등 다른 강사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반면 학생들은 많이 관심을 갖고 특강도 요청한다.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천여 명의 학생들이 항의 행진을 하고, 강의 배정을 요구하는 2천5백여 명의 서명서를 총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2013년 해고돼 해고무효소송을 했으나 패소했다. 고대는 소송비용을 청구해 서울행정법원은 김영곤에게 고려대에 1천만 원을 주라고 판결했고, 현재 감액신청 재판 중이다.

   
▲ 주말에는 충남 당진에 있는 집에서 머문다. 마을 뒷산에 쓰러진 나무를 잘라 아궁이에 불 때며 겨울을 나고 있따. (사진: 김영곤 제공)

―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유지해왔나?
동애: 먹고사는 것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어려웠다. 빚을 내며 살다가 김영곤 선생이 민주화운동 경력 네 건을 인정받아 민주화운동보상 생활지원금을 받아 썼다. 그런 거 신청 안 하려고 했는데, 생계를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고 대책이 없으니까. 빚 갚고 다시 생활하다가 다시 빚을 내며 살고 있다. 딸이 일정 부분 도와주었는데 요즘은 딸도 파업 중이라 어려워한다.

― 따님도 파업 중?
KBS 기자인데 4개월째 파업 중에 월급이 안 나오니 생활이 어려운가 보다. ‘이 힘든 일을 아빠 엄마는 어떻게 10년 넘게 했느냐’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중에 자기는 일자리를 잃거나 은퇴하더라도 마트에서 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기특하다.

― 평일에는 청와대, 국회, 고려대에서 시위를 하고, 주말에는 충남 당진에 내려간다고 들었다.
부평에서 13년 동안 살다가 집을 비워줘야 해서 몇 년 전 김영곤 선생 고향인 충남 당진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비어 있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주말에는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다.

― 건강은 어떤가? 지금 날씨로는 10분만 서 있어도 얼굴이 얼어붙는 느낌인데.
구안와사가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중풍 위기도 몇 번 넘겼고, 갑상선 기능저하증도 앓고 있다.

― 이렇게 추운 날, 몸도 아플 때는 쉬고 싶을 것 같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나와의 약속이고 강사법 시행에 작으나마 힘이 되니까, 되도록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 강사법이 시행되어도 정작 두 분은 혜택을 입지 못한다.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싸우는 이유가 뭔가?
그나마 있는 강의 빼앗길까 봐 겉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우리를 응원하는 후배 강사들이 많다.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이번에 강사법이 유예되고 나서도 얼마나 많은 후배들이 실망했는지 아니까 멈출 수가 없다. 고 서정민 선생 등 시간강사들의 몸을 던지는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70% 이상의 청년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럼에도 대학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강사들에게 1년 고용, 방학 중 강사료, 4대보험, 퇴직금,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해주기 싫다고 한다. 정말 잔인한 것 아닌가? 아무것도 안 해주겠다는 사람들에게 70%가 넘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미래가 저당 잡혀 있다. 단순히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겨우 강사료 올려 달라고 떼쓰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깊이 숙고해보자는 거다.

― 그만큼 강사의 교원 회복 여부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로 들린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례로 학생들이 상대평가 하는 대학에 입학해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다가 죽기살기로 대기업에 취업해도 행복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학 수업에서 자신을 찾는 수업을 듣지 못해서다. 강사들이 교원 지위가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갑을관계’에 갇혀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강사 자신이 당당해야 하는데 작아진 상태로 어떻게 학생들과 자유롭게 수업을 하겠나. 현실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없는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겠나. 지식사회에서 특히 강조하는 통합적 사고를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 국회 앞 1인 시위 중인 김동애 본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점심 시간이 되면 1인 시위자들이 모인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마지막 질문이다. 1인 시위를 10년 넘게 해오셨는데, ‘한 사람의 힘’이란 무엇인가?
어느 교수는 10년 동안 시험에서 떨어졌으면 이제 포기해야 않느냐는 식으로 조롱을 하더라. 지난 10년을 돌이켜 볼 기회가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일정 소화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긴 시간을 쭉 돌아보면, 계속 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강사법이 의결 통과되었고, 강사법 폐기를 주장하는 이들과 싸워 폐기를 막고 유예를 시켰다. 작은 승리다. 바로 시행을 못 시켰다는 면에서는 참패이지만, 중간중간 유예로 막으며 법안을 다듬는 과정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서 있으면 이정표가 된다. 고민과 토론의 실마리가 된다. 한 사람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건 ‘없는 것’이니까, 정말 끝이다.

 

■ 대학강사 교원 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
    후원 계좌 : 우체국 014027-02-051521 (김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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