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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베트남’ 그리고 한 사람의 힘
[327호 커버스토리]
[327호] 2018년 02월 01일 (목) 11:26:12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goscon@goscon.co.kr

“건축비리 척결해야 나라가 산다!”
“계란선별포장법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
“◯◯◯ 검사를 고발합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하라!”

광장은 매일 뜨겁다. 겨울이어도 뜨겁다. 지난해 4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은 1인 시위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삼엄한 경계와 권위주의적 통치로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광장을 채우면서 청와대 앞은 민주주의 광장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청와대 앞에 가면 많게는 수십 명의 1인 시위자들을 볼 수 있다. 참가자 수만큼 다양한 주제로 대통령에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도 광장에 목소리를 실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촉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 ‘미안해요 베트남’을 펼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이 베트남전의 한국군 민간인학살 문제를 알리며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선 지 오늘로 80일째다. 우리는 왜 끝난 지 40년이 넘은 전쟁을 이제 와서 돌이키는가. 왜 베트남에 미안하다고 말하는가.

1999년 시작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회적 성찰
베트남전쟁에 대한 진실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겨레21〉 보도 이후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과 베트남전 진실위원회 활동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로 제기된 베트남전쟁 진실규명 활동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한국 사회에 의제화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진상규명 활동도 위축되었다. 물론 캠페인 결과 한베평화공원 준공과 베트남 관련 평화교류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등은 큰 의미가 있다.

20여 년 전, ‘미안해요 베트남’ 이후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와 고민 속에 한베평화재단이 출범했다. 정식 인가를 받고 활동을 본격화한 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제기되어온 이 문제를 어떻게 알리고 풀어 나아가야 할 지 고민이 크다.

그 고민 속에서 ‘만만만’ 캠페인을 시작했다. 만만만의 첫 번째 ‘만’은 베트남전쟁이 30년 동안 일어난 1만 일의 전쟁이라는 것, 두 번째 ‘만’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희생자 수, 세 번째 ‘만’은 평화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평화의 연대를 뜻한다. 캠페인 모금을 통해 희생자에 대한 추도 사업을 지원하고 베트남 피해마을을 도울 예정이다. 광장의 1인 시위는 이 만만만 캠페인의 일환으로, 베트남전쟁 종전 43주년이자 베트남 꽝남성 학살 50주기를 맞아 올해 4월말에 열리는 시민평화법정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우리는 이 1인 시위를 캠페인의 이름을 따 ‘만만한 릴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만한 릴레이’를 이어가는 평범한 시민들
시작은 작년 9월 13일, 1300회 수요집회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가 베트남에 사죄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 다음 날부터 바로 시작된 것이 베트남 대사관 앞에서의 사죄 릴레이다. 전쟁 피해자로서의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가해의 역사를 성찰하는 1인 시위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한 달 남짓 정대협의 1인 시위가 끝난 후로는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미안해요 베트남’ 릴레이 시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이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베트남전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시민들이 1인 시위 주자로 나섰다. 재단 활동가들은 다만 보조할 뿐이다. 그 이야기를 옮겨 본다.

과거 베트남 파병부대 중 하나였던 ‘백마부대’에 복무한 어떤 청년은 군복무 중 베트남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자기와 관계없는 무용담으로 흘려들었다가 제대 후 위안부 문제를 접하면서 전시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베트남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해결을 위한 움직임에 작게나마 동참하기 위해 1인 시위 주자로 나섰다.

제주 곶자왈작은학교 선생님과 10명의 학생들이 1시간 동안 5분씩 돌아가며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이어간 적도 있다. 다른 아이들은 옆에 앉아 오카리나를 불거나 노래를 불렀다. 맑고 청아한 오카리나 음색이 허공을 수놓자 광장을 찾은 베트남 관광객들이 관심을 보였다. 1인 시위를 하면서, 예상 밖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만났다.

베트남 관광객을 만나다
피켓에는 이런 글귀가 한글과 베트남어로 적혀 있다.

미안해요 베트남!

평화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두 나라가 진정한 우호와 평화의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군이 남긴 상처를 증거하듯 베트남 중부 곳곳에 서 있는 수많은 위령비의 존재를 되새겨야 합니다. 여전히 온몸으로 전쟁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베트남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전쟁의 진실 앞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다시 한 번 진상 규명과 책임 인정, 그리고 베트남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합니다.

한베평화재단은 한국군 민간인 학살 50주기를 맞이해 한 사람 한 사람의 평화의 마음을 모아 청와대 앞에서 사과의 목소리를 이어가는 1인 릴레이 시위를 펼칩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먼저 우리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합니다.

관광명소로 청와대를 찾은 베트남 관광객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베트남어를 만나고는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1인 시위 주자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유심히 글귀를 읽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피켓 뒤로 빙 둘러서 단체사진을 찍기도 한다. 베트남 관광객들이 ‘미안해요 베트남’ 1인 시위에 보이는 태도가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젊은 층의 경우 베트남어를 만났다는 반가움 정도로 그쳤다면, 중장년층은 매우 유심히 피켓 내용을 읽고 이를 미처 못 본 동행인도 불러서 내용을 말해주고 1인 시위 주자와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는 경우도 많았다.

1인 시위 주자로 참여한 시민은 베트남 관광객의 뜨거운 반응에 울컥하기도 한다. 눈으로 따뜻한 감사를 전하는 베트남 사람,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말하는 사람, 국가가 잘못했지 한국 사람은 잘못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 ‘엄지 척’을 건네고 가는 사람. 그들은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광장을 지나간다. 그들 또한 감동을 안고 떠나갔으리라….

이 글귀는 베트남 관광객뿐 아니라 한국 시민들도 이를 유심히 보고 간다. 한번은 군복을 입은 참전 군인이 다가와 우리 피켓을 찬찬히 읽기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이라면서 한국이 베트남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사과하는 게 맞다고 지지해 주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인솔하는 한국인 가이드의 냉랭한 반응이 아쉬움을 줄 때도 있다. 물론 어떤 가이드는 우리 피켓 앞에 서서 그 취지와 의미에 대해서 한참 진지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가끔 청와대에 국빈이 방문하면 경계가 삼엄해져 청와대 앞 1인 시위가 막히기도 하는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가 그랬다. 이런 경우에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장소를 옮겨 1인 시위를 이어간다. 이때는 베트남 관광객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대신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대상이 되었다. 한 할머니께서 길을 건너려다 피켓 앞에 서서 글귀를 읽더니 “어려서부터 파월군인들의 무용담을 많이 들었고 그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으리라 짐작을 했다”라면서 “베트남 관광을 간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이 나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렇게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난다. 열심히 해주길 바라고 정말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다.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하지 못해 실망했던 마음이 이분을 만남으로써 보람으로 바뀐 날이었다.

베트남전쟁,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교과서에서 베트남전쟁을 배우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참전’과 ‘경제발전’의 공식 너머를 가르치지 않는 거다. 그것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현재 우리의 인식도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그 때문에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 이면의 역사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늘 피해의 역사에 익숙한 우리로선 가해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 무척 생경하고 낯선 일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쟁으로 말미암은 온갖 반인륜적 결과들을 우리가 베트남전쟁에서는 미처 살피지 못한 셈이다. 어떤 총알이 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빗겨가던가. 모든 전쟁에는 군인보다 민간인의 희생이 앞선다. 1964년 미국이 통킹만 사건(베트남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구축함을 공격한 사건으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1995년 회고록에서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을 밝힘-편집자)을 빌미로 베트남에서 전면전을 벌이고, 한국도 그 시기부터 파병을 시작해 총 32만 명의 한국군을 베트남에 보냈다. 한국 청년들이 무려 8년 5개월의 기간 동안 총을 들고 베트남 땅을 밟았다. 그것은 우리 역사에 있었던 가장 긴 전쟁 중 하나이다. 언제까지나 그 역사적 과오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빈호아, 증오비의 마을
한국 사회는 참전기념탑과 전쟁기념관으로 베트남전쟁을 ‘기념’하고 있지만, 베트남은 위령비와 증오비로 그 전쟁을 ‘기억’한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중부지역 마을 곳곳에 서 있는 위령비와 증오비가 한국군 학살을 증언한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

베트남 중부 지역에 위치한 빈호아 마을은 학살을 자장가로 불러 기억하는 마을이다. 빈호아 학살은 1966년 12월 빈호아 마을 일대 주민 430명이 한국군 청룡부대에 집단 학살당한 사건이다. 마을 초입에는 위령비와 증오비가 나란히 서 있다. 학살 희생자의 사망 당시 나이와 이름을 위령비에 적어 추모하고, 증오비로 그날의 학살을 증언한다. 증오비 내용을 보면 학살된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 노인, 어린아이다. 사실은 위령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베트남 곳곳에 서 있는 위령비는 학살 당시 희생자의 나이와 이름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들은 이름 중간에 ‘Thi’(티)라는 미들네임을 갖고 있으므로 위령비만 유심히 보아도 학살의 희생자가 어떤 이들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Vô Danh’(보단)이라는 이름도 반복되는데, 이는 ‘무명’이란 뜻으로 이름도 갖지 못한 한 살 전후의 아기들을 뜻한다. 또 다른 위령비에는 희생자 명단이 가족 단위로 정리되어 있다. 몰살된 가족이 부지기수다. 이 모든 것이 한국 군대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벌인 일이다.

과거를 덮고 미래로 가자?
베트남이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 한다지만, 이처럼 베트남 곳곳은 치열하게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래 한국 정부도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베트남과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양국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해결하지 못한 과거사 문제가 종종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논란이 좋은 예이다. 당시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희생으로 한국 경제가 살아났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발언에 베트남 언론과 지식인이 불쾌한 감정을 표했다. 이 일로 베트남 외교부도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양국의 우호 협력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발언과 행동을 삼가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물론 지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양국 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유감 표명과 피해 지역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인정도 사과도 없이 애매한 외교적 협력만을 추구하는 양국 관계는 여전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실 베트남 사회의 과거사에 대한 반응은 우리에겐 뜨거운 지지로도 다가온다. 지난해 4월말 한베평화재단은 평화의 섬 제주에 사죄와 평화의 뜻을 담아 ‘베트남 피에타’를 세웠다. 베트남 피에타는 위령비에 등장하는 수많은 어머니와, 이름도 없이 죽어간 무명 아기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제작한 것이다. 동상 설립 소식에 베트남 언론과 국민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역사적 과오를 사죄하는 한국의 양심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 동상을 소재로 만든 〈마지막 자장가〉라는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베트남 국영방송 VTV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베트남의 반응을 돌아보면 과연 그들이 과거를 닫았다고 할 수 있을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베트남 정부도 과거는 덮고 미래로 가자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이야기하기 꺼려하는데 왜 너희들은 자꾸 과거의 일을 자꾸 들추어 현재의 갈등으로 만들려 하느냐” 말한다. 또한 “과거의 일을 왜 저지르지도 않은 세대가 사과해야 하느냐”라고도 한다. “역사는 결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시 보자’라고 한다”는 말처럼,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역사를 만들기도 하지만 역사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는 존재이다. 잘못한 역사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없다면 정의롭지 않은 역사가 또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대 ‘베트남전 참전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초석이 다져졌다’는 명분으로 월남전 참전이 정당화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과는 베트남 희생자, 피해자에 대한 것인 동시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현재 많은 기독교인과 교회가 한베평화재단을 통해 ‘미안해요 베트남’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속속 동참하고 있다. 인천의 한 교회는 민간인학살이 벌어졌던 빈호아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목사님들도 재단 설립 과정부터 함께하며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교회도 베트남전쟁의 진실 앞에서 양심과 행동으로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오는 4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개인이 함께 만드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하 시민평화법정)을 연다. 이 법정은 우리 역사 속에서 줄곧 부인되어온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문제를 공론화하고, 진상규명을 통해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시민들이 만든 법정이다. 

시민평화법정은 우선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 퐁넛, 하미마을 학살사건에 한정하여 진실을 밝히고, 과오를 인정하며,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부터 첫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시민평화법정을 통하여 전쟁이 병사 개인의 문제로 수렴되지 않도록, 참전 군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도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과 행동이다. 다분히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그것이 진리임을 믿는다. 독재와 어둠의 시대에서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신산스런 노력으로 자유와 평화와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흔들림 없는 믿음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대지이다.

‘한국의’ 베트남전쟁,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은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더 많은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일이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자신을 가해자 위치에 세울 수 있을 때, 그리고 기꺼이 그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일 때만이 평화가 가능하다. 평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내어 우리는 오늘도 1인 시위를 이어간다. 그 길에 교회도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석미화
2006-2009년까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군 생활 중에 발생하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자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15년에 베트남전 종전 40년을 맞아 한국군 민간인학살 생존자 한국 초청사업을 기획하며 본격적으로 베트남 문제를 만났다. 전 평화박물관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과 평화감수성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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