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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역할을 은사라 말할 수 있을까?
[327호 믿는 '페미'들의 직설]
[327호] 2018년 02월 01일 (목) 13:55:11 달밤 믿는페미 활동가 goscon@goscon.co.kr
   
▲ 냄비밥을 하고 있는 필자의 남편(사진: 달밤 제공)

# 풍경 1
어릴 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 중 하나가 교회에서 잔치국수를 먹던 날의 풍경이다. 분주하고 시끌시끌한 주방,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국수를 먹는 나, 커다란 쟁반 하나 가득 음식을 담아서 테이블에 나르시던 어머니.

어른이 되어 다양한 음식점을 가봤지만 그때 우리 교회에서 먹은 것처럼 맛있는 국수는 먹어보지 못했다. 국물의 감칠맛 하며 쫄깃한 면발까지, 어린 마음에도 ‘우리 교회 국수는 역시 일품이야!’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많이 먹으라며 떡이며 반찬을 자꾸 날라다 주셨다. 나는 바쁜 엄마가 내 접시가 비는지 어떻게 알아채고 맛있는 음식을 계속 채워주시는지 신기했다. 젊은 어머니는 즐거워 보였다.

어릴 적에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때마다 잔치 음식은 여선교회 회원들이 감당했다. 지금이야 뷔페가 흔하지만 그때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총동원되어 음식과 서빙까지 직접 했다. 결혼한 부부가 감사하다고 일정 금액을 내면 그 수익금은 여선교회 선교회비로 쓰였다. 어머니가 가끔 ‘음식에 자꾸 설탕을 넣는 사람이 있다’며 불만스러워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교회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사람이 여선교회 안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풍경 2
대학교에 입학한 해에 비가 많이 와서 농가 피해가 심했다. 총학생회가 수해복구활동(수활)을 조직했고 의협심에 불타던 나도 참여했다. 수활을 가는 날,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남자 선배의 목소리. “어, 달밤아 이리와! 잘됐다, 네가 밥하면 되겠다!”

‘이건 무슨 말일까. 밥…?’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던 나는 매우 당황했다. 머뭇거리며 남자 선배 옆에 가서 섰지만 머릿속으로는 ‘뭐지, 내가 밥을 하는 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식사를 준비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현장에서 뛰고 싶은데 나에겐 선택권이 없는 건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그 선배는 왜 나에게 밥을 하라고 했을까.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지, 밥을 할 줄은 아는지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 날의 일은, 내가 타인에게 ‘여성’으로 읽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매우 인상적인 계기였다. 아마도 그 선배는 여성인 나를 보고 당연히 요리를 할 줄 알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간 집에서 보고 자란 바가 있으니. 수활에서도 여자들이 당연히 요리를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교회에서 늘상 그랬을 테니까. 그날 우리는 모두 모여서 주방을 담당할 자원자를 받았고 집행부를 포함한 남성 몇 명이 자원했다. 나는 자원하지 않았다. 논과 밭에 가서 수해 복구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 남자 선배, 오래 전에 목사가 되었을 텐데 밥은 잘 해먹고 살려나. 

# 풍경 3
결혼하고 남편이 목회하는 교회로 옮겼다. 다니던 교회에 계속 있고 싶다고 했더니 담임목사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부부가 같은 교회를 다니는 게 좋다고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 식구들과 헤어져 낯선 곳에 왔다. 잘 와보지도 않던 동네에 남편이 시무하는 교회가 있었다. 청소년이 열 명 남짓, 새로 온 목사님 장가간다고 결혼식에도 참석한 교인들이었다. 내 포지션은 애매했다. 나는 이 교회에 아무런 정이 없는데, 교인을 대할 때는 자애롭고 따듯한 태도가 버튼 누르듯 작동했다. 낯선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도, 예배를 마치면 인사를 나누며 교인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대화했다. 어려운 날들이었다.

남편이 사람들을 살피고 예배 준비를 하는데 내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결혼 전에도 작은 교회를 다니느라 일당백을 했는데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하고 호기롭게 나섰다. 생각해보면 내가 내 손으로 밥을 하겠다고 나섰다니, 집에서도 안 하는 밥을 말이다. 인터넷을 뒤져 가며 조리법을 찾아 어설픈 요리를 시작했다. 교인들은 초보 사모님이 요리를 한다며 재미있어 하기도 하고 가까이 와서 훈수를 두거나 아예 돕기도 했다. 별 맛이 없어도 맛있다며 그릇을 싹싹 비우는 모습을 보자니 사람 밥 해 먹이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뿌듯했다. 하지만 남자 목사가 설교하고 여성이 밥하는 구도를 내가 또 만들었다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야 주중에 남편이 하는 밥을 먹다가 일요일에 한 번 식사를 준비한다지만 교회에 나오는 청소년들은 ‘여자라서 당연히 요리하는’ 줄 알까 봐, 몸소 성차별적인 교회 교육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무척 고민스러웠다.

남편과 상의해서 매달 마지막 주는 평신도 설교를 넣고 나도 설교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때는 남편이 공동식사를 준비한다. 순전히 성별로 역할이 고정되지 않도록 하는 교회 교육을 염두에 둔 장치였다. 그렇게 몇 달 해보니 웬걸, 아동부 사역은 했지만 공동예배 설교를 해본 적이 없던 내게 설교는 아주 아주 어려웠다. 준비할 때부터 쩔쩔매다 단 위에 올라가면 더 쩔쩔매곤 했다. 이거 괜히 나만 더 힘드네, 성 역할이고 뭐고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외칠 판이었다. 퍽 어려웠던 주일 식사 준비도 점점 익숙해져서 할 만했지만 설교는 언제라도 어려웠다. 나는 점점 ‘각자 그냥 잘하는 걸 하자’고 생각하곤 했다. 흔히들 말하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셈인지도 몰랐다.

밥‘만’ 짓는 여자?
내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이루는 이 경험들에 세 개의 시선이 있다. 교회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여성인 나를 바라본 남자 선배의 시선, 그리고 남편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내 역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 그 세 가지 시선에 맺힌 이미지는 모두 ‘밥을 하는 여성’이다.

밥을 하고 사람을 먹이는 일은 아주 보람 있는 일이다. 기억하건대 어머니는 교회에 불만을 갖지 않고 아주 즐겁게 활동했고, 오랜 시간 주일학교 교사와 속회 속장으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달밤이가 밥 하면 되겠다”라는 말이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그는 왜 내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애초에 왜 여성인 나와 요리를 바로 연결 지었을까. 그의 시선에 여성은 요리를 하며 무리를 보조하는 조력자 상이 맺혀 있었던 건 아닐까? 나아가 교회가 여성들의 역할을 조력자에만 한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러한 교회 여성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1907년 창립된 독노회는 ‘목사와 장로는 세례받은 남자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제한되고 핵심적 정책 결정, 설교 및 각종 지도력 행사에서 여성은 배제되었다. 1912년 조직된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는 좀 더 노골적으로 여성을 배제하여 여성교역자의 사역을 ‘전도’하는 일에만 한정하였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과 공동체를 이끌고 치리하는 자격은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점차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거나 결정하고, 설교권을 행사하는 것은 남성들의 몫이고 여성들은 교역자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보조자 역할에 머물게 되었다.
- 이숙진, “한국교회는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가”, <여·세> 제5호

한국교회 초기에 여성들은 열심을 내어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살림에 성미(聖米)를 모아 교회 재정을 꾸리며, 시간의 십일조를 내어 예배당 건축에 힘을 보태기도 하면서 교회를 확장시켰다. 이런 교회 여성들의 열성이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음에도 제도적 기틀을 잡기 시작한 교회는 여성들의 역할을 “손과 발의 봉사”(백소영)에만 머무르게 한 것이다. 여성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거나 설교하고 교육하며 공동체를 이끄는 모습을 보지 못한 교인들은 자연히 여성이 교회에서 맡는 역할이 ‘밥’이라고‘만’ 생각하게 됐겠지.

마지막 시선에서 나의 어려움은 몇 가지 딜레마와 겹쳐 있다. 호기롭게 설교를 맡았으나, 초보 설교자들이 그렇듯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얼마 되지 않는 설교 기회를 망치면 청소년 교인들에게 여성에 대한 더 안 좋은 인상을 남길까 걱정되었다. ‘잘해야 한다’ ‘뛰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어깨를 짓눌러 예배 5분 전까지도 설교문을 고쳤다. 한두 번 설교를 하고 나면 그 신통치 않음에 괴로워, 아예 내가 이미 잘 할 수 있는 주방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남자들은 잘 못해도 자꾸 세워주잖아. 성장할 기회를 주는 거지. 여자는 한 번 못하면 대역 죄인이 되고.” 팟캐스트 ‘믿는페미’를 녹음하며 동료들과 나눴던 말이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고 경험이 편중되어 있을 때, 성별에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능력이 계발되는 걸 과연 각각의 은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각자 은사에 따라 일하자며 성별 역할을 나눈다면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잘하게 된 일을 계속하면서 마음 편하고 싶은 의지가 내 속에 일렁였다.

지금은 남편이 요리 준비까지 담당한다. 담당이라고 해도 내가 여전히 참여하여 돕고 있으니 혼자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담당이 누구인가는 중요하다. 성별로 역할이 고정되는 걸 막기 위해 내가 남편의 역할에 침투했듯이 남편이 나의 역할에 침투한 셈인데, 이 또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교회 안에서 여성의 노동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 여성을 조력자 역할에만 한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특정한 역할을 성에 따라 제한하지 않고 모두가 고루 나누어 담당하는 것이니까. 교회의 규모나 실정이 다르고 다양한 시도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더 나누기로 하고 오늘의 글은 이만 마친다. 오늘도 교회의 한 축을 감당하며 신앙의 신실함을 지켜나가고 있는 한국교회 여성들에게 진심어린 응원과 동지애를 보내며.

 

달밤(필명)
크리스천페미니즘운동 ‘믿는페미’ 활동가.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기독교 단체에서 일했다. 활동가 동료들과 결성한 여성주의 연구살롱 ‘나비’를 통해 페미니즘을 가깝게 접하고 운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감리교 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상임연구원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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