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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일, 집짓기
[327호 반디마을 한몸살이 13]
[327호] 2018년 02월 01일 (목) 14:29:08 정동철 ‘반디마을’ 올인 멤버, 몸된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 사진: 정동철 제공

착공
삭풍으로 옷깃을 여미던 지난 12월 12일은 ‘올인 멤버’들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날이다. 1년여간 끌어왔던 공동주택 리모델링을 끝내고 네 가정 모두 이주를 완료한 날이기 때문이다. 집을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는 어르신들 말씀처럼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도 노화가 가속된 느낌이다. 대부분 건축이 그렇듯 우리 일에도 변수가 많았다.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탓에 자매들은 애가 탔을 터이고 형제들은 민망했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형제들의 손으로 시작하여 끝내려던 의지는 지켜졌고, 이른 노화와 지친 마음 중에도 감사함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1년 전, 공동체 커뮤니티센터 역할을 해오던 카페의 임대인이 카페를 포함한 일대의 땅을 매매로 내놓았다. 턱없이 부족했던 재정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올인 멤버 4가정이 아파트 네 채를 팔아 이 땅을 매입하면서 모험은 시작되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소작농이 이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사려고 할 것이라던 예수님의 비유처럼 우리도 남들이 보기엔 별로 투자가치가 없어 보이는 땅을 사려고 우리의 모든 것을 팔아야 했다.

우리가 얻으려던 보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방금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가치 기준에서 볼 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조롱을 당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얻으려는 그것은 땅과 집만이 아니라 그것에 담기는 무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인생이라 땅과 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 실현되는 가정, 그 가정들의 연합과 그로 인한 주변의 변화를 보고 싶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린 만족할 만한 변화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의 조롱 혹은 우리가 원치 않는 부러움을 사고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수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손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열심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어느 시절 어느 만큼 이 노역에 동참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부르실 때 주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지난 5년간 인테리어 시공일을 하면서도 그랬다. 처음엔 괜찮은 돈벌이에 재밌는 일이라 공동체 기반사업으로 인테리어를 꿈꾸었다. 그런데 초기엔 일거리가 드물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종횡무진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공동체의 형제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고, 과연 이 일이 좋은 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나라의 최소 단위라고 생각하는 가정이 어려우면, 그 이상의 연대가 행복할 리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한때는 시공을 그만두고 설계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일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지속된 탓에 새터를 매입하고 리모델링을 하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다. 첫 삽을 뜰 때 그동안의 노역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나는 속으로 ‘아 이 모든 것이 이때를 위함이었구나’ 생각했다.

변수
못할 게 뭐 있겠냐며 자신만만해 하던 나를 믿고, 세 형제는 기꺼이 공사현장으로 투신했다. 골격을 잡는 일, 가벽을 세우는 일, 배관, 전기, 조명, 타일, 페인팅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매입한 토지 위에는 이미 20여 년 전에 90평 건물과 60평 건물이 나란히 건축되어 있었고 주인집 30평을 제외한 모두가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북쪽으로 지어진 90평 건물엔 우선 20평형 카페와 10평의 주방과 게스트룸, 40평의 커뮤니티센터가 그려졌다. 그리고 남쪽으로 남은 20평에 1가구가 배치되었다. 남쪽 60평 건물은 삼등분을 하여 20평형 세 가구가 배치되었다.

이렇게 설계 초안이 결정된 후엔 누가 어떤 집에서 살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런 결정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방법으로 ‘사다리 타기’를 했다. 네 자매가 나이 어린 순서대로 번호를 뽑고 사다리를 탔다. 속으로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들 자신의 선택을 기뻐했고, 이 후엔 집주인의 의중에 따라 각 집을 세밀하게 설계하였다. 그러고도 시공을 하는 중간중간 설계를 수정하여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했다.

시공을 하다 보면 언제나 변수는 존재한다. 건축의 경우는 설계도를 따라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므로 본인이 실수하지 않으면 변수가 많지 않다. 그러나 리모델링은 손을 댈 때마다 변수가 생긴다. 이전에 있던 전기, 수도, 배관들이 정확히 파악이 안 되기도 하고 노후로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배관이 속을 썩였다. 여기저기 막히기를 반복해서 배관을 추적해보니 중간지점에서 파손되어 제대로 배수가 안 되고 있었다. 급기야 하수배관 전체를 교체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다음엔 전기가 말썽을 부렸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선들이 너무 많았다. 의심이 가는 전선은 새것으로 모두 교체했다. 상수도 문제였다. 20년 된 배관이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킬 테고 정확히 우리가 쓰고 싶은 곳에 물을 당기려면 그 또한 모두 교체 해야 했다. 복잡하게 세워진 철재 프레임도 큰 골치였다. 기둥들을 중심으로 세 가구를 나눠야 했기에 아무리 잘 처리해도 더러는 방 한가운데 기둥이 버티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런 기둥을 처리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최고의 어려움은 누수 문제였다. 처음 시공을 하는 동안에는 비가 많이 와도 누수가 발견되지 않았다. 75mm의 얇은 샌드위치판넬로 지어진 집이라 열반사 단열재로 내부 단열을 하고 석고판넬로 마감을 하려 했다. 복층이 답답하여 천창을 내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누수가 발생했다. 그 동안 노후되었던 샌드위치판넬의 틈을 타고 물이 흐르다가 뚫린 천창으로 쏟아진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 모든 공정이 시공을 한다기보다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흔히 리모델링 현장에서 한 건만 발생해도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 현장에선 수시로 있었다. 변수는 공사 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력 구성과 상황에도 있었다. 일하기 좋았던 지난 봄엔 우리 모두가 제법 공사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 외부 공사들이 생겨 우리 일을 하지 못하고 돈 버는 일에 몰두했다. 8월이 되어 어디에서도 공사할 수 없는 무더위가 몰려와서야 우리 집을 지으러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을 시원한 바람에 또 외부 공사 두 건을 더 했고, 늦가을 무렵 찬바람이 불 때 우리 집 막바지 공사를 위해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 '올인 멤버' 공동주택 리모델링 예상도

입주
올해 안에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언제나 있어왔던 변수에 대한 긴장감이 엄습해왔지만, 그래도 교두보를 점령하는 돌격대의 심정으로 11월 마지막 날에 우리 가정이 첫 입주를 감행했다. 입주를 위한 이사는 특이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결혼 15년차 세간살이는 건질 게 별로 없었고, 폐기할 게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미니멀라이프를 주창하는 아내의 신념에 따라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가고 모든 것을 나눠주거나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주방을 시작으로 거실과 각 방들에 들어갈 짐들을 조금씩 옮겼고, 마지막날엔 사다리 차를 불러 큰 짐을 내려서 폐기와 재사용으로 나눠 마무리했다. 네 가정이 서로 도우니 이사 비용은 20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 아직 신혼살림이라 포장이사를 한 주영이네 빼고는 세 가정은 이렇게 이사를 했고, 절감된 비용 만큼 새집에 필요한 용품을 구매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이삿짐을 나르며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냈지만, 내 손으로 지은 집에 누우니 흐뭇함이 밀려왔다. 아이들도 처음 생긴 자기 방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19평(실평수 15평) 아파트에 살 때엔 꿈도 못 꾸었던 이야기다. 방이 두 개였는데, 그중 큰방에서 14세 큰딸과 11세 작은딸과 10세 막내아들이 혼숙을 했고, 개인 책상은 함께 쓰는 식탁으로 대체되었다. 큰딸이 사춘기로 폭발하기 직전, 우리는 탈출하듯 새집으로 이사했고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을 얻었다. 우리 다음 명수네, 형기네, 주영이네 순으로 입주했고 그후 한 달여 간 미진한 공사와 개별 가구들을 만드는 일을 진행했다. 12월 마지막 날에는 대망의 오픈 하우스를 했는데 그동안 공사의 과정을 매주 교회를 올 때마다 지켜본 성도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 모든 결과물이 네 가정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우리는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

우리 네 가정이 모든 자산을 정리했을 땐 2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올인 가정은 우리 교회에서도 상대적으로 재정 규모가 적은 축에 속하는 편인데 부러움을 받는 것이다. 연대의 힘이 그런 것이다. 우리 재정으로는 땅도 살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2억 원의 마이너스카드를 활용하여 토지매입에 절반을 사용하고 나머지로 카페와 커뮤니티센터와 네 집을 리모델링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라 많은 분들이 커뮤니티센터의 리모델링 비용을 후원해주셨다. 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집과 가정
이사온 지 사흘 쯤 지났을 때 아이들이 묘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게 정말 우리 집인지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펜션 같이 넘 이쁘고 좋아서, 또 너무나 갑자기 누리는 내 공간과 내 가구들로 기뻐서 혹시 잠에서 깨면 체크아웃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는 거다. 사실 나도 그랬다. 어색함을 애써 눌러 숨기고 있었을 뿐 이 모든 변화가 부자연스럽다.

갑자기 신분이 상승하여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끌며 양반 흉내를 내느라 어그적 어그적 걷는 머슴처럼 모든 게 기쁘면서도 낯설다. 그래서 이사짐을 뺀 빈 집에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좁아터진 이 집으로 이사를 올 때 나는 남쪽으로 열린 큰 발코니 창 너머로 산과 논이 보이는 것이 좋았다. 아랫집이 형기네 집이라 아이들도 층간소음 걱정 없이 자유를 누렸다. 벽에 그어진 아이들의 키재기 낙서를 보니 또 한 번 뭉클해졌다. 진이, 인이, 민이의 눈금엔 날짜와 자란 정도가 빼곡이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아랫집 성훈이와 성연이 키, 더 자랄 리 없는 아내의 키까지…. 

집(house)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게 행복했던 가정(home)이 빠져나가고 나니 빈집은 알맹이 없는 소라껍데기처럼 휑하기 그지없고, 위-잉하는 바람소리만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새집에 꽉꽉 들어찬 아이들을 보니 안도가 된다. 얼마 전까지 공사판이었던 이곳에 알맹이들이 가득차서 역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린 또 언제 어떻게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지 모르는 인생이다. 이사를 갈 때 아쉬울지 서러울지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껍데기에 불과한 것으로 인해 행복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사를 하기 전 포항엔 기록적인 지진이 있었다. 지난해 경주 지진도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지진 규모에 비해 이번 포항 지진 피해는 너무나 막대했다. 진앙지에서 가까운 아파트와 원룸 건물들은 금이 가거나 기울어졌고, 수많은 이재민이 임시로 마련된 체육관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이 흔들리니 사람들의 삶이 무너졌다. 집은 투기 대상일 때가 많은데, 지진은 모든 부동산 거래를 종식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다. 집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가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새집에 들어오면서 나는 다짐한다. 집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며 결코 밭이 수려하여 모든 것을 팔아서 산 것이 아니므로 이 안에 감추인 보화를 더 소중히 여기며 가꾸어야겠다고. 그래서 우리가 또 언제 어디를 어떻게 가더라도 결코 우리의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비로소 예수님의 묵은 예화가 새롭게 다가온다. 재물은 이 땅에 쌓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4) 하셨다. 무서운 말씀이다. 우리의 마음이 이 땅에만 있지 않다면 이 땅이 흔들릴 때 우리는 조금 잃는 자가 될 수 있다. 부디 우리 공동체가 이 땅에 감추인 보화를 열심으로 캐내어 주님의 의도와 방법대로 잘 사용하는 이들이 되길 기도한다.

 

정동철
1971년생으로 울산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IVF(한국기독학생회) 캠퍼스간사로 14년 동안 섬겼다. 지금은 ‘디자인 잇다’ 대표로 일하면서, 몸된교회 전도사로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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