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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없는 믿음이 ‘옳은’ 믿음일까?
[328호 커버스토리] ‘동성애’ 이슈로 갈등 겪는 한동대 내부자의 희망
[328호] 2018년 02월 26일 (월) 15:18:30 정담은 한동대학교 재학생 goscon@goscon.co.kr

김대옥 목사의 재임용 거부가 부당한 이유
2018년 1월 1일, 한동대 김대옥 목사는 학교로부터 재임용 거부 통지를 받았다. 표면상 이유는 재임용 최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과, 한동대 정체성과 맞지 않는 가르침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김 목사를 따랐던 많은 제자들은 학교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에 분노했고, ‘김대옥 목사 재임용 거부 철회를 위한 한동인 모임’이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80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김 목사 면직 반대를 위해 서명했다. 그의 재임용 거부에 이처럼 적극적인 저항이 나오는 이유는 재임용 거부 절차와 사유가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 목사의 삶과 신앙을 통한 가르침에 그를 진심으로 존경해온 재학생과 졸업생이 마음을 모아 연대하였기에 가능한 반향이었다.

많은 언론에서 이미 김 목사의 재임용 거부에 관련한 부당함의 실체를 보도한 바 있다. 학생들이 작성한 성명서에는 좀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김 목사의 실적을 평가하는 과정은 객관적인 요소보다 대학원장의 주관적 판단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적용됐다. 같은 기준으로 같은 활동을 평가받았던 2015년에는 문제가 되지 않고 통과된 것이 2017년 심사에서는 문제로 지적됐다. 주관적 평가 기준은 공란이었고, 따라서 0점 처리됐다. 무엇보다 이의 절차와 재심사가 규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체성’을 사유로 재임용이 거부됐다는 사실은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공론화되어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학생들이 작성한 성명서에는 교수, 직원, 학생, 동문 등으로 구성된 한동대학교의 정체성을 학교나 당국이 일방적으로 정의할 수 없고, 대한민국 헌법이 수호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학교 정체성 운운하며 무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김 교수가 학생들에게 줬다는 혼란의 실체와 근거가 모호하다는 문제제기가 담겨 있다. 배움의 과정에서 겪는 ‘혼란’을 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교육자에게 책임을 추궁한다는 사실이 슬픈 아이러니다.

생각과 신념의 다양성을 용납하지 못하는 학교 리더십을 포함한 일부 구성원들의 이러한 태도는 비단 김 목사뿐 아니라, 배움의 장으로서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학문의 폭을 넓히고 싶어 하는 한동대 학생들에게도 거대하고 실질적인 억압으로 작용해왔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학교 건물이 무너지고, 유례없는 재난에 공포와 혼돈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가 힘들어 했다. 그런데 이 지진의 원인을, 한동대 소속 학회가 동성애 관련 세미나를 열려고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내용의 ‘카톡’과 SNS 게시물들이 학교 안팎으로 퍼졌다.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소수자 인권 강의 시간
당시 임보라 목사님을 초청해 ‘퀴어의 눈으로 성서 읽기’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기획했다가 무산된 ‘한동아시아인권학회’ 학생들은 지진의 트라우마에 더하여, 자연재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마녀사냥’식 비난 여론에도 시달려야 했다. 나는 관동 대지진(1923) 당시 재해의 원인과는 무관한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역사가 떠올랐다. 소름 돋는 기시감을 느꼈다.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가 되었어야 할 한동대 구성원들은 동성애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분열했다.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이 갈등은 이후 비공식 자발적 학생 단체인 ‘들꽃’ 주최로 열린 페미니즘 강연 ‘흡혈사회에서 환대로’에서 고조되었다.

들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책인 《붉은 선》의 저자 홍승희 씨와,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를 쓴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를 초청하여 ‘성노동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기획했다. 임옥희 대표의 발제를 시작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의 저자 홍승은 씨의 진행 아래 두 강연자의 대담이 진행됐다. 그들은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성노동과 섹슈얼리티의 위계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자신들의 삶 경험과 연계하여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그런데 섹슈얼리티의 다양성과, 여성 인권 및 소수자 인권에 관한 주제가 강연 중에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교목실을 비롯한 학교 리더십의 강력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강연을 들으러 온 학생들 못잖은 상당한 인원의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강연장에 왔고, 거기엔 강연 내용을 검열하러 온 목사 및 교수들도 있었다. 작은 공간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당시 필기할 노트와 펜을 들고 강연을 듣고 있던 나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갈등이 정면충돌하며 대치중인 이 장소와 시간이, 마침내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이자 시발점이 되기를 마음 한편으로 바란 것 같다.

   
▲ 학생들이 주최한 페미니즘 강연을 계기로 갈등이 고조되었다. (사진: 정담은 제공)

왜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존중하며 토론할 수 없는 걸까
하지만, ‘페미니즘의 탈을 쓴 동성애의 음모를 직시하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강연 다음 날 학생회관에 붙었다. 페미니즘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한 학생들을 제적하라는 요구, 강연에 참석하면 추가 점수를 주겠다고 한 영문학 교수와 일전에 퀴어 신학세미나를 기획한 한동아시아인권학회 지도교수를 징계하라는 요구, 아무런 근거 없이 김대옥 목사를 ‘들꽃’의 배후로 지목하며 역시나 징계하라는 요구들이 담겨 있었다.

대자보를 처음 봤을 때는 소수 학생들의 극단적 행보라 여겼다. 그런데 그들이 만든 웹사이트에 학교 구성원 400여 명이 서명으로 동참했고, 학교에서 대자보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한 학생들은 학생지도위원회에 소집되어 특별지도 처분을 받고, 추가 점수를 주겠다고 한 교수님에 대한 징계는 지금도 논의 중이다. 들꽃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김 목사님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 했을까.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존중에 기반한 학문적 토의와 토론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것일까. 해결되지 않는 의문과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이런 문제가 JTBC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을 통해 보도되었을 때에도 나는 이번에야말로 대화가 시작되기를, 학교 리더십이 일관했던 불통의 태도를 내려놓고 이해와 포용을 향해 어려운 한 걸음 내딛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기독교 안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밤새워 토론했던 것처럼, 우리도 고민을 멈추지 말고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교회와 구성원들 모두, 또 나 자신에게.

   
▲ 학생회관에 붙은 대자보 (사진: 정담은 제공)

‘더불어 함께함’을 희망할 수 있기를
인간이 어떻게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헤아리려는 그 노력을 멈추고 내 작은 세계의 테두리에 안주하는 순간, 경계선 밖의 사람들은 나와 함께 갈 수 없는 ‘이방인’으로 분리된다. 우리를 낙원에서 쫓아낸, 선악을 판단하는 죄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옳고 그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옳고 그름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을 인간으로서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진리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다.

예수께서도 인간으로서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가족들, 제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병자들, 외국인들, 세리와 창녀들과 교류하시고, 대화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까지도 고뇌하며 기도하셨다. 인도의 왕자였던 고다마 싯다르타도 홀로 수행하고 고행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된 것이 아니다. 그를 수행의 길로 이끈 동기는 그가 목격한 인간의 고통과 수난이었고, 남은 삶 동안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타인들과 나누기를 그치지 않았다. 하물며 우리는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배운 것들을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내가 가진 생각과 신념과 믿음들이 지속적으로 흔들리면서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이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우리가 겪는 갈등과 분열의 아픔이 성장통이 되기를 소망한다. 한동대 친구들과 학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애증’이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학교의 폐쇄적인 환경 특성상 지나치게 보수적인 측면, 일반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학교의 많은 행보들, 종교의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폭력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이 공동체를 사랑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의 20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랑하고 교제하고 배우며 성장해온 터이자,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과 목사님,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학교 밖 사람들에게 교내 갈등을 설명하면 흔히 “졸업하면 괜찮아, 너희 학교가 유별난 거야”라는 식의 피드백을 받아도 전혀 위로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한 여인의 호기심으로 금기시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모든 악하고 괴로운 것들이 빠져나갔을 때, 상자 안에는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봉인되어 있던 질문과 그로 인한 갈등 때문에 서로를 밀어내고 배제하고 잘라내는 데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를 바라보고 ‘더불어 함께함’을 희망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그러나 학교가 정한 ‘옳고 그름’으로 구성원들을 솎아내는 것이 우리가 겪는 많은 혼돈과 아픔의 최종적 ‘대안’이라면 나는 더 이상 희망할 수 없고, 따라서 더 이상 구성원으로도 남을 수 없다.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종종 이 말씀을, 들은 대로 믿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믿음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나는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존재나 말씀을, 혹은 부모의 권위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믿고 따르는 것을 순종 이상으로 여기면서, 해결되지 않는 의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스스로를 비교하며 믿음이 적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어릴 때를 돌이켜보거나, 성인이 되고 만나본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결코 덮어 놓고 주어진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런 것이냐’며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해 무궁한 호기심을 갖고 투명한 눈을 반짝이며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틀에 박힌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는 어른의 한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는 질문에 어느 순간 짜증을 내고 덮어 놓고 믿는 믿음을 강요할 때 명확히 드러난다. 젊은이들이 마땅히 제기할 수 있고 계속 함께 이야기해 나가야 할 질문들을 “원래 그런 것이니 가르쳐준 대로 믿어라” 말하는 교회나 학교 리더십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는 동료 학생들과 학교 안팎의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정담은
한동대학교 재학생이고 포항에 거주한다. 영화와 여행을 좋아한다. 꿈은 ‘프리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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