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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성도’를 재고한다
[328호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
[328호] 2018년 02월 26일 (월) 17:14:10 최종원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교수 goscon@goscon.co.kr
   
▲ CBS 뉴스 '가나안 성도' 보도 영상 갈무리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숫자가 크게 줄고 있다는 뉴스들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거기에 ‘가나안 성도’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가나안 성도 수 5년 새 2배 증가, 현재 가나안 성도 160만 명…. 왜 가나안 성도라고 표현했는지 대충 짐작은 됩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으나 제도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이겠지요.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본질을 외면하는 용어일 수 있습니다.

그 수가 100만이 넘어간다고 하면 전체 기독교 인구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가나안 ‘성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들을 여전히 교회로 돌아올 가능태로서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도 교회의 구조와 운영에 가시적이고 획기적인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이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할 것 같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지속되는 흐름이고, 그 흐름이 한 세대 동안 이어진다면 아예 교회 출석 자체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근대 유럽에서 교회가 쇠퇴해 가면서 보였던 전형적인 흐름입니다. 가나안 성도라고 볼 것이냐, 교회의 쇠퇴라고 볼 것이냐에 따라 처방도 달라지겠지요. 이것이 기존 교회와 신학계가 해 온 고민인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성도 문제는 교회와 개별 성도 사이의 관계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닙니다. 좀 다른 시각에서 교회 이탈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을 근대 사회 구조 속에 놓는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요?

1. 엘리트주의와 대중 신앙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책 《치즈와 구더기》(문학과지성사)는 이탈리아 북부 프리울리 지역에 살았던 메노키오라는 한 방앗간 주인의 재판 기록입니다. 그는 우주라는 것이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치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듯이 자연 발생한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것이 꼬투리가 되어 이단 재판을 받고 결국 1598년 화형을 당합니다.

기존의 지배 계층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 익숙한 방식을 벗어나,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일반 대중의 세계를 메노키오를 통해 드러낸 이 책은 ‘아래로부터의 역사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핵심은 가톨릭이 공식 종교인 이탈리아에서 성직자 중심의 엘리트 종교와 대중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 인식은 크게 차이가 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트 문화와 대중 문화의 불일치에서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메노키오가 자신의 세계관을 스스로의 사고 속에 정립했다는 점입니다. 엘리트 종교에서 부과해 온 가르침을 벗어나 신이나 천사조차도 우주의 물질로부터 생성되었다는 범신론에 가까운 주장은 21세기 오늘에서도 의미 있게 논쟁할 만한 주장이었습니다.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조차도 메노키오는 이 주장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재판 기록에 남아 있는 메노키오의 주장은 도그마화되어버린 교회의 가르침에 비할 때 어쩌면 훨씬 생동감 있는 것이었고,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치즈와 구더기》는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종교성의 실천을 근본부터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메노키오의 이야기는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유럽의 단일한 종교적 가르침이 분화되어 다양한 사고가 가능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가톨릭 교황제라는 절대적인 권위가 무너진 16세기 이후 근대의 컨텍스트(context)에서 유럽의 종교가 맞닥뜨린 고민스러운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엘리트 종교와 대중문화 사이의 갈등은 근대에 심화되어, 중세에 다양하게 용인되었던 것들이 근대의 국가 교회 중심의 상황에서는 수용되지 못한 면이 많았습니다. 메노키오의 시대에는 이른바 마녀사냥이라는 집단 광기가 횡행했습니다. 마녀사냥은 일반적으로 엘리트 지배 계층이 대중의 신앙을 자신들의 세계관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즉, 중세의 느슨한 ‘보편’ 교회 전통에서 이제는 종교의 정체성과 색채가 강화된 교회 전통이 근대에 시도된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 지배체제가 새롭게 만들어가는 이 체제 속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그 규율을 어긋나는 대상들은 배제와 억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마녀사냥은 바로 국가 주도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하는 주변과 타자에 대한 근대의 처방이었습니다.

그 억압과 배제의 대상은 주류 엘리트들이 아닌 사회적 약자, 그중에서도 일반적인 대중들의 삶과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독신 여성, 노인이나 산파 등이었습니다. 제도 종교로 국가의 통합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타자를 배제함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던 근대 시스템이 가져온 병리 현상임이 드러났습니다. 마녀사냥을 다룬 대부분의 책들에서는 이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마녀사냥에 마지막 펀치를 가한 이가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였다고 평가합니다. 데카르트는 마녀사냥은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회의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비극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권위의 위기에 처한 지배 엘리트 계층의 종교 교리를 빙자한 반동적인 대응이 엘리트 종교와 대중문화의 단절을 촉진했습니다. 데카르트와 이후 계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제 역사에서는 의지적인 ‘무신론자’들이 생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역사학자 뤼시엥 페브르(1878-1956)는 16세기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를 연구하면서 ‘16세기의 사회 맥락이나 경험에서는 종교에 대한 희화나 풍자는 가능했지만 무신론은 생겨날 수 없다’고 결론내린 바 있습니다. 페브르의 입장을 따르자면 17세기 계몽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의 심성 속에는 무신론이라는 정서나 이념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트 종교의 권위를 빌려 국가 중심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나타났던 마녀사냥이라는 사회적 광기는 유럽인들의 심성 속에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계몽주의가 프랑스, 영국, 독일에 각각 서로 다른 형태로 전개되어 프랑스에서는 적극적인 무신론이 등장한 반면, 영국에서는 이신론(理神論)이 강화되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영국의 경우 내전 이후 비국교도에게 공직과 대학 교육 기회를 박탈함으로 생겨난 ‘로열 소사이어티’(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왕립학회)는 특이하게도 신학 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과학과 자연철학만을 가르쳤습니다. 상당수 학생이 청교도의 후예였음에도 종교 교육이 대단히 약화된 셈입니다. 청교도 내의 자체적인 반성 때문이던, 국교회의 압박 때문이던 간에 청교도가 자연과학과 이신론 발전에 큰 공헌을 하는 아이러니를 보였습니다. 약간의 시간적인 공백이 있지만, 여타 유럽 국가와 달리 19세기 이신론적 종교를 강화한 유니테리언(Unitarian, 삼위일체 교리에 반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신성만 인정)이 영국과 신대륙에서 세력을 넓혀간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이 유니테리언주의는 초월주의를 낳아 이신론에서 무신론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됩니다.

2. “청년이 교회를 떠나야 미래가 있다”
근대 유럽에서 기독교는 엘리트 종교와 대중들의 인식 차이가 생겨나면서 분화되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으로 근대에서 종교는 계급 이데올로기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정통과 새로운 흐름은 단순히 신학적인 이슈가 아니라 사회 이데올로기 싸움이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엘리트 종교 내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성적인 목소리가 나와 스스로 구축했던 터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온갖 종교 이데올로기를 빼고 단순하고 솔직하게 물어보겠습니다. 탈종교화 이데올로기에서 유럽은 신을 떠난 세속적인 국가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에 대한 가치가 더 존중받는 곳이 되었을까요? 불편하지만 또 다르게 물어보겠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기독교가 확장된 한국은 기독교의 가치와 정신이 구현된 이상적인 사회가 되었습니까?

종교의 권위가 세속의 권위와 혼재할 때, 군림하는 지배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유럽이 국가 중심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그 속에 교묘하게 같은 길을 걸어갔던 종교 이데올로기가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즉, 국가의 일방향 수직적 지배구조가 도전받기 시작하면서 동일한 성격을 지닌 종교의 이데올로기도 힘을 상실해가는 것입니다. 근대의 혁명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지배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반란입니다. 그러므로 지배 엘리트의 지배체제를 공고화시켜 준 종교 이데올로기도 혁명과 함께 위축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구도이지만, 가나안 성도 현상을 엘리트 지배 계층과 대중 사이의 갈등이라는 양상으로 놓고 본다면 많이 다른 해석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교회가 지배 엘리트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유지하는 데 공헌해왔다면, 이제 그러한 틀이 새로운 시대 속에서 깨진 것입니다.

한 3-4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신대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공개 강연을 할 때 나왔던 얘기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지, 도올 선생 자신이 스스로 꺼낸 말이었는지는 모호하나 질문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였습니다. 선생이 내 놓은 답은 “교회에서 청년이 떠날 때 한국 사회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불쾌하다고 무시해버릴 말은 아닙니다. 이 말에는 교회라는 집단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건전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의 흐름에 뒤쳐진다는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집단 속에서 자라나며 세계관을 형성해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기대를 가지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역설이지만, 교회에 청년이 사라진다는 것은 기성 교회 구조에 대해 청년들이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사회를 바라보고 교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의식을 생성시킨다는 것입니다.

3. 영화 <1987>과 한국교회
요즘 영화 <1987>이 뜨겁습니다. 당대를 살았던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도 너도 나도 그 시대 속에 자신을 투영시켜 봅니다. 민주열사들의 이름을 한 명씩 목놓아 부르는 문익환 목사님의 처절한 절규를 많은 이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 개신교가 좀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문익환 목사님이 주류 개신교 및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인물로 인식되었는가 생각하면 지금의 평가는 말 그대로 격세지감입니다. 이른바 민중의 아픔과 함께하기 위해 피 흘렸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절대다수의 교회들은 침묵했습니다. 더 솔직하게 반성해 보자면, 집단으로서 한국 기독교는 국가 근대화 과정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되었습니다. 엘리트 목회자 그룹이 선도하는 이 흐름에 일반 성도들은 제도 종교의 권위와 목회자의 신적 권위 이데올로기에 눌려 변변하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 흐름에 절대다수의 교회가 무임승차하고, 오히려 그 과실을 교회가 차지했던 현실은 그대로 한 세대 만에 한국교회에 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적어도 최근 10년간을 보더라도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지배 집단과 대형교회 엘리트 종교인들의 유착으로 인해 생겨난 병폐는 우리를 너무도 가슴 아프게 합니다. 이 30년의 세월 동안 생겨난 교회 세습, 목회자의 각종 추문, 경직된 신학으로 인한 신학교의 병폐들, 문어발처럼 확장된 기업화된 교회는 성찰하지 못한 교회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일반 성도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수직적 지배 구조에서 제시받는 종교의 가르침이 과연 그러한지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웬만하면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채워주던 이들이 서서히 신성한 종교의 공간을 나와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남으로 인해 사회의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 극적인 상징은 광장의 촛불입니다.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 탄핵 때까지 각성된 그리스도인들이 뭉치는 힘이 획기적으로 커졌습니다. 지난 10년 간 정의롭지 못한 정치체제 및 권위의 폐해와 그 해체를 목도한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가시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지점이 가슴 아픈 모순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개개인의 신앙의 문제는 별개로 하고, 각성된 개인이 변할 것 같지 않은 제도 종교의 구조 속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국가 지배 권력마저 무너뜨린 힘을 체험했습니다. 만약 이른바 ‘가나안 성도’가 지난 10년 간 확대되어온 현상이라면 이러한 사회 구조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탈교회 현상은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현상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마 대형 교회보다는 중소형 교회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대형교회는 여러 기제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집안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주로 대형교회에서 얼토당토 않은 창조과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21세기 회심한 바울’이라고 하는 울산의 모 교수를 자꾸 불러 특강을 들을까요? 얼핏, 대형교회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정말 대형교회가 그들의 실체를 몰라서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묘하고 치밀합니다. 모든 것을 말씀으로 6일만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문자 그대로의 신앙, 대형교회를 깨트리는 마귀의 술책을 막아서야 한다는 당위, 이러한 것들이 그들 스스로 자부심을 높이고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힘이 됩니다. 불행히도 그들의 관심은 한국 기독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내부 결속이며, 여기에 도움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4. 수직 지배 구조의 해체
독재 권력이나 대형교회의 공통점은 일방향의 상명하복식 지배 구조를 갖춘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협상이나 개성공단 폐쇄 등과 같은 중차대한 국가 사안이 치열한 토론 없이 대통령의 지시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합니까? 실상은 담임목회자의 권위가 하나님과 동기동창쯤으로 여겨지는 대형교회 역시 의사결정은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에는 교회의 구조 문제뿐 아니라 개인의 신앙 자세나 가치관 문제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성도라는 조어가 널리 쓰일 정도로 일련의 지속적인 흐름이 있다면 개인의 선택이 바르냐, 그르냐로 접근하는 것은 그리 건설적인 논의가 되지 못합니다.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는 국가 권력에 대한 대응이 촛불집회 참여로 나타나듯이,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며 변화의 여지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교회를 떠나는 것 역시 충분한 선택지가 됩니다.

이 연장선에서 4대강 사업,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권 탄핵 등 일련의 사회적 사건 속에서 제도 교회의 수준과 실체가 드러났고, 전통과 권위라는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을 묶어놓던 교회는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입었습니다. 가나안 성도 현상은 성도 개개인의 선택에서 출발하기보다, 이러한 사회 구도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가나안 성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100만, 200만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가나안 성도라고 분류하는 것 자체는 기만일 수 있습니다. 그 논리라면 영국은 여전히 상당수가 가나안 성도들인 기독교 국가입니다. 심지어 전투적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조차도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를 만난 자리에서 스스로 ‘문화적 성공회신자’(culturally Anglican)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사치레였겠지만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핵심을 개별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서 교회라는 두 가지 주제로 수렴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도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의 삶과 신앙이 지속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신앙은 개인적이지만 종교는 사회와 문화 제도의 산물입니다. 개인의 신앙이 제도를 완전히 벗어나 존재할 수 있을까요? 개인 선택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공동체를 떠난 신앙은 지속성을 갖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신 앞에 단독자로 살아가는 수도사(monk)들도 결국은 서로 격려할 공동체가 필요했습니다. 건강한 종교성은 개인의 신비가 아닌 공동체의 신비를 추구합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는 초월과 계시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나안 ‘성도’라는 표현을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가나안 성도라는 이름 붙이기(naming)는 교회를 떠나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지나치게 순진하게 생각하게 만들 여지가 있습니다. 아울러 교회 역시 이 현상의 흐름을 냉철하게 짚어보고 대처하는 데 뒤쳐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교회가 해야 할 고민의 영역입니다. 기성의 제도적 권위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순응과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한 현실입니다. 이제 교회 내에서 성서 텍스트와 사회의 컨텍스트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목회자들의 목회 관심과 신학의 관심이 일반 신자들의 그것과 차이를 좁혀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엘리트 신학과 대중의 관심 사이의 분리는 심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은연중 품고 있는 ‘차이에 대한 인식’은 대중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뿌리 깊은 성직주의일 뿐입니다. 촛불은 권위에 대한 근원적 재고를 하게 하고, 시민의 힘을 자각하게 한 크나큰 경험입니다. 전통의 권위 위에 생존을 이어가는 교회나 목회자는 이 흐름에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교회를 곤란하게 하는 것도 목회자요,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목회자인, 모든 것이 목회자 중심인 이 수직적인 구도가 도무지 깨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힘들지만 이 구도가 깨질 때 한국교회에 희망이 돌아올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고민이 공론화되어 더욱 열띤 논의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최종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교회사와 지성사를 강의한다. 인문주의 정신의 존중이 교회 갱신의 핵심이라고 믿고,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교회사 재구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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