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호 스무 살의 인문학]

   
▲ 한국 사회는 영어를 욕망한다. 영어는 한국 사회에서 언어가 아닌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www.pixabay.com)

이카루스의 날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듣기는 좋습니다. 길을 걷다가 노래가 들리면 기분 좋게 흥얼대기도 했지요. 그런데 가사를 찾아보면 늘 당혹스럽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음악을 깊이 좋아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막이 따로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정말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가사를 틈틈이, 꼬박꼬박 메우고 있는 ‘영어’였습니다. 특정한 영어 단어를 모르겠다기보다 영어가 그렇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두 문장 이상 영어로 말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으나, 두 문장을 말하면 한 단어는 꼭 혀를 굴리는 영어를 구사하더군요.

물론 힙합은 영어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일입니다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영어 표현을 가사에 삽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만 같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의 복장과 문화를 갈망하고 심지어 그들의 성장 배경까지 탐합니다. 그들처럼 거칠고 험하게 자랐음을 드러내며 이 사회의 평가 방식에 편입되지 않을 것을 외칩니다. 떡볶이 사먹고 집에 가서 구몬 학습지 풀면서 컸다는 것과, 공교육에 복속되지 않을 것을 외치면서 그보다 더 편협한 공중파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힙합은 자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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