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자들 / 주승현 지음 / 생각의힘 펴냄 / 14,000원

명문대 통일학 박사, ‘성공한 탈북민’ 주승현 씨의 이야기. 

“어느 행사장에서 사회자가 ‘잘 정착하여 자수성가한 군 출신 탈북민’으로 나를 소개할 때면 밀려오는 현기증으로 인해 아찔했다. 지난했던 개인사가 떠올라서가 아니라 군 출신 탈북민과 또 다른 탈북민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운이 좋았다는 말조차도 이제는 죄인의 독백처럼 내뱉어야 했다.”(122쪽)

한때 ‘성공한 탈북민’ 수십 명을 인터뷰했던 나로서는 이 부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이라는 기준과 ‘탈북민’이라는 대상이 만들어낸 역경과 감동의 이야기는 (의미는 있지만) 그들의 실존을 알리는 데에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종종 그때 인터뷰한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인간의 무게를 너무 쉽게 가늠하고, 함부로 대상화했던 그 만남들이 밀려와 숨이 막힌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탈북민의 성공담이 아니다. 살기 위해 ‘사선’(휴전선)을 넘어왔으나, 몇 번이고 다시 사선(死線)에 섰던 자연인 주승현의 이야기다. (저자는 ‘마이너리티-탈북민 이야기’를 주제로 본지에 6차례〔2013년 3-8월호〕 연재했다.) 그와는 7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 무고한 탈북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유우성 사건’이 터졌을 때, 그 부당함을 항의했던 탈북민 중 한 명이었다. 간첩으로 몰릴 것을 무릅쓰고 벗을 위해 목소리를 보탰다.

휴전선을 넘어온 그의 탈북 노정은 겨우 25분에 불과했지만, 그날 들러붙은 트라우마는 10년 넘게 그를 괴롭힌다. “지금까지도 비무장지대의 한가운데에서 지뢰를 밟고 서 있는 고약한 악몽만큼은 계속 따라다닌다.” 그의 악몽은 약 3만 명의 탈북민이 겪는 ‘현실’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사선에 서면서도 오기로 버티는 이유는 바로 ‘통일’ 때문이다. “단순히 북한이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통일 문제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남북의 분단 체제를 모두 살아낸 경험자로서, 한반도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난자 중 한 명으로서 통일을 열망한다. … 기형적인 분단 체제 안에서 살아온 남북한 사람들 모두를 비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84쪽)

그는 ‘조난자’인 동시에, 통일의 소원을 내던진 한반도의 ‘마지막 생존자’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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