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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와 제주4·3 그리고 생명의 길
[329호 커버스토리] 사회정신의학자 전우택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의학교육학교실 교수
[329호] 2018년 03월 26일 (월) 15:01:33 전우택 poemgene@goscon.co.kr
   
▲ ⓒ복음과상황 오지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 1990년대부터 인간 치유, 사회 치유 연구에 매진해온 사회정신의학자 전우택 연세대 교수를 만났다. 지난 2016년 발표한 그의 연구는 제주4·3을 비중 있게 다룬다. 〈사회적 통일준비를 위한 연구〉를 하면서, 세부 연구로 ‘통일준비를 위한 남남갈등 극복방안 연구(제주 4·3사건 사례를 중심으로)’를 진행한 것이다. 본문만 120쪽이 넘는 이 연구 보고서에는 자료 분석과 심층 인터뷰를 통한 철학적이고 의학적인 고찰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전 교수에게 우리 사회가 4·3의 ‘트라우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물었다. 트라우마를 주제로 시작한 대화는 ‘한반도 통일’을 넘어 ‘인류의 평화 연대’로까지 확장됐다.

인터뷰는 2월 20일 연세대 의과대연구실 421호에서 진행됐으며, 연구에 참여했던 신보경 박사와 손인배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팀장이 동석했다.

― 4년 동안(2013년 1월부터 2017년 2월) 한반도평화연구원(KPI) 원장을 지내셨습니다. KPI를 처음 듣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KPI는 2007년 2월에 창립된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싱크탱크입니다. 현재 56명의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학자들이 저마다의 학문 분야로 이 연구 기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윤영관 교수가 1대 원장, 고려대 이장로 교수가 2대 원장, 제가 3대 원장으로 있었지요. 지금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덕용 박사가 4대 원장입니다. 이제 10년을 넘긴 KPI의 소개와 성과 등은 홈페이지(www.koreapeace.or.kr)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제 개인 관점에서 보는 KPI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보수와 진보 학자가 함께 어우러진 조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념 차이에 따라 마주 앉기도 어려운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매우 독특한 특징입니다. 둘째는 통일의 현안보다 좀 더 본질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즉각적 분석이나 그에 따른 입장 발표보다는 긴 맥락에서 본질을 성찰하고 장기적인 방안을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활동 범위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작은 연구기관이지만, 점차 교회나 다양한 기독교 기관들, 차세대 학자 및 대학원생 등과 연결되어 커다란 네트워크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 원장으로 계신 동안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었는지요?
우선 기독교 신앙과 통일을 연계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3년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2015년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시리즈’, ‘2017년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찰’ 등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던 것이 그 일환이었죠. 2013년부터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씨네토크’를 진행했습니다. 분기마다 ‘필름포럼’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만석이 되었는데, 잘 정착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이외에도 평소에 바빠서 활동을 못 했던 연구위원들과 함께 연구여행을 하며 밀도 높은 토론을 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들이나 차세대 학자들과의 연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꾸준히 기획하는 등 여러 방향으로 노력 중입니다.  
 
― ‘사회정신의학’ 전공이신데요. 매우 생소하게 들립니다. 
정신의학은 크게 ‘정신분석과 정신치료’ ‘생물정신의학’ ‘사회문화정신의학’으로 분류됩니다. 사회문화정신의학은 개인 병리보다는 개인을 둘러싼 여러 가지 사회 요인 및 집단의 정신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저는 현재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은 사회정신의학과 연계되는 지점들이 아주 많습니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요즘 너무 자주 쓰여서 오히려 그 명확한 의미가 흐려진 것 아닌가 합니다. 개인과 사회를 함께 보는 데 익숙한 교수님께서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지요.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제가 새삼스럽게 새로이 정의내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 단어가 ‘전문 의학용어’로 부터 ‘일반용어’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의학용어가 일반용어로 바뀐 현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요새는 초등학생들조차도 대화를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표현을 매우 자주 하잖아요. 환자들을 대상으로 쓰였던 의학용어가 일반용어가 되었다는 것은 슬픈 현상입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일반화되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이보다 더 극단적으로 슬픈 현상이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일반용어가 되어가는 겁니다. 세월호 사건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한국 사회가 더 거대한 폭력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거죠.

― 의학용어로서 트라우마를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요?
트라우마라는 용어는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외과 용어였습니다. 창으로 사람을 뚫을 때 생기는 상처와 현상을 ‘트라우마’라 불렀고, 외과 ‘외상학’을 트라우마톨로지(外傷學, Traumatology)라고 부릅니다. 점차 정신과 영역에서도 사용하게 된 것이죠. 트라우마라는 용어는 신체의 팔과 다리 등이 떨어져 나가거나 목숨이 위험해지는 극한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나 극한 우울과 절망의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면서 일반용어화되었습니다. 트라우마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폭력과 그에 따른 고통의 의미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거대한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폭력과 고통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학자는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 1930~)입니다. 그는 ‘폭력은 곧 인간의 기본 욕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기본 욕구를 모독당할 때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폭력과 트라우마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죠. 갈퉁은 ‘인간 기본 욕구’를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생존에 대한 욕구, 복지에 대한 욕구, 정체성에 대한 욕구, 자유에 대한 욕구입니다. 이런 욕구들이 모독당하는 것이 곧 폭력이라는 것이죠. 요즘 여성이나 특정 부류의 사람을 차별하고 소외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욕구를 모독하는 폭력의 한 예이겠지요. 이런 모독을 극단적으로 당하는 상태가 트라우마입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일반용어가 되어버렸어요. 다시 의학용어로 특수하게 사용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제주4·3’ 역시 트라우마의 맥락에서 보게 됩니다. 
4·3은 앞서 말씀드린 네 가지 모독을 다 갖춘 비극입니다. 4·3을 볼 때, 중요한 사실 하나는 당시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갔을 때 제주도 사투리를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는 겁니다. 육지인들이 따로 교육받지 않았으면,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그것이 바로 제주도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게 한, 즉 ‘정체성 모독’을 하게 한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억압, 감금, 추방 등은 ‘자유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존 욕구도 처참하게 모독당하지요. 복지 욕구는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전부 폭력이고 개인과 사회에 트라우마를 만들어냅니다. 트라우마는 어떤 현상을 겪을 때 생기는 잔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모독당할 때 뿌리 깊이 파고드는 거라고 봐야지요.

― 교수님은 “사회적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라는 표현도 자주 쓰셨습니다.
인간의 기본 욕망을 모독하는 폭력은, 대다수 집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집단인 경우가 많아요. 국가나 거대 자본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개인 의지와 무관하게 성별, 인종에 의해 피해자가 발생하지요. 그래서 트라우마는 개인 트라우마가 아니라 사회적 트라우마가 관건이라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어떤 계기로 제주4·3 연구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14년 한국 사회가 가진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한국의 현대사 속에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트라우마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4·3, 전태일 분신 사건, 위안부, 광주 5·18 등 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치유되었고, 어떤 부분이 치유되지 않았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내용들을 정식으로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16년 연구 프로젝트로 ‘사회적 통일준비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부 연구로 <통일준비를 위한 남남갈등 극복방안 연구-제주 4·3사건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결과보고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는 ‘온-나라 정책연구 프리즘’(www.prism.go.kr)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 편집자 주)

― 자세한 내용들은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겠지요. 연구 당시의 느낌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4·3은 한국 현대사가 가진 갈등, 아픔, 슬픔을 한 지역이 집약적으로 겪은 가장 극심한 트라우마 중 하나입니다. 제주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아픔이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 그것이 제대로 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그 메커니즘 자체가 ‘2차 가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 좌우 갈등에 의해 생긴 사건이라는 것은 다른 지역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4·3은 그것이 특히 더욱 집약적입니다. 도망갈 수도 없는 제주도라는 완전히 분리된 섬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 집단 학살을 겪은 캄보디아, 북아일랜드 등의 해외 사례 연구도 하셨는데요.
2014년-2016년까지 3년간 해외 사례를 연구했어요. 연세대 박명림 교수, 임정택 교수와 공동연구로 진행했죠. 4·3 같은 극단적인 사회 갈등을 겪은 사회가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고 진행했어요. KPI 포럼을 통해 다뤄졌기에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곧 역사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기도 하고요. 

― 해외 사례를 연구하였기에, 4·3의 특징이 더 잘 보였을 것 같습니다.
통찰과 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4·3만 큰 트라우마를 겪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한반도 곳곳, 아시아 전역, 전 세계 어디서나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작은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과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죠. 한국인 입장에서는 4·3과 6·25 때 비극을 최악의 비참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캄보디아 킬링필드 피해자들은 한반도보다 더 비극적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한국만 ‘더 겪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모든 개인과 국가는 그들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것을 해외 사례를 살피며 느꼈습니다. 둘째는 거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제주 사회가 기적처럼 용서와 화해를 향하여서 무언가…, 단어로는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장엄한’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셋째는 이러한 제주의 화해 움직임이 한국뿐 아니라 남북갈등 극복에도 깊은 성찰의 단초를 줄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화해의 움직임이요?
유족회(제주4·3 희생자유족회)와 경우회(제주특별자치도 재향경우회) 두 집단은 배경과 성격이 다른 기관들입니다. 경우회는 퇴직 경찰관들의 대표 단체거든요. 4·3 진상조사나 노무현 대통령의 4·3에 대한 공식 사과, 희생자 명단과 기념사업 결정과 진행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크게 갈렸습니다. 그러했던 두 그룹이 5년 전 2013년에 화해의 만남을 선언했습니다. 제가 이 연구를 할 때는 그 화해의 3주년을 기념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굉장히 큰 울림을 경험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좌-우, 보수-진보의 갈등이 첨예한 데, 이론적으로 보면 제주도가 이런 화해의 만남이 가장 마지막에 이뤄져야 할 곳이거든요. 그런데 극한적 갈등과 아픔을 겪은 제주도에서 이런 화해가 시도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습니다. 마을 차원에서 공동추모공간을 조성한 곳도 있어요. 하귀리라는 마을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함께 기리며 마을 공동체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것이죠. 오랜 논의를 통해 자발적 모금으로 2003년 영모원(英慕圓) 건립과 합동위령제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는 상가리와 장전리에도 영향을 주어 호국 영령과 4·3 희생자 영령을 함께 기리는 모델로 자리 잡았어요. 이런 만남과 결실 과정에서 주요 관계자들을 심층 면담해 그 의의를 보고서에 담았습니다.

   
▲ 연구 보고서에 실린 제주4·3 합동참배 1주년 기념 사진과 공동 성화봉송 사진

― 이와 관련해 함께 연구를 진행한 분들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신보경: 유족회와 경우회가 1년에 한 번 한 테이블에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었어요.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사실도,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다 아는 상황에서 후손에게 갈등 관계를 물려주지 말자는 굳음 마음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정말 서로를 용서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어요. 그런데 진정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두 그룹이 미래세대를 위해 모여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역사 교육도 참 중요할 것 같은데, 이념에 묶여 있다는 게 안타까워요. 이 분야 연구자들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겠죠.

손인배: 미로슬라브 볼프는 폭력이 증폭되는 과정에 대해 ‘나선형 구조’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화해하지 않으면 폭력은 회오리 모형을 그리며 증폭될 것이고 우리 모두가 팔다리가 절단된 상태로 살아갈 거라고요. 그런데 4·3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하나의 비에 기념한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어요. 숙소에서 시상이 떠올라 시 두 편을 지었습니다. 그중 ‘안녕하구꽈, 잘 잡서’라는 시입니다. (내 아비, 내 누이 / 내 아들, 내 아가 / 홀연히 사라지고, // 이슬 맺힌 엄혹한 아침 / ‘안녕하신가’ // 스산하고 서슬 퍼런 밤 / ‘잘 자시게’ // 하늘로 올라간 인사할 이 / 영령되어 이 땅을 가득 메우니, / ‘이젠 괜찮다. 이젠 괜찮다.’ // 잊혀져도 그만인데, / 내 말 한번 들어보소. / ‘안녕하수꽈, 잘 잡서’)

― 화해의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반화하기엔 어려운 현실인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일부 언론과 여론은 아직은 그런 소식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 같아요. 이런 만남을 확장할 수 있는 한반도 토양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화해 선언 이후, 그다음 해인 2014년에 제주도에서 전국체전이 열렸고, 경우회 회장님과 유가족회 회장님이 공동 성화봉송을 했어요. 정말 의미가 큰 일이었는데, 주요 언론들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양쪽 다 침묵했던 것입니다. 대다수는 아직도 서로가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고, 가해자와의 화해하는 것을 굴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대다수 언론은 공동 성화봉송을 보고 ‘왜 저러지?’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죠. 그만큼 한국 사회 토양은 여전히 척박합니다. 화해의 장면, 상생의 만남에 우리가 꾸준히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을 갖고 외부에도 알려야 그분들도 격려받지 않겠어요? 주변의 엄청난 압력을 이겨내고 어렵게 결심해서 이어가는 만남인데, 양측을 다 격려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런 만남들이 일반화되겠지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외국에도 큰 깨달음과 새로운 방법을 줄 수 있겠고요.

― 인간 치유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절실한 문제 같습니다. 4·3의 상징적 만남이 그런 치유에 기여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북아일랜드에서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그곳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우리 연구자들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관심과 애정으로 자신들의 모든 경험을 나눠주려 최선을 다해주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참 감동적이었어요. 그들은 4·3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자기들을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너희도 큰 아픔이 있어서 온 것이겠지’ 하고 이해해준 거지요. 비참한 사건이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분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한국의 사례를 연구하러 오는 외국의 활동가들이나 연구자들에게 우리가 겪은 실패와 성공, 아픔과 치유를 열심히 이야기해주고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애쓰는 것이 바로 세계를 치유하고 인간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겁니다.

― 워낙 끔찍한 사건이었던 만큼, 치유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위해서 인간은 정직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트라우마를 주는 경우가 매우 많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북한에서 공산정권에 큰 고통을 당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직접 공산주의와 연계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의심이 가면 가혹하게 고통을 주었잖아요. 자기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보복한 겁니다. 이런 트라우마의 순환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갈등의 기간이 길어지면 많은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가해자가 되어, 이 두 개념은 구분할 수 없게 뒤섞이기도 합니다. 가해자 겸 피해자가 되는 겁니다. 이들이 서로 증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같이 보고 서로 위로하며 치유하려고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정직한 노력’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공동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서로를 포용하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시 보복의 굴레에 빠져들게 됩니다.

― 연구를 진행하면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았을 텐데요. 치유 가능성을 의심한 적은 없으신지요?
인간의 잔혹성은 인간의 죄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지요. 죄성을 가진 인간 스스로 그 죄성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저는, 신앙이 인간의 폭력 트라우마에 맞설 수 있는 본질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잔혹성에 편승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용기는 사실 신앙에서부터 오는 행동입니다. 영적 깨달음을 통한 힘이라고 할까요? 간디가 폭력에 맞서서 비폭력으로 인생을 걸으려 했던 힘이 바로 그 영적인 힘으로부터 왔다고 봅니다. 그는 자신을 때리던 사람들에게 조금도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고 했어요. 악을 저지르는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그 원인이 되는 악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좌절할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야 할 길이 있잖아요. 치유(가능성)도 두려움 없이 악을 미워하고 악에 맞서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두려움 없이 악을 미워한다?
악을 미워하고 맞설 때 두려움 없이 맞서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에 관해서 연구하고 글을 쓰면서 주변을 보니까 ‘악을 미워하되 악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말장난이 아니었구나, 본질적인 통찰이 담긴 말이었구나 깨달았어요. 한 예로 상대방을 악의 화신이 아닌 불완전하고 약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해요. 악인을 향해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는가, 인간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소통도 할 수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가 불가능해집니다. 물론 악을 인정하라는 건 아닙니다. 악행의 다면적 다층적 성격을 좀 더 신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는 거지요. 남북문제로 적용해보자면, 단선적 시선으로는 북한과는 대화조차 할 수 없어요. ‘북한이 우리의 주적입니까?’ 하는 질문으로 선/악을 가리려고만 해서는 역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요. 주적인 동시에 한반도 안전과 평화와 경제적 이익을 위한 파트너이자 궁극적으로는 화해해야 할 민족 공동체라는 여러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인간 이해에 다양한 여지를 둬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4·3에서도 많이 느꼈는데요. 역사와 인생의 많은 부분이 칼로 두부 자르듯 선과 악으로 구분 짓기 어렵습니다.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복잡한 회색지대가 너무 많아요. 선명하게 판가름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지요. 인간은 자신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또는 명확히 말할 수 없는 비극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4·3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 어떻게 화해가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저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는 인간 이해, 여지를 만들어가는 힘을 보여준 분들이 계시지요.

― 앞서 “신앙인들이 좌절할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 다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셨잖아요. 예수는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인간 존재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정치적 억압 속에 죽어가고 수탈당하는 인간 속으로 왔다는 것은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들, 악에게 밟히는 인간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려고 오신 겁니다. 이를 위해 당신이 몸소 십자가를 통해서 직접 몸으로 트라우마를 겪었죠. 원래 뜻 그대로 ‘외상’을 입으신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가 영적 고통만이 아닌, 가장 일차원적인 몸의 고통을 깊이 느끼면서 인류를 구원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채찍을 맞고, 나무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으셨어요. 100% 몸의 고통입니다. 왜 메시아는 쇼크 상태가 되는 극단의 아픔과 목마름, 그 몸의 고통을 겪으면서 인간을 구원하였을까요? 이것은 바로 몸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육체, 영혼, 정신, 사회적 고통이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육체 고통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육체적인 것이 가장 영적인 것이고 정신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는 인간의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알고, 동시에 회복하시면서 치유와 생명의 길을 여신 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힘들지만 그의 길을 걸어야겠지요.

― 우리가 고통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것이 사회 치유를 위한 전제 조건인 듯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중국발 미세먼지와 황사로 고통을 겪고 건강 나빠진다고 어린아이들의 질병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의 대책 마련에 너무 소극적인 중국을 향해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먼 거리를 날아온 미세먼지도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히는 데 중국 현지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은 몸 상태가 어떨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내 몸과 그들의 몸이 서로 연결된 것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성숙한 사회가 됩니다. 책임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몸이 다른 이들의 몸과 연결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내 아이가 희생된 것이 아닌데도 유가족이 느꼈을 그 트라우마를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함께 느끼고 겪었습니다. 그만큼 성숙한 인간, 책임 있는 존재가 우리 사회에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였습니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많은 시민이 아파하고 애도하고, 결국 정권이 바뀌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지닌 굉장한 가능성이고 희망입니다. 사회와 사회의 연결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북한 사회가 우리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도 건강해질 수 없다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정신, 몸-몸, 사회-사회가 서로 연결되었을 때 전 인류는 하나의 ‘연대성’을 갖습니다. 정신-몸-사회의 연결은 앞으로 더 깊이 고찰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이 세계에서 나만, 우리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님을 늘 깨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정리 이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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