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호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 '삼일절 구국기도회' 집회 장면 (사진: JTBC <뉴스룸> 3월 1일 방송 화면 갈무리)

1. 광장에 선 ‘구국의 기독교’
해마다 벌어지는 일이니 굳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만, 지난 삼일절에 광장에 모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애국과 반북, 반정권, 친미를 부르짖던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의 추태는 올해 유독 심했습니다. 그저 설 자리를 잃어버린 수구 세력의 몸부림으로 측은히 바라보기에는 신앙의 이름으로 여과 없이 내뱉는 어휘들이 지나치게 섬뜩했습니다. 행여 기독교에 애정과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완전히 등을 돌려버리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잔혹성을 보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십자군 원정을 위해 참가자들을 모집할 당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십자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설교를 마치자마자 청중들은 전의에 불타올라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광장에서 구국을 외치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서 그때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난 삼일절 집회 주관단체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과거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찬성했습니다. 교회가 국가의 존재와 국익을 위해 봉사하고 국가의 목적과 이익에 대해 동일한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상호 이익이라는 관점입니다. 이 때문에 국가와 교회가 상호의존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한국기독교는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01년에도 한기총은 ‘한국의 특수한 안보 상황에 대한 고려’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입법에도 반대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휴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특수 상황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반국가적 행위로 폄하하여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이해와 국가의 이해가 일치한다는 대체적인 합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며, 교회는 국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교회 하면 자칭 ‘애국보수’가 떠오르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교회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요? 불편할지 모르지만, 그 뿌리를 찾아갈 때 우리는 오늘 기독교가 고민하고 돌이켜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국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국가라 해도 궁극의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개별 국가가 요구하는 가치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충돌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가치를 그리스도인들이 연대하여 실천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이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부터 현재까지 국가 이념에 경도된 교회에 대해 한번쯤은 의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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