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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calling)과 ‘부리심’(handling) 사이
[329호 믿는 '페미'들의 직설]
[329호] 2018년 03월 26일 (월) 17:00:08 Dora희년 goscon@goscon.co.kr
   
▲ "누군가의 딸·아내·엄마로만 여겨질 뿐 자신을 오롯이 설명하는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여성들에게 복음은 '이름'을 선물했다." (사진: Public Domain Picture)

나를 둘러싼 호명에 적절히 반응하며 살아온 지 어언 28년이다. 여기 얽힌 몇 사건이 기억에 있다. 우리 집은 딸만 넷인 딸 부잣집이다. 남들은 ‘집안 분위기가 화사해서 좋겠다’ ‘나중에 딸들이 부모님께 크게 효도한다던데, 희년 부모님은 호강하시겠네’ 등등 듣기 좋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거기엔 은폐된 슬픈 속사정이 있다. 우리 엄마가 줄줄이 네 명의 딸을 낳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지금보다 남아선호가 더 심해 여아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마침 ‘아들 배’ 모양이고, 태중에서 내가 워낙 활발하게 놀아서 집안 어른들은 ‘아들’이라고 확신했단다.

이런 집안 어른들의 강한 추측은 곧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나, (어른들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나는 명확히 ‘여성’이었다. 그래도 ‘상징적 아들’을 포기 못하셨는지 남성들만 쓴다는 돌림자를 내 이름에 친히 새겨주셨다. 나는 아빠 직계 가족에서 돌림자를 사용한 최초의 여성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희년은 장군감이야!” “우리 집안에서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희년은 고추만 달고 나왔으면 완벽했을 텐데!”라는 말들을 듣고 자라며 이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했다. 어릴 적 화장실에서 돌출되지도 않은 성기를 부여잡고 서서 소변을 보다가 입고 있던 바지를 버리기 일쑤였다.

‘사모감’에서도 ‘목회자’에서도 이중 배제
그랬다. 집안에서 상징적인 아들 역할을 맡은 내게 쏟아지는 수식과 호명은 언제나 남성 중심의 언어였다. 중학생부터 대학원 생활에 이르기까지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나는 언제나 상을 받고 임원 역할을 맡았다. “희년이 집안의 기를 살리네! 역시 집안의 기둥 역할을 잘 수행한다” “어쩜 여자치고 저렇게 당차고 똑똑할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아들 같은 딸’이다”라는 말이 따라왔다. 칭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칭찬’은 내가 신학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마이너스로 다가왔다.

신학대에서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사모감’이라는 호명이 떠돌아다녔다. 각기 다른 남성들은 자신의 목회를 ‘보조’할 여성들을 신학교 안에서 찾아다녔다. 기가 세거나, 똑똑하거나, 목회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이 뚜렷한 여성들은 자연히 사모감에서 배제됐고, 나는 남성 신학생들 속에서 사모감으로 언급조차 안 됐다. 그렇다고 내가 신학교 안에서 ‘목회자’로 호명된 것도 아니다.

몇몇 교수님들과 목사님들은 수업 시간에 “갈수록 목회하기 힘든 현실인데 여성들은 오죽 더 힘들겠니. 그러니 일찌감치 목회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둥, “여성 교인들이 여성 목사를 더 싫어한다. 여자 목사의 말과 사역은 남성에 비해 권위가 떨어진다”면서 “진짜 목회를 하고 싶으면 목회자가 되지 말고, 목회를 하는 남성을 만나서 남편의 목회를 돕는 사모의 역할을 하라. 사모의 역할 속에 진짜 다양한 목회의 경험을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을 “여성들에게 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랍시고 일종의 ‘설교’를 했다.

내가 만난 남성 대부분은 나와 신학교에 들어온 계기,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역의 방향과 목회의 청사진에 대해서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신학교에서 ‘사모감’과 ‘목회자’로부터 이중적으로 배제되었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려면 정말 특출날 필요를 느꼈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이를 악물고 학업에 몰두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학교에서 늘 성적장학금을 타고, 수석으로 졸업하니까 사람들은 그제야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공부하고 싶은 분야,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사실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온 내 위치와 호명에 의문을 늘 갖고 있었지만, 2년 전 페미니즘의 가치를 내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를 둘러싼 ‘호명’의 실체를 파헤치고 싶어졌다. 신앙적 양심이자 신학적 작업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믿음(信)이란, 사람(人)의 삶을 둘러싼 말(言)들의 다양성을 톺아보고 각자의 삶을 구성하는 말들의 다름을 인정함으로 깨닫게 되는 성찰의 내용을 다시금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성서를 재해석하기는 물론이고 교회에서 남성이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호명한 ‘여성’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여성의 경험에서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자연스럽다고 당연하다고 여겨져 온 것에 ‘불편함’을 제기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도라희년’이라는 새 이름을 짓다
내가 다니던 신학대 도서관 출입구엔 기독교 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 사진과 더불어 삶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유심히 살펴본 인물은 전삼덕 전도부인이다. 그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으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지만, 예수를 만나면서 자주적 인간이 됐다고 고백한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확실한 것은 초기에 기독교가 전한 복음이 사람대접 못 받던 한국 여성들을 존귀한 사람으로 복권하는 해방을 선사했다는 점이다.

늘 아버지의 딸, 오라비의 누이, 남편의 아내로만 여겨질 뿐 오롯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이름을 (실제로는) 가져보지 못한 여성들에게 기독교 복음은 ‘이름’을 선물했다. 부여받은 세례명은 그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놀라웠다. 단지 호명이 바뀌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종속되던 삶이 자주적인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보니 나 또한 전삼덕 부인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 이름 안에는 ‘남성답게’ 자라기를 염원하는 가족들의 기대감과 남성성의 상징들이 부여됐기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닉네임이 필요했다. 몇 달간 고민을 거쳐 ‘도라희년’으로 스스로를 새로이 정체화하고, 또다시 몇 달간의 고민을 거쳐 나는 2017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고 SNS로 선포(?)했다. 본명으로는 볼 수 있어도 볼 수 없는, 듣지 못한, 말할 수 없던 모든 것들이 새 이름 안에서는 가능했다. 나를 페미니스터(Feminister, Feminism+Minister)라고 명명한 것도 ‘도라희년’이라고 새롭게 호명한 덕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서 여성을 호명하는 방식은 구태의연하다. 많은 목회자들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게’ 창조됐고, 성별에 따라 정해진 역할이 다르다고,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주장한다. 여성은 출산과 양육, 음식 만들기, 청소, 설거지, 그리고 남성에게 순종하기에 특화됐다고 계속 가르친다. 나이가 적든 많든 여성에게 ‘현모양처’가 되라고 강요하는 교회는 실은 여성을 부려먹기에 급급하다. 이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역이라고 포장한다. 불편하다 못해 역겹다.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늘 교회 주방에 갇혀 있는 여선교회 성도들의 애환이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서 여신도들은 매주일 부리나케 1부 예배를 드리고 (심지어는 예배를 못 드리더라도) 일단 교회 주방으로 출근한다. 2부 예배 후 우르르 내려오는 교인들의 배꼽시계에 맞춰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그녀들의 손과 발은 바쁘다. 밥과 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는 그녀들이 흘린 땀과 만나 짠내를 더하고 뿌옇게 식당의 유리문을 장식한다. 교인들이 식탁에 흘린 음식물을 치우는 것도, 그들의 식판을 닦는 것도 여신도들 몫이다. 매주 반복되는 이런 전쟁 통에 반찬 맛까지 평가하는 무례한 교인들은 야속하다 못해 밉다. 이뿐 아니다. 교단 부흥회 행사에서 사회와 기도, 헌금위원 등은 대부분 남성들이 맡았다. 여선교회 구성원들이 등장한 순서는 바로 ‘특별공연’ 시간과 부흥회 후 간단한 식사를 즐기라며 안내해 준 ‘식당’ 공간에서다. 행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공연을 준비한, 행사 후 허기진 이들의 음식을 준비한 여성 평신도들 모습에서 나는 같은 평신도 사이에서도 성별로 사역을 차별 부과하는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았다.

“정말 아담은 남자, 하와는 여자였을까?”
사실 감리교단 여선교회는 교회에서 밥하라고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여성 교육의 필요성, 남녀 평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관계에서 공개 토론을 진행했다고 한다. 초기에 성평등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여선교회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밥하고 설거지하는 노동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오히려 여선교회 본래 목적을 왜곡하고 변질시킨 교회와 남성들이 하나님 뜻을 거역하는 무거운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첫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창세기 2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창세기 2장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싫다. 그 해석은 특히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내겐 언제나 무거운 짐이었다. 언젠간 새로 해석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쉽사리 그 무거움이 해결되지 않았고,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매듭을 풀게 해준 한 줄기 빛은 학교 선배와 어느 날 나눈 대화를 통해 비쳤다. (할렐루야!) 어느 날, 그 오빠와 장장 8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의 고민들에 오히려 새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과연 아담은 남자였을까? 하와는 여자였을까?” “성서에 보면 히브리어로 아담은 흙이라는 뜻이고,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인데, 이게 왜 남자와 여자로 읽혀진 것일까?” “어쩌면 아담이라는 단어를 남성이 ‘독점’한 것은 아닐까?” “남성이 독점한 영역에서 제외된 여성들에게 놓인,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인 하와라는 여집합에 여성들이 배치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을 생각하며 창세기 2장을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사람’이 어느 순간 ‘아담’으로, 또 어느 순간 ‘아담’이 ‘남자’로 명명되고 있었다. 이후 계속 창세기 2장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다. 그동안 창세기 2장이 성차별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히려 페미니즘의 언어와 세계관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사실이 보였다. 하와, 히브리어로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은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에 갇힌 제한적인 단어가 아니다. 사실 하와가 창조되기 전 아담의 삶은 생명력에 결함이 있는 흙과 같았을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묘사하는 창조세계는 축축한 습기만 가득했다. 창세기 1장에 묘사되는 창조의 ‘알록달록함’은 2장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 아담이지만, 그래도 아담 삶에서 생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하와가 아담의 삶에 나타난 것, 그리고 그의 삶에 스며든 것은 아담에겐 또 다른 생명을 얻는 삶의 변곡점이 됐고 이로 인해 살 만해진 것이었다. ‘생명’의 하와, 그녀의 존재는 흙의 존재에 진정한 생명을 불어넣어줄 동역자이자 파트너였다.

창세기 2장에서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음에도 여성의 창조성을 묵살하고 은폐한 남성 중심적 신학 해석은 큰 죄다. 하나님의 섭리를 운운하며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안에서만 호명하는 것은 그저 여성을 유용한 도구로 써먹는 ‘부리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새롭고도 열린 성서해석을 지향해야 한다. 하와를 생명이라고 호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나는 아들 같은 딸도, 사모감도 아니다. 한 남성을 보필할 아내나, 모성을 가진 어머니로서의 내가 아니다. 교회가 규정한 영역에 맞춰 살아야 할 ‘참된 여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며, 고유의 창조성을 맘껏 발휘할 능력이 있다. 나는 가부장적인 교회 역사가 독점한 성경의 언어와 해석에 균열을 내고 싶다. 여성을 마음대로 규정하고 호명한 죄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부르심’을 가장한 남성 중심의 ‘부리심’에서 해방되고, 나를 생명으로 부르신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 내 정직한 신앙고백이다.


Dora희년(필명)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필자의 영어 이름 Dora와 희년을 합친 필명으로, “여성들의 삶에 찾아오는 희년은 신의 선물이자 은총”이라는 뜻이다. 페미니즘에 입문하고 모든 것이 흔들려버렸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을 즐기며,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목회자 곧 ‘페미니스터’(Feminister)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졸업 예정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전문상담원교육을 이수한 후 전화상담을 하고 있으며, 기독교 페미니즘 단체인 ‘믿는페미’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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