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호 스무 살의 인문학]

▲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자기 의지와 욕망의 '주체'였던 적이 있을까요? (사진: Alex lby on Unsplash)

‘증세 없는’ 복지
제 독일어 선생님은 스위스인입니다. 그와는 네 달 정도 함께 공부했는데 그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척 친해졌지요. 선생님과 이야기하면 늘 새로운 세상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독일어라는 언어로 세상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스위스인과 종교·사회·문화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더 놀라울 정도의 신선함을 선사합니다. 수백 년간 왕이 없었던 소규모의 직접민주주의 문화에서 신(God)을 인식하는 방식은 100년 전까지 철저한 왕조였던 국가의 신 인식과 같을 수 없고, 공용어가 4개인 국가와 ‘서울말’을 배우는 국가의 이방(異邦)을 들여다보는 관점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제게 보여줄 재미있는 자료가 있다고 해서 보니, 스위스에서 온 웬 공문입니다. 내용을 조금씩 뜯어보니 세금에 대한 글이네요. 오랜 기간 세금을 동결했는데, 이번에 세금을 올릴 수 있도록 기존의 동결안을 파기할 투표를 진행할 것이고요. 저로서는 그 공문이 어지간히 신기했습니다. 여러 공용어로 기록된 점도, 그 공문을 전 세계에 있는 전 국민에게 발송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동결안 파기에 찬성할 것이냐고 선생님에게 묻자, 제 예상과 달리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세금은 덜 내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묻자 세금을 낼 때야 조금 후회하겠지만, 공적인 일을 위한 것이니 올릴 때는 올려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스위스 여론도 모두 찬성하는 쪽이라고 하더군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증세에 찬성하는 사회라니요. 한국 정치에서 증세에 찬성하는 여론이 있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증세는 금기어지요. 정치 공세를 할 때도 ‘그 일은 세금을 잡아먹는다’가 주된 공격이고, 그런 공격에 ‘꼭 필요한 일이니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방어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세금 안 올리고도 이 일을 할 수 있다’ 식의 이야기나 하지요. 세금 올리는 이야기만 나와도 부정적인 감정이 확 솟고요. 오죽하면 ‘증세 없는 복지’를 표어로 삼을 정도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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