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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어미의 품에서 감자가 달게 익었다
[329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
[329호] 2018년 03월 28일 (수) 11:02:02 최 은 goscon@goscon.co.kr
   
 

낮이면 집집마다 제상에 오를 돼지들의 비명이 마을을 채우고, 밤이면 사람들의 곡소리가 이집 저집을 오가며 출렁거렸다지요. 한 날 한 시에 사라진 500여 영혼을 맞이하는 제주 산간마을 제삿날의 기이한 풍경을 40년 전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은 그렇게 기록했습니다(《순이삼촌》 1978). 올해 4월에도 안산 어느 동네는 한 날 한 시에 떠난 수백 명을 부르는 곡소리로 뒤덮일 겁니다. 마침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에는 ‘끝나지 않은 세월2’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요. 세월이라는 말만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건, 2014년 4월 16일의 ‘세월’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아, 그 아이들은 지슬의 섬 제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지슬, 그들의 뜨거운 감자
1948년 10월, 제주도에 미군과 신정부가 소개령을 내립니다. 해안으로부터 5km 바깥의 주민들은 모두 빨갱이로 여기고 몰살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돼지 한 마리뿐인 원식이 삼촌(문석범), 다리가 불편한 노모와 둘째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둔 무동(박동순), 순덕(강희)을 좋아하는 청년 만철(성민철)과 상표(홍상표), 용필(양정원)과 경준(이경준) 등이 비좁은 구덩이로 모여 들었어요. 그들은 곧 ‘큰 넓궤’라는 동굴에 숨기로 합니다.

그 사이 마을에는 군인들이 들어왔습니다. 김 상사(장경섭), 고 중사(이경식), 백 상병(백종환)은 잔혹한 토벌을 주장하는 무리이구요, 박상덕 일병(연준)과 한동수 이병(김형진)은 쉽게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는 졸병들이었습니다. 동굴과 마을, 두 공간을 위태롭게 오가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그들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무동은 품에 구운 지슬(감자) 한 보따리를 들고 있었어요. 노모의 생명과 맞바꾼 귀한 양식이었습니다. “지슬이 유난히 달다”고 동굴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역사적 비극을 재현하는 방식: 왜 광녀와 지식인이어야 했나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지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고 좌우 대립으로 하루아침에 운명이 뒤바뀌는 일이야 한반도 어디서나 그랬겠지만, 친밀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 일은 더욱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됩니다. 〈지슬〉은 제주4·3세대의 복잡한 공존 방식을 보여줍니다. 한때 일제 총을 들고 활보했던 아재는 미제 총을 든 청년에게 기를 못 펴는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 순사였다가 신정부의 경찰이 된 아비를 둔 상표를 향해서는 “니 아부지도 다 살려고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그에게도 기꺼이 숨을 공간을 내어줍니다. 이들은 무덤덤한 걸까요, 유독 너그러운 걸까요.
실상은 동족간 비극을 재현한 다른 서사들 사이에서도 〈지슬〉은 특별한 어조를 지닌 작품입니다. 일단 〈지슬〉에는 ‘광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순진무구한 희생자’로 비극성을 강화하는 일은 역사를 재현한 서사에서 흔한 일이지요.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에서 심혜진, 〈웰컴 투 동막골〉(2005)이나 5·18을 재현한 장선우의 〈꽃잎〉(1996)에서 머리에 꽃을 꽂은 소녀들이 생각납니다. 관찰자로서 지식인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시인 김철은 곧 예술이자 역사입니다. 관객들이 이입 가능한 서사의 장소로 초대받는 곳이 바로 그의 자리이기도 하겠지요. ‘외지인-남성 지식인’이라는 특권적인 위치말입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에서 ‘나’는 기록이나 판단뿐 아니라 부채 의식과 죄책감까지 떠안습니다. 4·3 생존자인 순이삼촌의 자살에 대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슬〉은 이런 서사들과도 다른 맥락에서 4·3을 재현합니다. 김 상사를 거역한 두 병사가 벌을 받는 모습은 위아래가 전복된 클로즈업을 통해 ‘거꾸로 생각’할 줄 아는 인물들을 표현한 명장면입니다. 빨갱이라는 게 있기는 하냐는 질문에 대해 박 일병은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것은 빨갱이 때문이 아니라 명령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관습대로라면 관객들의 판단을 성공적으로 매개할 수 있었을 이 인물을 영화는 매정하게 제거하고 맙니다. 대신 그 자리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고 계급과 성별마저 모호한 주정길(주정애)이 있습니다.

〈지슬〉의 4·3 재현과 역사의 해답
〈지슬〉에서 유일하게 이유 없이 악한 김 상사는 똥을 눌 때, 배고플 때, 목마를 때, 아플 때 매번 “정길아!”를 외칩니다. 마치 어린애가 엄마를 찾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정길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지요. 흥미롭게도 주정길을 맡은 배우는 〈지슬〉의 여성 스태프였습니다. 영화 내내 그가 내뱉은 대사는 단 두 문장입니다. “이제 그만 죽이세요.” “잘 가요, 형.” 그것은 오랜 폭력의 순환을 끊어내는 선언이었습니다. 여성의 흔적을 다 지우지 않은 목소리로 김 상사를 “형”이라고 부른 것이 인상적입니다.

정길의 존재와 가마솥, 죽음의 이미지는 여러 모로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 신화’를 모티프로 합니다. 거대하고 힘센 여성 설문대 할망은 노동과 배설을 통해 제주도를 창조합니다. 바다에서 못 돌아왔거나 학살로 사라진 남성들이 많은 제주 특유의 아픔이 담겨 있겠지요. 그에게는 5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는데요. 이 할망은 아들들을 위해 죽을 쑤다가 솥에 빠져 죽습니다. 엄마가 빠진 솥의 음식을 아들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예요. 감자를 끌어안고 죽은 무동의 노모가 주민들을 먹여 살린 것과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연약하고 무고한 희생자-광녀와 판단의 주체로서의 외지인-남성 지식인 구도는 〈지슬〉에 이르러 이렇게 균열을 맞습니다.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던 희생자는 심판자와 구원자가 되고, 판단의 주체로서 지식인 남성은 사라집니다. 대신 영화는 미리 세팅된 특권적인 한 남성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관객 각자의 위치에서, 4·3사건을 주시하게 합니다. 제주 방언을 고집하고 과감하게 대사에 한글자막을 달면서요. 이런 방법으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외지인’ 시각을 획득하게 됩니다.

제주도민인 감독은 제주의 아픔은 제주의 언어로, 제주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정서와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들었을 때에 가장 잘 재현되고 치유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하고 감동하거나 부채 의식을 표하는 대신, 폭력의 한복판에서 그들이 웃고 울고 사랑하고 다투고 농을 치는 것을 그저 보고 들어달라고 말이지요.

영화가 제안하는 대로 잠잠히 지켜보자면, 마침내 동굴의 매캐한 연기 속에서, 차마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비좁고 어두운 와중에 그들이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미안하다. 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저도 형님한테 못된 짓 많이 했는걸요. 잊어버리세요.” “나도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그들은 제주도민들이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고, 그것이 치유와 위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소위 외지인들로서는 감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발언이었겠지요. 이 영화 〈지슬〉의 윤리이고 자신감입니다. 어쩌면 다큐멘터리 〈공동정범〉(2016)이 용산의 망루에 올랐던 ‘동지들’의 갈등과 아픔을 다독이는 방식과도 닮아 있네요. 어떤 웅변과 강론보다 설득력 있는 재현의 힘이 여기 있습니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하고 아픔은 서술되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의 언어로 말입니다. 자막을 읽듯 꾸덕꾸덕 그들의 언어를 되짚어가다 보면 혹시 우리도 그 어미의 뜨거운 살, 즉 타인의 고통을 먹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될까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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