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

   
 

낮이면 집집마다 제상에 오를 돼지들의 비명이 마을을 채우고, 밤이면 사람들의 곡소리가 이집 저집을 오가며 출렁거렸다지요. 한 날 한 시에 사라진 500여 영혼을 맞이하는 제주 산간마을 제삿날의 기이한 풍경을 40년 전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은 그렇게 기록했습니다(《순이삼촌》 1978). 올해 4월에도 안산 어느 동네는 한 날 한 시에 떠난 수백 명을 부르는 곡소리로 뒤덮일 겁니다. 마침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에는 ‘끝나지 않은 세월2’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요. 세월이라는 말만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건, 2014년 4월 16일의 ‘세월’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아, 그 아이들은 지슬의 섬 제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지슬, 그들의 뜨거운 감자
1948년 10월, 제주도에 미군과 신정부가 소개령을 내립니다. 해안으로부터 5km 바깥의 주민들은 모두 빨갱이로 여기고 몰살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돼지 한 마리뿐인 원식이 삼촌(문석범), 다리가 불편한 노모와 둘째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둔 무동(박동순), 순덕(강희)을 좋아하는 청년 만철(성민철)과 상표(홍상표), 용필(양정원)과 경준(이경준) 등이 비좁은 구덩이로 모여 들었어요. 그들은 곧 ‘큰 넓궤’라는 동굴에 숨기로 합니다.

그 사이 마을에는 군인들이 들어왔습니다. 김 상사(장경섭), 고 중사(이경식), 백 상병(백종환)은 잔혹한 토벌을 주장하는 무리이구요, 박상덕 일병(연준)과 한동수 이병(김형진)은 쉽게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는 졸병들이었습니다. 동굴과 마을, 두 공간을 위태롭게 오가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그들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무동은 품에 구운 지슬(감자) 한 보따리를 들고 있었어요. 노모의 생명과 맞바꾼 귀한 양식이었습니다. “지슬이 유난히 달다”고 동굴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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