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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불사의 인간이 온다?
[330호 커버스토리] 트랜스휴머니즘과 죽음의 초월
[330호] 2018년 04월 27일 (금) 11:41:18 마이클 플라토 goscon@goscon.co.kr

기발한 ‘영생불사’ 신앙, 트랜스휴머니즘
최근 몇 해 사이에 많은 사상과 주의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과학기술을 통해 영생불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기발하다. 이 사상의 신봉자들은 매우 진지하기 짝이 없다. 실리콘 밸리에서 내로라하는 거물인 피터 티엘, 래리 엘리슨,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그리고 빌 마리스 등은 이미 막대한 돈을 들여 노화를 늦추거나 방지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 ‘트랜스휴머니즘당’의 대통령 후보라 할 수 있는 졸탄 이츠반은 최근 관 모양으로 생긴 자동차, 소위 영생불사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횡단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자금이 마련된다면 8-12년 사이에 죽음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실리콘 밸리를 넘어 그 영역을 인간 지성과 영적인 영역에까지 확장하려 한다. 비록 많은 주류 학자들로부터는 배격당했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놀랍게도 여러 분야에서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인류미래연구소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트랜스휴머니즘주의의 주창자들은 여러 첨단기업들과 독립적인 ‘비저너리’들을 포섭하여 회합을 개최하고 출판 및 휴매너티 플러스 같은 싱크탱크에 자금을 출연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운동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인간 지성과 육체적 힘, 그리고 오감의 향상을 추구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종종 “기술적 특이점”에 관심을 보이는데, 이는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인공지능이 출연하는 순간을 가정한 것이다. 추종자들이 믿는 바에 의하면, 기술적인 진보가 팽창하면 인간 사회에 상상할 수도 없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 중 하나는 인간과 컴퓨터가 결합되어, 완전체가 된 인류가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 생명의 연장을 추구하며, 심지어 언젠가는 죽음이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한다. 이 가능성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 사이에서 기괴한 유행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냉동보존 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몸(또는 뇌)을 냉동보존한 후 미래의 어느 순간에 다시 기술적으로 부활시켜 불치병을 치료하거나, 심지어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몸을 입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종교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

   
 

기술의 발전, 불평등의 심화
트랜스휴머니즘이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는 없는 걸까? 이미 ‘기독교적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존재한다. 단체를 결성하여 인터넷 홈페이지와 회합을 이끄는 그들은, 트랜스휴머니즘이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면서 단테로부터 시작하여 떼야르 드 샤르뎅의 저작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기독교 트랜스휴머니스트 연합(Christian Transhumanist Association)은, “기술에 대한 의도적 사용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연관되며, 우리를 좀 더 인간적이 되도록 돕는다”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그 목적이 인간을 넘어서는 것에 가깝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와 같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특별히 모르몬 교도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모르몬 트랜스휴머니스트 연합(The Mormon Transhumanist Association)은, 아직 모르몬 교회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솔트레이크 시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모르몬 교회 신학과의 연계성― 예를 들어 인간이 신으로까지 진화한다는 교리에서부터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라 할 불멸성까지 ― 을 찾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도 선명한 비판자들이 있다. 유럽 좌파 철학자인 로지 브라이도티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육체를 모독하는 것으로, 육체로 구현된 자아의 유한한 물질성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망상이라 치부했다. 신보수주의 정치과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발상이라 했다. 후쿠야마는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Human Future, 한국경제신문)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이 제안한 자기 발전의 기술적인 방법들은 무서운 도덕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며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악몽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견했다.

제안된 여러 기술들이 가능할 것이라고 신뢰하는 일 자체가 믿음의 도약을 요구한다. 언론인 안나 비너는 최근 <뉴 리퍼블릭>지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적 발전에 대한 현실적 기대보다는 다소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체 냉동을 거명하며, “여태까지 과학은 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 적이 없다.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결합하거나 새로운 육체에 덧입히는 것은 아직 일장춘몽 수준이다”라고 밝혔다. 마크 오코넬은 《트랜스휴머니즘》(문학동네 출간 예정)이란 책에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그들 생각의 수준이라는 것이 심대한 과학적 발전을 드러내기보다는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호들갑을 떠는 캘리포니아 주 특유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몇 해 동안 상당수의 공상과학 영화들은 이 트랜스휴머니즘을 다루어 왔다. 조니 뎁이 출연한 <트랜샌던스>(2014)에서 그는 과학자로서 정신을 컴퓨터 시스템에 업로드한 사람으로 나왔다. 스칼렛 요한슨이 열연한 <공각기동대>(2017)에서는 인간의 뇌를 월등한 로봇 몸에 이식한 세상을 상상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인 타임>(2011)은 미래에서는 기술발전이 인간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수십 년에서 심지어는 수백 년 간 유지시켜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영화에서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이상 가운데 자주 간과되는 부분을 지적하는데, 그와 같은 기술 발전이 가능하다면 그 수혜는 최고의 부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크리스틴 엠바가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녀의 경고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혜택은 “오직 상류계층에게만 적용되며”, “불평등의 문제는 더욱 깊어져서 부(富)뿐 아니라 평등주의적 사고마저도 위협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의 뿌리는 기독교?
물론 반론도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지지자들에게 기술이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보조 기술의 확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안경부터 시작해서 맥박 조정기, 장기 이식이나 인공 관절은 무엇인가? 이런 기술들은 그저 삶을 강화하고 연장할 뿐이다. 분명 부자들이 이런 기술의 혜택을 먼저 받을지라도 기술 발달과 더불어 점차 중하층으로 전달될 것이며, 다른 여러 기술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비록 억만장자들의 자기 확대, 뉴에이지, 그리고 공상과학 소설 같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도 긍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희망을 말하고 있다. 죽음은 언젠가 패하고야 말 적(敵)이며, 궁극적으로 초월해야 할 대상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고전 15:25-26) 많은 무신론적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죽음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며 동시에 영생불사를 갈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고무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몸의 부활로 죽음은 이미 극복되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바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미래의 부활을 희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 부활이라는 미래의 영광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 나머지 냉동보존에서 깨어나는 것을 더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은 어쩐지 힘없이 들린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궁극적인 희망을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마지막 승리에 두면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삶과 행복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여 싸운다. 그들은 인간의 복지를 증진하는 기술 ― 예를 들어 안경이나 맥박 조절기나 인공관절 또는 장기이식 같은 ― 들을 환영한다. 이런 기술이 인간의 자연적 기능을 강화한다손 치더라도(인공 다리를 단 사람이 경주에서 이긴 사례처럼) 그런 기술은 여전히 인간 본성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 한계를 너머 영원히 어딘가로 변환하는 것을 추구하진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 기독교와 확연히 엇갈리는 점은 선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선하게 창조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었고 인간의 성정을 소유했다는 것은 인간의 선함과 완전함을 확증한다. 이 점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수백 년 전의 불가지론과 흡사하고, 이들은 인간의 몸을 변형할 수 있거나 심지어 아예 불쾌한 존재이거나, 폐기처분할 수 있는 것인 양 취급한다. 트랜스휴머니즘주의도 우리 시대의 여타 운동들 ―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리즘 ― 과 연계하며, 성(性)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육체적인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되며, 이 형상은 독립적이거나 자기 결정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반영하기에 전적으로 의존적이다. 이것이 디트리히 본회퍼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함’을 추구하여 뱀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구별하고자 한 뜻이다. ‘하나님과 동등함’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대신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 창조주처럼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 인간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개인적 자유와 선택이라는 가치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그들에게 죽음은 단지 받아들일 수 없는 또 다른 인간 자유의 한계일 뿐이다. 신학자 브렌트 워터스가 돌직구를 날린 것처럼 “인간의 필멸성이 극복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무한한 자율성과 자유를 찾기 위해 트랜스휴머니즘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 대신 흉측하게 모방한 영생불사를 약속한다. 영생에 대한 기독교의 약속을 낚아챈 그들의 영생불사는 이제 사고 팔 수 있는 재화가 되었고, 누구든지 원하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무신론적인 영생불사, 이것의 진부함과 공허함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민음사 발간 《알레프》에 수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영생불사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사실 인간만 제외하고는 모든 피조물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신성하고, 끔찍하며 동시에 불가해한 것은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 채 자아에 갇혀 있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이를 지칭하는 적당한 말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옥이라 부른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영생의 전부가 아니다. 대신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으로 얻는 영생이다. 그렇다. 우리가 진정으로 육체의 부활을 기대하지만 이는 사랑의 하나님이 대가 없이 주신 것이다. 이 약속이야말로 어떠한 기술 발전도 감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마이클 플라토

미국 콜로라도 기독대학의 부교수로, 지성사와 기독교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번역_오정환

31년 동안 한국에 살다가 영국으로 건너와 다벨 브루더호프에 산 지 올해로 17년째를 맞는다. 아내 김지연과 네 자녀, 그리고 84세 아버지를 모시며 공동체 우체부로서 희망의 편지를 세상에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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