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 '베빙턴 테제’와 복음주의에 대한 성찰

▲ 1859년 10월 29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에 실린 윌리엄 월버포스 초상. 월버포스를 중심으로 '클래팜 섹트'는 복음주의 신앙에 따라 노예무역 금지와 사회 개혁을 위해 정치적 활동을 전개했다. (이미지: 웰컴 이미지/위키미디어코먼스)

1. ‘복음주의’라는 불편한(?) 용어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한국 사회에서 ‘복음주의’라는 말이 ‘보수 기독교’라는 말과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한 표현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때 한국 기독교의 성장을 주도하던 ‘복음주의 교회’라 불리던 대형 교회들이 보이는 반사회적이고 보수 일변도의 모습이 그런 인식을 강화합니다. 이른바 ‘복음주의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안타깝게도 종교인 과세 반대, 반동성애, 반이슬람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 일변도의 목소리들입니다.

복음주의에 대한 우려가 더해진 데에는 아마 소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도 영향이 있을 듯합니다. 지난 미국 대선 때 교묘하게 트럼프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던 존 맥아더 목사나, 요사이 반여성주의 발언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존 파이퍼 목사 등은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목사들로 불립니다. 물론 이러한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던 분 중 한 분인 홍정길 목사나, 미국의 팀 켈러 목사는 복음주의권에 대한 반성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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