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무브먼트 투게더]

1. 방황: 얼룩진 대학생활이 시작되다
“야야, 대학 왔으니까 무조건 놀아. 노는게 남는거다 진짜, 나중엔 놀지도 못해.”
“요즘 취업이 얼마나 힘든데. 진짜 대학에서 학점이랑 스펙이랑 토익점수 꼭 챙겨라.”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게 중요하지. 동아리, 학회, 대외활동 등등. 진짜 할 수 있는 한 많이 해봐.”

2015년 대학에 입학한 저는 대학생활을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 고민하며 ‘밥약’(밥먹는 약속) 때마다 항상 이를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학과 선배들과 동아리 형, 누나들은 저를 학교 근처 맛집에 데려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위와 같은 조언들을 해주었지요. 부분적으로는 동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조언들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큰 무언가’를 향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저는 하나님 없이 앞에서 말한 활동들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사학교라는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니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대학교에 와서도 계속해서 기독교와 성경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계획이었거든요. 속에만 품고 있던 질문을 때로 용기 내어 선배들에게 던지곤 했지만, 대개 그런 식의 생각은 별로 안 해봤다는 반응이 돌아왔고 대화는 얼마 못가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결국 대학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며 진리 추구를 이어나가지 못한 채, 각종 과제와 시험 준비, 수많은 학교행사와 축제로 제 인생이 점철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직한 질문들을 억누르며 입시에만 집중했던 고3 때와 대학생활이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항상 가까이에서 신앙을 공유했던 대안학교 친구들이 옆에 없으니 더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1학년이 정신없이 지나갔지요. 2학년이 되자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금 대학 속에서 세상의 가치관에 무력하게 타협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이 왔습니다. ‘이제 내 안에 확신이 없는데 나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책감과 혼란 속에서 저는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잃어갔고, 계속해서 불안감만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지속되자 점차 신앙에 대해 반항적이고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저만 쓸데없이 신앙적 고민을 하느라 시간낭비를 했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쓰라린 후회와 함께 저 자신과 세상을 향한 분노도 많아졌습니다. 어떻게든 이러한 낭패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세계관의 모든 전제를 부정하고 뭐든지 경험하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과도하게 진지한 고민에만 몰두하여, 그리고 줄곧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온 저의 시각이 편협하여 이런 방황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신앙을 이유로 지금까지 나가지 않았던 술자리와 미팅에 나가기 시작하고, 외로움이 채워질 거라는 기대로 연애도 해봤습니다. 수많은 동아리와 대외 활동을 통해 성취와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제 정체성을 찾아보기도 했고, 다양한 종교와 사상에도 관심을 가지며 할 수 있는 한 많은 관점에 저 자신을 노출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선교단체에도 거리를 두며,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못 할 거라는 무서운 우울감에 사로잡혀 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 회귀: 탕자처럼 돌아오다
무분별한 경험주의는 제게 답을 주기는커녕 저 자신을 더 망가뜨려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향수와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금 생길 즈음, SNS로 ‘고려대 기독인연합’(고기연) 스태프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는 자는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많이 외로워서, 다시 좋은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어서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기연에서 조용히 1년반 동안 활동하면서, 그래도 제가 캠퍼스에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더불어 영혼을 키워 보는 경험을 꼭 대학 생활 때 해봐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로 3학년 때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들어갔습니다. 익숙지 않은 CCC 문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고 아무래도 늦게 합류한 지라 괜히 눈치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순장’이 되어 사람들을 전도하고 ‘순원’을 양육해보았습니다. 복음을 실제로 전해보고 순원들을 양육해보니 제가 얼마나 허술하게 머리로만 복음을 알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한 영혼을 사랑하려고 애쓰다보니 서운할 때도 있고 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 조금씩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진리는 제 인생을 걸 만큼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나마 공동체 때문에 신앙을 이나마 유지하는 삶도 캠퍼스 생활과 함께 끝날 거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캠퍼스에서 만났던 신앙의 선배들도 대부분 졸업할 시기가 오면 공동체에서 물러나 취업준비와 고시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선배들의 모습에 대학 졸업 후 세상에 눌리고 타협할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이제 저도 4학년이고 선교단체나 고기연보다는 미래를 위해 임용고시나 취업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아, 정말 복음의 증인 된 삶이, 대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끝나는 것인가?’

3. 반전: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를 만나다
정말 그대로 대학을 졸업했다면 사회에 나가 그저 그렇게 남들만큼만 사는, 적당한 타협을 하며 적당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타이밍에, 하나님께서는 제 인생에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원래 베리타스 포럼을 단순히 기독교를 변증하는, 하버드 대학에서 시작한 유명한 포럼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이번에 대한민국 최초로 고려대에서 첫 포럼이 열린다는 역사적인 소식을 들었지만, 저와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고기연 대표로서 예의상의 관심과 작은 지원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고려대 기독인교수연합 총무로 섬기시던 조영헌 교수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생기기 시작했고, 교수님께서 베리타스 포럼 학생스태프로 함께하자고 권하셔서 저는 얼떨결에 포럼을 함께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복음과상황 2월호에 교수님이 잘 써주셨듯이(327호 97-103쪽·“‘베리타스 포럼’이 한국에 온다”), 한국에서 베리타스 포럼이 열리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신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는, 저같이 겁 많고 믿음 없는 인생에도 역사하기를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베리타스 포럼 실무자들끼리 모여 로마서 말씀을 읽고 삶을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직한 질문들을 나누고, 말씀을 통해 그 질문에 해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서로와 베리타스 포럼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했던 그 뜨거운 시간들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기도로 심겨진 베리타스 포럼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2월 사전 모임에서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을 쓴 이원석 작가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던 일이 기억납니다. “명제적 지식이냐, 인격적 지식이냐”를 나누는 부분에서, 우리가 얼마나 기독교를 교리적이고 명제적으로 화석화해 왔는지를 반성하며, 인격적 지식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들은 우리가 과연 그 하늘의 진리를 계속해서 성육신시키고 있는가, 태초에 말씀이신 주님이 이 땅 가운데 내려오신 의미를 우리의 말뿐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발전했습니다. 더불어 지난 3월 우종학 교수님을 초청한 저자 북토크도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 학문의 영역에서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 큰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베리타스 포럼과 관련된 굵직한 모임들과 작은 모임들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질문과 고민들을 안고 살았던 학생들이 모여 자신이 가진 의문들을 나누며 연대하자,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시너지 효과가 우리 베리타스 모임과 사람들을 고무했습니다. 누군가가 내면의 질문을 꺼내면 모두가 귀 기울여 듣고 공감했으며,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겸손히 채워주며 함께 진리에 대해 다가갔습니다.

저는 베리타스 포럼을 준비하면서, 새내기 시절부터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질적인 고민들이 한 올 한 올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3 시절 저는 수능 공부는 세상의 공부이기에 이를 거부하겠다고 선포하고 나서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가 정말 호되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네가 얼마나 잘난 존재이길래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판단하고 하나님과 진리를 제한하느냐고요. 그리고 사실상 지금까지의 방황과 질문도 본질적으로는 다 그때의 이원론적 신앙 ― 진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기에 진리를 제한하고 진리와 비진리를 자의로 나눈 확신 ― 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에서의 그 모든 고민과 죄책감도, 제가 붙들었던 ‘진리’가 너무나도 작게 여겨졌기에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리타스 포럼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나 선교단체 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제 전공과 미래와 이 모든 세계를 주관하는 진리임을 배웠습니다.

제가 그 방대한 진리를 소유할 수는 없지만, 정직하게 진리를 좇을 때 그 진리가 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자 기존엔 느끼지 못했던 내적 자신감과 함께 미래에 대한 설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교회나 선교단체 뿐 아니라 일반사회와 학문세계에서도 진리인 하나님의 복음에 기초해서 살게 되겠구나. 취업을 하든 대학원을 가든, 교사가 되든 교수가 되든, 그것은 이차적인 것이고 일차적으로 이 진리를 온전히 믿고 매일매일 반응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구나. 세세한 진로와 삶은 하나님께서 저라는 사람에게 가장 잘 맞게 인도해주실 테니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구나.’ 그 어떤 것보다 강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바로 진리이시므로, 제 안에 심어놓으신 수많은 잠재력을 가장 선하며 적합한 방식으로 발휘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성장: 확신을 얻고 복음을 전하다
이런 내적 확신이 생기자 고기연 사역을 감당하고 CCC 순원을 양육하는 데 더욱더 힘이 솟았습니다. 전도할 때 불필요하게 가졌던 조급함이 사라지면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고 결정적인 순간에 확신에 차서 강력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선교단체와 학과공부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선순환되는 관계임을, 본래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아갔습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더 잘 설명해주고 싶어 공부를 더 하게 되었고,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롭게 전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라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단 한 번도 기독교를 접해본 적 없는 불교 문화에서 자란 친구가 저와의 순모임을 통해 복음에 반응하는 놀라운 일도 경험했고,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더라도 복음에 진실하게 반응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제가 바꿀 수 없음을 고백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양육할 때마다 복음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고, 단순하면서도 심오하게 다가왔으며, 진리에 대한 내적확신과 추구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베리타스 포럼을 통해 복음이 선명해지자, 수업시간이 너무 재밌었고 발표와 토의와 ‘팀플’(팀프로젝트)이 신났습니다. 일반 학문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진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수업시간은 진리를 변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복음 전파의 요충지이자 일차적인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친해진 이들과 따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 눈높이에 맞추어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캠퍼스 안에서 학문의 언어로 소통하는 기독교인, 즉 일반 언어로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와 같은 역할이 바로 성경에서 말한 소금과 빛의 역할이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종교의 언어와 학문의 언어를 잇는 번역자나 통역자가 되려면 정말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드는 자가 되어야 함을 절감했습니다. 특별히 이미 우리는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하늘의 언어를 많이 익히고 있으니, 이제는 동시에 땅의 언어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영역을 함께 연습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5. 베리타스 포럼, 함께 만들어가는 우정과 지성의 축제!
프란시스 쉐퍼가 말했듯이, 진실한 질문은 결국 진실한 답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로 저의 미숙한 질문에도 신실하게 답하시는 참 신실한 하나님을 매일 새롭게 경험합니다. 저는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일하실 것을 확신하면서 이 영광스럽고 행복한 베리타스 포럼에 주변 친구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앙적인 대화에 머무르지 않고 친구들의 인생에 소중한 길벗이 되어 주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생겼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이 진리를 잃어버린 대한민국 캠퍼스의 지적 지형도를 바꾸어가고 계십니다. 바로 이 현장에, 함께 걸으며 진리를 이야기하는 중 피어난 아름다운 우정으로 뭉친 지성들이 ‘우리’가 되길, C. S. 루이스와 J. R. R. 톨킨의 우정이 우리의 우정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2018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5월 23일 저녁 6~9시, 강연자: 오스 기니스
5월 24일 저녁 6~9시, 강연자: 강영안 & 우종학

■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모임
1. 베리타스 포럼 기도회
- 매주 화요일 08:30, 금요일 09:00
- 고려대 교우회관 404B호, 베리타스 포럼 사무실

2.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오스 기니스의 저서 북토크
- 4월 30일 저녁 6:30, 고려대 운초우선 교육관

3. 베리타스 포럼 사전 QnA Session (with 김형국 나들목교회 대표목사)
- 5월 1일 낮 12시, 고려대 4·18 기념관 지하 2층 소극장

4. 문의: 010-8714-2101 신진(고려대 기독인연합 대표) 

* 베리타스 포럼 이후에도 일반 언어로 복음을 이해하고 전하기 원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기독지성 모임과 운동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페이스북’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진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몸부림치는 청년. 매일 새벽 네 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떠서 <하나님나라 QT>로 하루를 시작한다. 모태신앙인으로 자랐으며, 십대 시절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신앙과 인격과 관계를 교육받았다. 나들목교회를 14년째 다니고 있다.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며, 베리타스 포럼 스태프, CCC 순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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