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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성경에도 있을까?
[330호 올곧게 읽는 성경] 구약의 성폭행 사례를 통해 본 미투운동
[330호] 2018년 04월 27일 (금) 16:35:30 김은규 goscon@goscon.co.kr
   
▲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돌려보내는 아비멜렉. (이미지: 위키미디어코먼스)

법조계, 문화계, 학계, 종교계, 연예계, 군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미투운동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영화계를 시작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미투운동의 핵심은 지위가 높은 남성이 권력을 이용하여 지위가 낮은 여성에게 성희롱, 성추문, 성폭력을 가한 것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밝히고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피해 여성은 자신의 생계와 생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 여성이 피해 사실을 밝혀도 도리어 각종 2차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피해는 반복되었다. 게다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법도 미약하고, 법조계의 인식 부족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회 각계 권력과 지위에 따른 성폭력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건하게 고착된 것이다. 기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도 교회 내 높은 권력의 위치에서 여성 교우에게 신앙적 명분으로 성폭력을 가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성경에도 미투운동이 있을까? 특별히 구약성경은 약 3천 년 전 가부장적 환경에서 쓰였기 때문에 남성의 우월한 위치가 가득 드러난다. 그 시대에도 권력 위계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 미흡한 흔적이지만,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사례 1. 아브라함이 아내를 성폭력 당하게 내몰아냄 (창 12:10-20)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창 12:1-3, 이하 새번역)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와 함께 길을 떠난다. 그는 이집트로 가는 여정에서 아내에게 이집트 사람들이 보면, 자신은 죽게 되고, 당신은 살 것이라면서, 부부관계를 부인하고 남매 관계로 말하라고 이른다. 그래야 자신도 대접을 잘 받고 둘의 목숨도 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 사래의 미모를 알아본 이집트 관리들이 사래를 바로(왕)의 궁전으로 들여보냈다. 덕분에 아브라함 대접을 잘 받았고 가축 떼 선물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날 밤, 하나님이 왕의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려 사래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왕은 아브라함을 불러 왜 사래를 아내라 하지 않고 누이라고 속였느냐고 질책하고 준 선물을 도로 거두고 내쫓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이 되고,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된다’는 위대한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아내의 미모를 이용(?)하여서라도 자신은 끝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왕에게로 가면 왕과 동침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대가로 궁전에 들어가 환대를 받았다. 가축 떼 선물을 받은 것에 도취되어 크게 이름을 떨칠 날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내가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왔는데도 감사하다는 기도문이나 자신의 수치스러운 결정을 뉘우친 흔적도 없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자신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후손들을 퍼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부장 사회는 남자를 여자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부계 질서로 후손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아내의 몸을 남편이 팔아 넘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보호를 못 받고, 왕의 침실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처음부터 아브라함이 이집트의 관리들에게 붙들리더라도 아내임을 밝히고, 끝까지 아내를 지키려 했으면 어땠을까? 둘 다 죽음의 위기로 몰릴 수 있었겠으나, 하나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살려주셨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이것이 이야기이니까, 만약 그랬다면 아브라함은 사래를 지켜낸 인물이 되고, 부부 사이도 더욱 신뢰감을 쌓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후손들은 아브라함을 더욱 존경하지 않았을까?

사례 2. 아브라함이 아내를 성폭력 당하게 두 번째 내몰아냄 (창 20장)
아브라함은 사라로부터는 자식이 없었고, 이집트에서 데려온 여종 하갈에게서 자식 이스마엘을 낳아 같이 살던 때였다. 아브라함은 네겝 지역(이스라엘의 동남부 사막)에 살고 있었는데, 잠시 그랄이란 곳에 머물렀다. 이번에도 사람들에게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소개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다. 역시 이날 밤에도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 “네가 이 여자를 데려왔는데, 너는 곧 죽는다. 이 여자는 남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비멜렉이 아직 이 여인의 몸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시점이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이 여인이 아브라함에게 오라버니라고 말했다’며 자신은 떳떳하다고 항변했다. 하나님은 이 말을 듣고 “남편이 예언자이고, 그 여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내라. 그래야 너와 백성들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음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호통을 치자, 아브라함은 ‘사실 사라는 아버지가 같은 이복여동생이기도 했고, 여러 나라로 다닐 때 아내에게 남매 관계로 말하자고 부탁했다’는 말을 전한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성의 표시로 가축 떼와 남종 여종을 선물로 주고 떠나보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직 아기를 갖지 못한 상태이고 남편으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을 여종에게 빼앗겨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에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은 다른 가부장 사회와 마찬가지로 본처가 아기를 못 낳으면 후첩을 들일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크게 신뢰하지 않은 것은 부부 사이에 계속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첩을 인정하는 제도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사라는 매우 위축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때 이집트에서와 같은 일을 또 겪는다. 남편은 이제 어디를 가나,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습적(?)으로 부부 사이를 남매 관계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다시 아내를 왕에게 들여보내고, 어쩌면 자신은 그 대가로 물질적인 보상까지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아브라함은 환대와 가축 떼를 받을 뻔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라 입장에서 남편은 정말 믿지 못할 존재다. 사라는 또다시 왕에게 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렸다.

여기서 사라는 남편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라며 따져 묻지 않고, 왕에게 끌려가서도 아브라함의 아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사라도 남편을 살려야 앞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명제가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인지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그때, 하나님이 위기에서 건지셨다. 하나님이 미투운동을 펼친다. “사라에게 몸을 대지 마라, 남편에게 돌려보내라.” 성폭력 피해 직전에 자신의 몸을 지키도록 저항을 가르치고 있다.

두 번 모두 아브라함이 자기 꾀로 만들어낸 일이다. 그는 아내의 미모로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를 축적하려는 계산된 마음과 행동을 보였다. 이런 행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두 왕에게 저주를 내리면서 성폭력 당할 위기를 막아주신다. 성경은 사라가 성폭력의 위기에서 저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전하면서 하나님이 두 왕에게 강력하게 저주를 내리는 장면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미투운동을 통해 사라를 구출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아브라함에 대해 재평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례 3. 미리암이 권력으로부터 희생됨 (출 15:20-21; 민수기 12장)
미리암은 모세가 히브리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자, 이집트 병사들이 바다에 빠진 직후 그 환희와 감동을 춤과 노래로 부른 여성 예언자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모세의 권위에 눌렸는지, 언급되지 않다가 민수기 12장에서 모세와 갈등하는 자로 등장한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는데, 이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 주께서 이를 들으셨다. 주께서 구름기둥 가운데로 내려와 장막에 서서, 아론과 미리암을 세우고 모세의 존재감을 고취시킨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는 내 모습까지 볼 수 있는데,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며 진노하시고 떠나시니, 미리암이 악성 피부병에 걸렸다. 아론이 모세에게 “우리들이 어리석은 죄를 저질렀지만 벌하지 마십시오”하고 간청하자, 모세가 “제발 미리암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주께 간구하였다. 하지만 미리암은 이레 동안 진 밖에 갇혀 있었고, 이에 백성은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행군을 하지 않았다가 그가 올라온 뒤에 이동했다.

미리암은 (성경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이집트를 탈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여성 예언자(지도자)로 보인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은 출애굽 역사의 ‘핵심 3인’이다. 홍해를 넘은 직후, 성경에는 미리암의 해방 춤과 노래가 크게 부각된다. 구약 전체를 보면 대부분 시기, 질투, 암투, 갈등, 살인, 음모, 억압, 착취 등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지만, 오직 출애굽기 15:20-21은 환희의 기쁨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미리암의 존재감은 이내 사라지고 민수기 12장에 와서 모세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하나님으로부터 살이 썩는 징벌을 받는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아론도 같이 모세를 비방했는데, 아론에게는 아무런 징벌이 없다. 민수기 12:6-8에서 하나님은 장막에 나타나, 모세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과 그를 겁도 없이 비방했느냐는 질책을 남기고 떠난다. 이 기도문을 비평 방법으로 보면 가나안 시대 초기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다윗, 솔로몬 시대의 문서로 볼 수도 있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도 후대에서 편집에 의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으며, 그 계시를 얼마든지 이용하여 정당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후대에 모세의 지도력과 권위를 높이고, 미리암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시 레위인들의 지지를 받았을 아론에게 저주가 내려지지 않은 것은 자연스럽다.

이야기 그대로 보면, 미리암은 모세의 권위와 권력에 의해 합당치 않은 이유로 희생되어 제거된다. 미리암은 지혜롭고 총명한 여성이며, 나름 여성들을 포함한 조직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미리암이 모세와 아론의 권력으로부터 하찮은 이유를 핑계로 일순간에 일방적으로 희생된 것이다. 여성이 권력에서 제거되는 모습은 고대나 중세를 거쳐 근대의 마녀사냥, 현대까지도 변함없이 재현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계시를 강조하면서 교회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목회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계시를 남발 오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례 4. 가족 안에서 성폭행을 금지하는 강력한 율법 (레 18장)
레위기는 제사법, 각종 위생법, 인권법, 사회적 약자보호법 등을 지키게 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출애굽기에 이르는 드라마 같은 장면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레위기로 오면 지루하고, 알지도 못하는 절기들과 제사법들이 많이 나와, 그냥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레위기 18장을 보면 성폭력 예방 교육의 율법들이 가득 있다. 
 
“너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가까운 살붙이에게 접근하여 그 몸을 범하면 안 된다.”(6절)

이후로 가족 안에서 어머니, 누이, 그리고 아버지든 어머니든 밖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딸, 이모, 고모, 친손녀, 외손녀, 며느리, 삼촌의 아내인 아주머니, 형수나 제수, 이웃의 아내 등 가장 가까운 혈육부터 이웃에 이르기까지 몸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 구절에 한 대상을 명시하며 비중 있게 기록하고 있다. 즉 근친 간 성폭행을 매우 강하게 막는다. 여기서 피해 대상에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해자는 남성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 ‘몸을 범하는’(성폭행) 것을 금지하는 것은, 당시 일부일처제의 가부장 사회에서 근친 간 성폭행이 일상적으로 행해졌음을 뜻한다. 성경 본문의 ‘너’는 남성을 가리키며, 그 상대는 모두 여성이다. 이것은 남성이 우월한 위치와 위계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가족과 친족 내 여성과 이웃 여성에게 성폭행을 해왔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 작은아버지와 남자 조카 등의 가족 사이가 나빠지고, 극심한 갈등을 겪었을 게 뻔하다. 가족 안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겪어야 할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엄청나게 컸다. 그것은 원치 않는 임신,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져 가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재산 상속 문제로 이어졌다.

레위기 본문은 주께서 모세에게 주시는 율법의 형식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성의식을 바로잡는 미투운동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토라)을 엄히 지키기를 강조해왔던 만큼, 이 율법이 만들어진 후에는 지키도록 노력해야 했다. 남자들에게는 성충동을 자제시키고, 여성들은 율법으로 보호받을 권리와 장치가 생긴 것이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는 예방적 성격의 율법이었다. 24절에서 하나님은 “이 율법들을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이것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멸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 법은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구약시대에는 여성과 외국인이 가장 약자였다. 이들이 당하는 성폭력 피해를 막기 위한 율법적 조치였다.     

사례 5. 권력자 다윗의 우리야 장군 살해 (삼하 11-12장)
다윗 왕이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좋아하게 되었고, 밧세바는 임신하게 되었다. 다윗은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야 장군을 궁전으로 불러 술을 먹게 한 뒤, 부인 밧세바와 자게 하여 임신한 것으로 위장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야 장군은 전쟁 중 성관계를 안 한다는 신념을 지켰기에, 다윗의 작전은 실패했다. 결국 다윗은 전령을 보내어 전투지에 있는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 장군을 최전방으로 보내 죽게 하라는 명령을 했다. 결국 우리야 장군은 전사했다. 요압 장군은 전령을 통해 다윗에게 우리야 장군이 전사했음을 알렸다. 다윗은 밧세바의 애도가 끝나자,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이때 궁중 예언자 나단은 다윗에게 주의 말씀으로 “너는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 영영 네 집안에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12:10)라고 전한다. 그제야 다윗은 “내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실토했다.

짧게 정리하면, 다윗이 왕의 지위를 이용하여 요압 장군에게 명령을 내려 우리야 장군을 최전방에 보내 전사하게 하고, 그의 아내를 취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윗 왕은 비밀리에 음모를 실행했다. 당시 다윗은 열두 부족을 통일하고 국가를 세운 왕으로서 승승장구했고, 그의 권력은 최고에 이르렀던 때였다. 사실 이 정도 일은 매우 사사로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단 예언자의 직언으로 모든 게 밝혀졌고 결국 다윗은 자기 죄를 실토했다.

이것은 다윗 왕이 다른 사람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 군대의 장군을 죽인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권력형 음모에 대한 예언자의 내부 고발이 아니었으면 영영 파묻힐 뻔했다. 미투운동으로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례 6. 암논의 이복여동생 다말 성폭행 (삼하 13-14장)
다윗은 여러 후궁들을 두었다. 맏아들은 이스르엘 여인에게서 나온 암논이고, 둘째 아들은 갈멜 사람에서 태어난 길르압, 셋째는 그술 왕의 딸에게서 태어난 압살롬, 넷째는 아도니야, 그리고 다섯째, 여섯째 아들이 더 있었다. 그런데 셋째 부인에게서 나온 압살롬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아름다운 누이 다말이 있었다. 맏아들 암논이 이복여동생인 다말을 사랑했다. 암논은 친구 요나답과 모의하여 아버지 다윗을 이용해 다말을 불러들인다. 다말이 암논 앞에서 음식을 만들고 먹이려는 순간, 암논은 다말을 침실로 끌어들이고 끌어안는다. 그때 다말이 간청한다.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 이스라엘에는 이러한 법이 없습니다. 나에게 욕을 보이지 마십시오, 제발 이런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말아주십시오.”(12-13절) 그러나 암논은 다말의 애원하는 소리를 듣지 않고, 더 센 힘으로 그를 눕혀 억지로 욕을 보였다(14절). 욕을 보인 후 암논은 다말이 미워져, 당장 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쫓아냈다. 다말은 암논에게 ‘이 쫓아내는 악은 방금 저지른 악보다 더 크다’며 저항한다. 암논은 하인을 불러 다말을 쫓아내고, 대문을 닫아걸었다. 다말은 옷도 찢긴 채 목 놓아 울면서 떠나갔다. 이를 눈치챈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다말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고, 이후 왕자들을 모두 초대했다. 다윗 왕에게도 알렸으나 오지 않았다. 압살롬은 부하들에게 암논이 술을 많이 먹었을 때를 기다렸다가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거사는 실행되었고, 다른 왕자들은 혼비백산 도망갔다. 암논 한 사람만 살해했다. 

이 장면은 다윗의 총애를 받는 1순위 후계자 암논이 친구와 음모를 하여 이복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다말은 성폭행당하는 순간에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암논은 성폭행을 한 후 다말을 쫓아내기까지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였다. 다말은 크게 두 번의 상처를 받았고, 통곡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암논은 왕자의 권력을 이용하여 이복여동생을 성폭행했고, 후에 압살롬에 의해 살해당했다. 왕궁 내부에 이런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겠으나, 구약성경이 이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성폭력 피해의 중대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권력 구조 최상층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교훈으로 삼으라는 의도다.     

엄격한 금지 메시지
성경은 3천여 년 전의 일을 전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과 실제 일어나는 일은 오늘도 변함없이 똑같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력, 세속권력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의 현실들을 보았다. 아울러 성경 안에서도 미투운동이 있었음을 본다. 구약성서의 저자들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 외국인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받는 현실을 보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할 법적 장치로 레위기에서 율법을 선포하였다. 이 율법은 여성의 자기보호 권리를 마련한 발판이고, 남성에게는 우월한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금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미투운동을 확산시켜 성폭력 피해를 막아야 한다. 성경은 약자들의 고통 앞에서 침묵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김은규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교수이다. 민중신학회, 생명평화마당, 종교학회 등에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는 《구약의 희년제도》 《오경 이야기》 《성서비평》 《하님 새로 보기》 《구약 속의 종교권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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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는
(175.XXX.XXX.71)
2018-06-03 12:30:29
글 왜 이런가요?
평소 복상을 애독하고 젠더 이슈와 미투에 관심이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비약과 상상 일색인 부분은 그렇다치자. 미리암 사례에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하나님이 미투운동의 가해자라는 건가? 황당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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