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뇌병변장애인 청년 이지명 이야기

   
▲ 이지명 씨 ⓒ최용석

#01
남자는 산고(産苦)를 말할 줄 모른다. 감히, 산고를 말해선 안 된다. 몸의 모든 혈이 열리는 산고의 순간에, 잇몸이 내려앉기도 하고, 모공이 커져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하고, 뼈가 벌어지며 틀어지기도 하는 산고를, 남자는 알 수 없다. 지명 씨는 남자다. 분명 여자가 아니지만, 남자 이지명만큼은 산고를 말할 자격이 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말할 수 없겠지만, 기억이 난다면 지명 씨는 산고를 말해도 된다. 태어날 때 지명 씨는 엄청난 산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탯줄이 압착되어 20분 동안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 지명이는 어떤 상군해녀도 감당하지 못했을 무산소 헤엄으로 산도를 헤쳐 세상에 왔다. 그는 산고를 안다. 산고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의사는 평생 누워서 지내게 될 거라고 진단했다는데,

지명 씨는 걷는다. 휠체어를 타지 않고 목발을 이용하지 않고, 걷는 뇌병변장애인이다. 일주일에 한 번 북한산에 오른다. 오른쪽 근육이 경직돼 있고, 힘의 방향 조절도 쉽지 않아 스틱 촉을 땅에 박지 않고, 스틱을 휘두르며 산을 오른다. 등산스틱은 지명 씨의 조종을 받아 날아다니는 것 같다. 지명 씨는 스틱에 지탱한다기보다 날아가는 스틱에 끌려가듯 산을 오른다.

스틱으로 땅을 짚어 몸을 지탱해야 한다는 편견 따위 버리길 바란다. 지명 씨에게 등산스틱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짚기 위한 도구일 터다. 산고(産苦)를 아는 남자 지명 씨는 산이 높은 줄(山高) 모른다.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