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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를 아는 남자
[330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뇌병변장애인 청년 이지명 이야기
[330호] 2018년 04월 27일 (금) 16:39:49 김영준 goscon@goscon.co.kr
   
▲ 이지명 씨 ⓒ최용석

#01
남자는 산고(産苦)를 말할 줄 모른다. 감히, 산고를 말해선 안 된다. 몸의 모든 혈이 열리는 산고의 순간에, 잇몸이 내려앉기도 하고, 모공이 커져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하고, 뼈가 벌어지며 틀어지기도 하는 산고를, 남자는 알 수 없다. 지명 씨는 남자다. 분명 여자가 아니지만, 남자 이지명만큼은 산고를 말할 자격이 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말할 수 없겠지만, 기억이 난다면 지명 씨는 산고를 말해도 된다. 태어날 때 지명 씨는 엄청난 산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탯줄이 압착되어 20분 동안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 지명이는 어떤 상군해녀도 감당하지 못했을 무산소 헤엄으로 산도를 헤쳐 세상에 왔다. 그는 산고를 안다. 산고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의사는 평생 누워서 지내게 될 거라고 진단했다는데,

지명 씨는 걷는다. 휠체어를 타지 않고 목발을 이용하지 않고, 걷는 뇌병변장애인이다. 일주일에 한 번 북한산에 오른다. 오른쪽 근육이 경직돼 있고, 힘의 방향 조절도 쉽지 않아 스틱 촉을 땅에 박지 않고, 스틱을 휘두르며 산을 오른다. 등산스틱은 지명 씨의 조종을 받아 날아다니는 것 같다. 지명 씨는 스틱에 지탱한다기보다 날아가는 스틱에 끌려가듯 산을 오른다.

스틱으로 땅을 짚어 몸을 지탱해야 한다는 편견 따위 버리길 바란다. 지명 씨에게 등산스틱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짚기 위한 도구일 터다. 산고(産苦)를 아는 남자 지명 씨는 산이 높은 줄(山高) 모른다.

#02
유아 때 지명 씨는 걸을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을 하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치료실에서 보내야 했다. 10년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다.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며 시작됐던 산고가 거의 10년 동안 지속된 셈이다. 

열 살이 되었을 때, 지명 씨는 걸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네 걸음을 걸었다. 10살이 되어서야 첫걸음을 뗀 것이다. 첫걸음으로 네 번 발을 딛고는 사람들 가슴으로 넘어지듯 주저앉았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첫 걸음을 기억하고, 걸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지금 딛는 한 걸음 한 걸음도 행복이지 않을까. 누구보다 힘들에 내디뎠던 걸음이기 때문에, 걷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어야 하지 않을까.

   
▲ 여덟 살 때의 이지명 씨

#03
꼭 그렇진 않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지명 씨는 종일반에 있었는데 퇴행을 경험했다. 오줌을 가리기 힘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오줌이 흘렀고, 똥을 지리기도 했다. 등교할 때마다 여벌 옷을 준비해야 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불만스러운 일도 없었다고 한다. 학교가 엄청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땐, 그냥 그랬단다. 중학교 3학년 때 지명 씨 가방엔 책보다 옷이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지명 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디에 가게 될지, 일을 할 순 없는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그때부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특수학교에서는 바리스타와 제빵 수업을 많이 한다. 바리스타를 하고 싶은데, 뜨거운 물을 컵에 따르기가 쉽지 않았고, 커피머신에서 나오는 스팀은 위험했다. 쟁반에 컵을 들고 걷기도 쉽지 않다. 학교 정문에서 차량 출입 관리 요원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학교엔 요원이 필요할 만큼 차량 출입이 많지 않았고, 카페엔 지명 씨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 열 살 때 처음 걸었던 지명 씨도 스무 살이 넘으면 학교 밖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걸까. 늦게 첫걸음을 떼는 발달장애인은 졸업도 천천히 해야 하지 않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 2년까지 마치고 20대가 된 지명 씨의 걸음은 열 살 때 걸음만큼 꼭 행복하진 않다.

#04
한숨으로 준비했던 학교 밖 세상은 역시 염려했던 대로, 호의적이지 않다. 어렸을 땐 안기고 보듬고 뽀뽀하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는데, 근육이 생기고 키도 커지면서 귀여움으로 승부 보기가 여의치 않다. 밥을 먹을 땐 흘리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는데, 밥 흘리는 게 엄청 큰일인 듯 호들갑 떠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자조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자조모임을 하면서 특수학교 담장 너머에서, 복지관 식당 밖에서 식사할 기회가 많다 보니, 밥을 흘리거나 입 밖으로 뜨거운 음식을 게워내는 습관이 문제가 된 것이다. 흘리지 않고 밥 먹을 자신이 없어서, 식당에 함께 가지 않고 간식을 싸 와 혼자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 왜 밥 먹는 것마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뇌병변장애인으로 태어났는지 답이 없는 고민을 하다 보면, 한숨이 반복되곤 한다.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부쩍 심해진 어머니의 잔소리도 한숨을 깊게 한다. 집에서 식습관을 익혀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요구가 고스란히 잔소리가 되었다. 먹고 살기 참 힘들다.

#05
고민은 깊지만, 자존감은 높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 시선 따위 개의치 않는다. 막는 사람이 없으면 지명 씨는 하고 싶은 것, 하고야 만다. 해내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한다.

운전이 하고 싶었다.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운전면허는 없다. 부모님이 어떻게 운전하시는지 자세히 봐두었다. 몰래 열쇠를 들고나와 시동을 걸었고, 액셀을 밟았다. 면허 없이도, 차는 움직였다. 그러나, 조금 움직이던 차가 섰다.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를 지나며 마찰에너지가 생겼고 지명 씨가 운전하는 차는 멈췄다.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에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명 씨의 길을 막아선 차주에게 현금으로 보상해야 했다. 벤츠가 길을 막았으면서 돈까지 달라고 했다. 액수는 비밀이다.

#06
사고는 쳤지만, 주눅들지 않는다. 자조모임에서 볼링장에 갔다. 구기 운동을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헬스장에서 기구로 하는 운동은 꾸준히 해왔지만, 공으로 하는 운동은 언제나 어렵다. 역기를 들 순 있지만, 탁구공을 쥐기는 어렵다. 소근육이 약하고 힘 조절이 어려운 지명 씨에게 탁구공을 손바닥에 올리는 건 어렵지만, 볼링공은 들어 올릴만했다. 문제는 스텝이지만, 문제없다. 하고 싶으면, 한다. 오랫동안 볼링을 쳐온 동료가 스텝할 때 부축해주기로 했다. 6㎏짜리 공을 손가락에 끼워 받쳐 들고, 한 걸음 두 걸음 스텝을 밟는다. 열 살 때 처음 걸었을 때처럼, 네 걸음을 걷고 공을 놓으면 된다. 열 살 때 처음 걸었을 때처럼, 어설프게 걸었지만 괜찮다. 네 걸음 후 공을 놓기 위해 팔을 저었다. 역시 힘 조절이 잘 되진 않았고 다리도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았고 힘껏 스윙을 했다. 공이 핀들을 향해 구르고 있을 것이다. 핀들은 공에 튕겨 경쾌한 소리를 내며 쓰러질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공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손가락에서 공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이 눈높이까지 올라왔을 때에야 볼링공은 지명 씨 손가락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머리 위로 손목이 올라갔을 때에야 완전히 빠져나온 공은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솟았다. 볼링공이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공이 천장에 거의 닿을 뻔했다. 힘껏 솟았던 공이 마루에 다시 닿을 때까지 시간은 느렸다. 시간은 느려야 했다. 공이 내려오기 전에, 예상되는 낙구 지점 반경 2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게, 시간은 느리게 흘러야 했다. 시간이 느려지지 않는다면, 조력자는 초능력자가 되어 공간을 접거나 늘릴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초능력 따위 없는 평범한 조력자였고, 야속하게도 볼링공은 ‘E=9.8mh’ 공식에 따라 떨어질 곳에 떨어졌다. 낙구 지점 2미터 안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의 머리도 발등도 상하지 않았다. 볼링공은 쿵 소리를 내며 김목사의 심장에 떨어졌다. 김 목사는 쩌렁 지명 씨의 이름을 불렀다. 천장 즈음에서 수직 낙하하는 공을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은 볼링공의 쿵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김 목사의 버럭 소리엔 반응했다. 버럭 소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대원 시절 ‘김 선비’라 불렸던 김 목사는 뇌병변장애인에게 자주 소리 지르는 나쁜 목사가 되었다.

#07
지명 씨는 포기하지 않고 핀을 향해 공을 굴리고 싶어 했다. 공이 수직으로 솟구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두 명의 도우미가 지명 씨와 스텝을 함께했다. 나쁜 김 목사는 지명 씨에게 “볼링공에 손가락을 넣지 말고 손바닥으로만 굴릴 것”을 제안했다. 아니, 명령했다.

조력자 한 명과 동료 장애인의 도움을 받아, 손바닥으로만 레인 위에 공을 굴려 보았다. 번번이 공은 도랑(거터)에 빠졌다. 조력자도 포기하지 않고, 동료도 그만두지 않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계속 시도했다. 뇌병변장애인이 볼링공을 굴려 핀을 쓰러뜨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어려웠지만, 차례가 올 때마다 계속 시도했다. 적어도 볼링공이 다시 하늘로 날진 않았으니까, 시도할 만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공이 멈춰버린 것이다. 레인 오른쪽 도랑으로 빠진 볼링공이 그만 힘이 부족해 중간에 서버린 것이다. 적극적인 지명 씨는 주저하지 않고 레인 위로 온몸을 흔들며 걸어갔다. 볼링장 레인 위엔 기름 막이 있다. 밤 새 내린 눈 위를 걸으면 발자국이 남듯, 지명 씨가 걷는 볼링장 레인 위 걸음마다, 레인에 덮인 기름 막 위로 선명한 발자국이 남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열 살 때 처음 땅위를 걸었던 스물세 살 지명 씨는 기름 막 두꺼운 볼링장 레인 위를 걸었다. 어쩌면 뇌병변장애인에게 땅은 기름 덮인 레인 위처럼 언제나 위태롭고 미끄러웠을까, 미끄러웠고 위태해 보였지만 늘 걷던 길인 것처럼 지명 씨는 넘어지지 않았다. 네 걸음 째 걷던 지명 씨가 쩌렁 소리에 깜짝 놀라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열 살 때 보았을 활짝 웃는 엄마가 아니라, 몹시 당황하고 어찌할지 모르겠는 표정의 김 목사가 달려오지도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레인 위를 되돌아올 때까지, 다행히 지명 씨는 넘어지지 않았다. 지명 씨가 되돌아 레인 위를 걸어오고 있을 때, 걷지 못하는 건 김 목사였다.

#08
한 번은 오락실에 갔다. 오락실을 삼면으로 빙 두른 코인 노래방에서 지명 씨는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지폐를 교환해야 하는데, 손가락 마디가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 지명 씨에겐 동전교환기에 지폐를 집어넣는 것도, 교환된 동전을 집기도 쉽지 않다. 천 원 지폐를 오백 원 동전 두 개로 바꾸는 데 적어도 3분이 걸린다. 쏙 들어가진 않고 쑥 나오는 지폐. 다시 펴 집어넣지만, 교환기는 혀를 내밀며 약 올리듯 지폐를 뱉어내기를 10여 회, 간신히 지폐를 집어넣는 데 성공해도 튀어나온 동전을 집다가 땅에 떨어뜨려 다시 줍기도 하고, 줍다가 동전을 떨어뜨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다시 줍기를 10여 회, 어떤 동전은 떼구르르 기계 밑으로 들어간다. 간신히 동전을 교환하고 손바닥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올리고, 다시 노래방 기계에 동전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기계가 벌린 입에 동전을 넣기란 농구선수가 중앙선 밖에서 버저비터에 성공하는 것만큼 어렵다.

노래를 부르기 전, 지명 씨의 얼굴과 목이 땀으로 번들거린다. 이렇게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두 곡 부르고 나면, 밤새워 콘서트 한 싸이마냥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기,어,코, 노래 부르는 “니가 챔피언”.

#09
2015년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시작하는 첫날, 김 목사는 느적댔다. 당시 취학 전인 어린아이들끼리 집에 둘 수 없어 퇴근하는 아내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첫 만남이 두려웠다. 약속 장소로 가는 자동차는 제 속도를 내지 않았고, 주차한 뒤에도 힘겹게 걸어 올라가는데, 심장에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모임 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는데, 달려드는 듯한 웃음소리로 맞아주던 청년이 지명 씨였다. 소근육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명 씨는 대근육을 쓸 때도 비장애인보다 행동이 크고, 발음이 부정확해선지 크게 말한다. 큰 몸짓으로 크게 말하고 크게 웃는 지명 씨를 보며 마음이 시원해졌다. 올라오는 계단에서 심장에 흐르던 땀도 말랐다.

때론 버럭, 자주 쩌렁 소리 지르고 화내는 김 목사를, 지명 씨가 4년째 받아주고 있다. 큰 행동이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고, 큰 목소리 때문에 동료들과 충돌하기도 하지만, 지명 씨는 4년 내내 자조모임을 지키고 있다. 모임에 늦는 법도 없다. 만남과 대화에 대한 절실함이 크다. 김 목사는 지명 씨의 절실함을 보면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씀을 곱씹는다.

전화를 하면, 전화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 첫 마디는 늘 ‘왜?’다. 무례함에 불쾌하기도 하지만, 받아줌에 감사하다. 지명 씨의 ‘왜?’는 전화한 이유를 묻는다기보다, 용건을 빨리 말하라는 채근이기보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장애인의 간명한 자기 언어다. 지명 씨의 ‘왜?’가 적극적인 환대의 언어임을 3년이 지나서야 해독했다.

외국어를 해석하듯, 뇌병변장애인 지명 씨의 말을 배운다. 새로운 발음, 새로운 억양에 점점 더 익숙해져 귀가 열리면, 김 목사도 어느 때쯤 지명 씨만 알고 있는 남자의 산고(産苦)에 관해 떠듬떠듬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김영준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도 즐겨 찾는 목사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한 달에 한 번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주1회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을 한다. 토요일에는 이주민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달팽이학교’를 연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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