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 메노키오, 갈릴레오, 청교도, 머튼 테제

▲ 30년의 간격을 두고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두 이탈리아인 메노키오(왼쪽)와 갈릴레오의 삶은, 일개 방앗간지기와 당대 엘리트 과학자라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상과 과학 이론에 대한 교회의 탄압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미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외)

1. 창조 논쟁에 대한 예비적 고찰
창조론을 둘러싼 논쟁들이 많이 제기됩니다. 창조냐 진화냐를 놓고 주로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벌이는 논쟁입니다. 학자들의 아카데믹한 논쟁의 기초는 오류의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과 열린 결론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겸손히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학문에 대한 기본 자세입니다. 어떤 과학의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수용할 수 없는 선을 미리 설정해놓고 토론을 하면 의미 있는 논의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맥락에서 보자면, 주로 창조과학계와 보수 개혁주의신학 진영에서는 타협 불가능한 엄격한 경계가 있습니다. 서로 상대에게 말을 하지만 대화는 아닙니다. 이 점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