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올곧게 읽는 성경]

   
▲ 조금씩 긴장을 풀고 무장해제 된 그 만찬의 리듬, 그 모든 기억들이 김 위원장의 의식/무의식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망을 빚어내는 재료가 될 것이다.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남북정상회담이 끝났다. 4월 27일, 역사적인 하루 일정을 마치고 북으로 돌아가는 김정은 위원장의 벤츠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양으로 가는 먼 길, 그는 아내와 함께 무슨 대화를 나누며 갈까?’

그날 만찬에서 현송월과 윤도현이 듀엣으로 부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흥얼거리며 갔을 것 같다. 생모의 애창곡이라고 했지, 아마.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무슨 대화를 나누며 갔을까? 모르긴 해도 저녁으로 먹은 평양 옥류관 냉면 맛 품평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경제, 군사 등의 굵직한 의제들도 많았지만,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노래를 들으며 사는가 역시 인간에게 소중하므로, 그들 역시 인간이므로 가족 간의 대화에서 이런 내용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서구인들이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지배적 틀을 형성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만이 아니다, 먹는 존재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존재이다. 때로는 구성진 노랫가락이 그 어떤 탄탄한 논리보다 더 크게 우리 마음을 흔든다. 인간은 몸을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욕망의 대상이 된 평양냉면의 맛
한국이 서구를 통해 전해 받은 기독교는 ‘생각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 종교였다. 바른 교리를 머릿속에 탑재하고 있는 것이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자격으로 여겨졌다. 제자훈련 역시 성경공부가 주 내용을 차지한다. 신학자 제임스 스미스는 사람이 가진 생각과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욕망을 보아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신앙 역시 그렇다. 스미스는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화두로 서구의 기독교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앙을 정의하고 전수해오던 방식 전체에 도전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가 닿는 예배의 가능성에서 기독교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회담의 성공 여부는 두 정상이 만나 무슨 결론을 내느냐 못지않게, 그 만남을 양측의 주민들이 어떻게 인식하여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다. 남한에서 연일 냉면집들이 미어터지고, “평양 옥류관 가서 냉면 먹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남북관계에 복잡하게 얽힌 엄정한 주제들까지도 한 곁으로 밀어낸, 남북 주민들의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 된 평양냉면의 맛이 한반도를 평화로 향하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모아내고 있다. 평양냉면의 이런 인기에 회담을 기획한 이들도 무척 놀랐다고 한다.

정상회담 이전에 남과 북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하나의 하키팀을 이루어 몸으로 부대끼는 일이 먼저 있었다. 미처 봄이 오기 전에 남과 북을 오가며 봄을 노래한 가수들도 있었다. ‘봄이 온다’라는 무대 장식에 그려진 꽃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핑퐁외교’라는 말이 있듯이 양국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으로 가는 길에 깔아 놓는 레드카펫 정도 아닌가? 그러나 막상 봄이 오고 보니, 꽃은 봄의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더라! 남과 북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같은 꽃향기를 맡고, 한 팀이 되어 땀이 쭉 빠질 정도로 뛰노는 것은 정상회담으로 가는 분위기 조성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회담을 포함한 외교적 노력이 가져올 세상의 진정한 실체일지 모른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노래한다. 그런데 흔히 ‘준비찬송’이라는 말로 격하하는 습관이 있고, 예배 시간에 늦어도 설교 시작 전에만 들어가면 ‘많이 늦지는 않았다’고 자위한다. 메시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지나치게 메시지 중심으로 정위(定位)된다. 머리가 강조되는 사이, 몸의 중요성은 사라졌다. ‘좋은 설교’가 곧 ‘좋은 예배’라 여긴다면 집에서 매끄러운 설교 영상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배 전통은 다르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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