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스무 살의 인문학]

   
▲ 전쟁기념관 앞에 박제하듯 전시한 전쟁 무기들을 통해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www.pixabay.com)

‘죽일 놈’
인간사는 두 가지 사상의 조류가 투쟁한 역사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혹은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두 사상은 번갈아가며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사고방식의 씨름 속에서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고 파괴하기를 반복했지요. 평소에야 모두들 인간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뒤바뀝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게 되지요. 대한민국이라는 곳을 생각해보면, 이곳은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이념 전쟁은 고귀한 사람도 쉬이 죽일 놈으로 만드니까요.

한국전쟁이라는 3년간의 살생 끝에 세워진 이곳에 제가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피부에 와 닿습니다. 그 비극이 7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요. 단순히 ‘국가적 비극’ 따위의 문제를 언급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저들은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뼛속까지 체험한 사람들이 비록 늙었으나 살아 있고, 그들의 공포는 여전히 꿈틀대고, 그 공포에 기반을 둔 반공체제가 견고했으며, 그 체제를 학습한 사람들이 대를 이으며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쟁을 전혀 겪지 않은 저도 전쟁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전쟁의 여파를 생생히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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