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에디터가 고른 책] 마침내 시인이 온다 / 월터 브루그만 지음 /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 펴냄 / 12,000원

책을 고를 땐 대체로 제목과 지은이를 먼저 보게 마련이다. 번역서라면 옮긴이가 누군지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더러 번역된 판본이 여러 종 나와 있는 경우나(저작권이 사라진 ‘고전’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나온 책이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된 경우는 옮긴이가 지은이보다 중요한 법이다. 《마침내 시인이 온다》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표지에서 옮긴이의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책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는 건 그래서다.

이 책은 세계적인 성경신학자이면서 빼어난 대중 설교자로도 평가받는 브루그만이 미국 예일 대학교의 한 강좌에서 전한 강연을 엮은 것이다. 브루그만은 성경 본문을 무시하거나 통제하려는 문화 속에서 설교자가 해석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예언자적 언어’인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 행위로서 설교는, “힘겹고 대담하며 위험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브루그만은 오늘날 복음이 심하게 축소된 진리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그야말로 “밋밋하고, 시시하고, 공허한 진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존중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복적 파문을 일으키는 ‘문젯거리’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낡은 관례”로 여겨질 따름이다. 축소된 진리는 축소된 삶으로 이어진다.

로마 가톨릭 학자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르는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예언자를 필요로 하신다”고 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언자’로 부른 이들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인’으로 불렀다. 이들 시인/예언자는 “청중 속에 자리 잡은 기존의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을 환기시키는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 설교자는 “다른 방식의 전달을 실천하여 다른 형태의 삶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주요 의사전달이 실용 기술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거나, 조작되고 획일화된 가치 기준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가 되지 못할 것이다. 교회와 설교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해 있다. 다르게 말할 방법이 있는가? 달리 표현할 목소리가 있는가? 대안으로서 실천에 옮길 담론 영역이 있는가? 그 영역은 축소되지 않은 진리와 씨름할 것인가?”(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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