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표지 사진은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퇴진을 외치는 직원들의 집회 장면입니다. 모두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했지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하면서도, 신상 노출이 두려워 가면을 써야만 하는 현실. 심하게 뒤틀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입니다. 누군가 스치듯 말한 ‘적폐’(積弊)의 정의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한 수 접어주던 것들이 다 적폐이죠.”

오랫동안 쌓인 부패와 비리를 뿌리 뽑으려면 개인의 의식 개혁이 함께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지금 드러난 적폐들은 그동안 우리가 ‘한 수 접어주던 것들’의 반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수 접어주던 것들? ‘가족이니까’ ‘직장 상사이니까’ ‘유명한 사람이니까’ … 이런저런 이유로 스리슬쩍 넘어간 여러 ‘잘못들’이겠지요. 그렇게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 아닐까요.
이번 커버스토리는 그러한 잘못들이 쌓여, 어떻게 폭력과 갑질로 격발되는지를 살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양쪽 다 잘못이 있겠지’ ‘사건을 크게 키우는 것은 전도에 도움이 안 되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 여러 이유를 대며 ‘한 수 접어준 것들’은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자양분이자 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우아한 얼굴과 거룩한 말로 포장된 교회 권력자의 갖가지 위력 행사는 어떤가요? 성범죄나 횡령 같은 범법은 아니지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황폐케 하고 그의 자유의지를 조종한다는 점에서 매우 치명적입니다. 이런 ‘숨은 갑질러’는 누구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거나 혹은 컵을 던지지도 않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움을 요청하기 모호하고 대항해 싸우기에도 무척 까다롭습니다. 한 교회에서 30년을 일한 어느 관리집사는 “교회는 아주 젠틀하게 갑질을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더욱 예민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숨은 갑질을 찾아 드러내야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만큼 도려내야겠지요. 이런 과정을 밟을 때 한 수 접어주는 자가 있다면, 그가 곧 공범이자 부역자이자 적폐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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