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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 성폭력, 왜 교회에서 더 쉽게 발생할까?
[332호 커버스토리]
[332호] 2018년 06월 26일 (화) 14:50:43 최유리 goscon@goscon.co.kr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있을 때면 나는 종종 기독교반성폭력센터 활동가라고 말하곤 한다. 내 직업을 들은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교회 안에서도 성폭력(성폭력은 성폭행·성추행·성희롱 등을 아우른다)이 일어나나요?”라고 아주 걱정스럽게 되묻는 경우와, “교회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당연히 사건도 많을 수밖에 없겠죠”라며 교회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보는 경우다. 후자는 알고 있다, 교회에서도 성폭력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성범죄 책임을 왜 피해자에게 돌리는가
그러나 전자 후자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교회 성폭력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의 통념을 그대로 적용해 가해자를 옹호하고 범죄 책임을 피해자에게 두는 식으로 교회 성폭력 원인을 열거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죄에 넘어질 수 있다”라는 가해자 변호로 시작해 “남성은 원래 성욕을 잘 주체하지 못한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사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그 친밀한 관계성을 다른 여자에게서 찾았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이를 교회 성폭력 원인으로 꼽는 것이다. 여기엔 ‘남자이기 때문에’ ‘목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범죄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면서는 “그러니까 왜 피해자가 그런 옷을 입었대?”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왜 일대일로 만났대?” “남자는 다 똑같아. 본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해”라고 말한다.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에게 일어날 범죄를 조정하지 못한 탓을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여전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인식이다. 이 밖에도 성폭력 원인을 찾는 논의는, 2016년 5월에 벌어졌던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두고서 (여성 혐오가 아닌) 조현병에 걸린 남성의 우발적 범죄라고 치부하는 초기 현상과 유사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발생은 결코 피해자의 옷차림 때문도, 행실 때문도 아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성이 성폭력 범죄의 무게를 줄이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성폭력은 명백히 가해자의 잘못이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위는 그 어떤 사이에서라도, 그 어떤 동기가 있을지라도 범죄다.

사람들은 성폭력이 보통 늦은 저녁부터 새벽 사이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성폭력은 24시간 내내 벌어지는 범죄다. 만약 성폭력이 피해자가 스스로 조심해서 피할 수 있는 범죄라면,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들은 하루 중 어느 때도 외출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짧은 치마’ ‘파인 옷차림’도 성폭력과 무관하다. 성폭력을 겪은 사람 중에는 소위 ‘성적으로 유혹적인’ 차림새가 아닌 긴 청바지와 티를 입고 있어도 범죄에 노출됐다. 성폭력 발생 원인을 둘러싼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논의는 제외한 채 피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방식, 즉 여성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보호해야 하는 방식은 성폭력 범죄를 설명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교회 성폭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의견 중에서 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이 그러하듯이 교회 성폭력도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라고 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은밀하고 교묘하게 흐르는 힘의 위계가 성폭력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각 사례들을 살펴보면, 가해자가 핑계 댈 수 있는 갖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교회 안에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권력형 성범죄에서 묵살되는 피해자의 거절 권리
올해 초에 현직인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게 당한 성폭력을 폭로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미투운동’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고, 언론에 보도된 굵직한 사건들 중에는 유독 ‘권력형 범죄’가 많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인사권은 물론이고 중요한 여러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서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해 왔다. 권력형 범죄는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인 성폭력까지는 아우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대부분 위계질서 아래에 놓인 피해자에게 어떻게 접근해왔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주목할 점은, 가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와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거나 피해자를 돕기 위해서 한 ‘터치’(?)라고 설명했지만, 피해자는 이를 성폭력이라고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당시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았고, 성적 접촉이 여러 차례 지속됐음에도 피해자가 관계를 이어갔으니 범죄가 아니라고 인식했다. 반면 피해자는 자신보다 권력이 더 부여된 가해자에게 명백하게 거절 의사를 표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힘들게 거절 의사를 밝혔더라도 여러 이유로 묵살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은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가 마치 ‘꽃뱀’인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피해자에게는 묵살이었지만 가해자는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해석하는 이런 형태는 여러 성범죄 사례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친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는 친족 성폭행, 헤어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와 사귈 때 찍어둔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의 신종 성범죄, 목사가 자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교인을 성폭행하는 교회 성범죄 등,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권력을 포함하여 힘을 더 가진 성범죄 사례 어디서나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는 어느 조직보다도 구성원 간의 관계가 평등해야 하는 교회이지만,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다층적 위계와 그로 인한 힘의 역학 관계가 교회에서 더 깊이 작용한다. 나이 적은 사람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권력이 부여된다. 그러나 종종 성별이 나이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더 많은 힘을 갖고 있다. 교회 성폭력 사례 중에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나이가 많고 직분도 높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에 노출된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아울러 어떤 직분이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달라진다. ‘목사교’로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교회 안에서는 목사와 얼마나 가까운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권력이 부과될 때가 많다. 만약 목사에 의해 교회 성폭력이 발생할 경우, 목사가 교회에 공헌한 정도에 따라 그에 부여되는 권한은 달라진다. 유창한 설교를 하고, 교회를 부흥 발전시킨 목사일수록 그에게 붙는 ‘팬덤’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이런 목사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이후 자기 행태를 부인할 때의 신뢰도도 그만큼 높다.

전병욱 사례로 보는 교회 성폭력
기독교반성폭력센터의 운영을 맡고 있는 ‘교회개혁실천연대’(공동대표 윤경아·박종운·방인성)가 지원한 전병욱 성범죄 사건에서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동했다. 전 씨는 삼일교회를 부흥시킨 기독교 내 ‘톱스타’ 같은 존재였다. 그는 부흥이 어려운 시대에 특히 수많은 청년을 모은 능력 있는 목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교회에서 갖고 있는 위치를 악용하여 여신도들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 전 씨는 피해자들보다 나이가 많고, 남성이며, 목사였다. 여성이고, 나이가 어리고, 교회에서 발언권이 별로 없는 피해자들은 전 씨에게 성폭력을 당했을 때 곧바로 대항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환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 서지현 검사의 말처럼, 전 씨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 역시 범죄 후에도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전 씨를 보면서 자신에게 발생한 일이 무엇인지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그의 범죄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교회 안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편에 선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피해자를 등지기도 했다. 전 씨가 삼일교회를 사임하고 홍대 근처에 새 교회를 개척했을 때도 많은 이들이 그를 따라 모였다. 법원에서 전 씨의 성범죄 사실을 유죄로 판결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는 주일마다 교회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한다.

교인들만 가해자 전 씨를 비호한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교단의 한 노회원은 전 씨가 교회를 개척할 때 “세상 사람들이 전병욱 목사를 비난하더라도 자신들은 전 목사를 지킬 것”이라면서 그를 감쌌다. 예장합동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이는 총회에서는 전 목사 사건을 계속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징계 및 처벌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전 씨 사례를 통해서 보면, 교회 성폭력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위계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계의 압력은 성폭력이 발생할 당시에도 은밀하게 작동하고, 성폭력 이후 목사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에도 위계가 사용됐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교회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있는 위계질서는 곧 가해자의 자원이 된다. 그 ‘자원’이란 때로는 교회에서 갖는 지위나 권위로 나타나고, 때로는 다른 교인들에게 얻는 신임과 신뢰 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피해자보다 ‘자원’이 월등하게 많았던 전병욱 씨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현재까지 목회 현장에 남아 있다.

교회는 ‘그루밍’ 성폭력이 발생하기에 최적의 장소
최근 교회 성폭력이 언론에 언급되면서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이라는 단어도 함께 회자되고 있다. 영어 ‘groom’은 ‘특별한 목적이나 행동을 위해 누군가를 준비시키거나 교육함’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파생한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신뢰, 지배 관계를 형성해 경계심을 허문 뒤 성폭력을 강요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그루밍은 보통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성인 남성이 청소녀에게 접근해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고 관계를 통제·지배하면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청소녀는 당시 본인이 가해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인식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랑이 아닌 길들여진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범죄 특징인 그루밍이 성인에게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충분히 이성으로 상황 판단이 가능한 성인이 어떻게 상황을 분간하지 못하느냐는 의문이다. 그러나 성폭력 상담을 오랫동안 해온 김미랑 탁틴내일연구소 소장은 지난 3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교회는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며 “교회 내 성폭력의 대부분은 그루밍 과정에 따라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교회 성폭력과 그루밍의 연관 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약한 점을 알고 있고, 가해자가 바로 그 점을 이용해 친밀감을 형성하면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고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특별히 신경 써주는 것처럼 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해 피해 당사자 외에 그루밍 과정을 잘 알 수 없게끔 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려운 점, 반복해서 실패하는 점까지도 함께 나누고 기도하는 곳이다. 보통 한국교회 안에서 목사는 그런 교인들을 심방하고 기도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 과정에서 목회자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목회자를 신적인 대리자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모두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은 교회의 좋은 문화다. 그러나 이런 교회 문화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약점에 더 쉽게 도달할 수 있게 한다. 일반 사회에서보다 가해자가 위계를 사용하기 더 편리해지는 것이다.

그루밍 관점에서 보면, 교회 성폭력 피해자는 영적이든 정서적이든 자신의 문제를 치유하고 싶어 마음을 내맡긴 목사에게 이중고를 겪는다. 자신의 양육자로부터 성폭력을 겪은 친족 성폭력 사례와도 유사하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 중에서는 목회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에 교회는 물론 신에 대한 신뢰마저 모두 사라졌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런 고백만 보더라도, 자신을 믿고 따르는 피해자에게 자기 위치를 악용해 성폭력을 가하는 목회자는 그 어떤 범죄 가해자보다 악질적이고 폭력적이다.

하나님 나라와 정면충돌하는 교회 성폭력
성경에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구절이 많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이사야 11장을 읽을 때 큰 감동을 느낀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 11:6-8)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는 하나님 나라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하는 나라다. 어린 사자가 자신이 육식 동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송아지와 어울리며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나라다. 많은 기독교인이 이 말씀을 해석한 것과 같이, 나 역시 강자들이 자신의 힘을 주장하지 않고 한 공간에서 약자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그러나 최근까지 드러난 교회 성폭력을 살펴보면, 가해자가 하는 행위, 피해자를 회유하는 말들, 성폭력까지 가기 위해 이뤄지는 그루밍,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가 소속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7월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다. 아직 개소 전임에도 이미 많은 피해자들이 도움을 구하는 연락을 해온다. 피해자 중에는 교회 안팎으로 자신을 믿어줄 사람을 만나지 못해 센터까지 연락을 직접 취한 경우도 있다. 그들과 통화하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에 늘 안타까움과 분노가 차오른다.

지금이라도 수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성경이 말한 하나님 나라를 기억하면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 굳건히 서 있어 주기를 바란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 ‘꽃뱀’ ‘예민한 사람’ ‘목사 앞길 막은 사람’으로 낙인 찍혔던 피해자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돌려줘야 한다. 어떤 사회적인 통념에서 피해자의 행위가 적합하지 않게 보이더라도, 피해자의 말을 확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더라도, 가해자의 말보다는 피해자의 말을, 강자의 말보다는 약자의 말을 먼저 들어 주는 이들로 남기를 바란다. 앞서 설명해온 것처럼, 가해자에게는 넘쳐나는 자원을 이제는 피해자를 돕기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고약한 위계질서를 깨고, 교회 성폭력을 예방하는 유일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뉴스앤조이와 함께 교회 성폭력 해결을 위한 가이드 북을 제작 중입니다. 최근 몇 년간 교회 성폭력을 주제로 한 기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데 반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은 부재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는 제3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방법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했고, 이에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오는 7월 개소하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피해자와 공동체가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교회_성폭력_OUT을 연중 기획한 뉴스앤조이와 함께 가이드 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이드 북에는 피해자, 가해자는 물론, 사건의 제3자가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를 기록해 놨습니다. 또 도움받을 수 있는 곳, 대처법 등도 실제적인 정보도 수록했습니다. https://tumblbug.com/churchtoo

  

최유리
기독교반(反)성폭력센터에서 일하면서 세상 속 다양한 편견에 저항하며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기독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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