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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힘든 여정의 시작
[332호 세상 읽기] 보수 정치학자가 본 북미정상회담
[332호] 2018년 06월 26일 (화) 15:10:22 박문규 goscon@goscon.co.kr
   
▲ 필자는 본지를 통해 '전시작전권 연기로 통일은 더 멀어졌다'(2014년 12월), '보수 정치학자가 본, 동북아 신냉전 기류'(2015년 4월), '대북정책의 실패, 대한민국의 좌절'(2016년 5월), '트럼프의 외교 공세와 한국의 대응'(2017년 4월) 등 보수 정치학자의 관점으로 한반도 이슈를 다뤄왔다. 이 글 역시 앞선 글들의 연속이다. 앞의 글들은 본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 편집자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2018년 6월 12일, 많은 곡절 끝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의 개념과 방법에 대한 견해차가 커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표면적이더라도 양 정상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이 발표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고 넘어야 할 산이 많기에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갖고 있는 우리는 남한과 북한, 미국 정부의 협상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 한다. 우선 북한과 미국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살펴보자.

1. 북한의 입장: 경제 강국으로의 발전
북한은 이데올로기의 나라이다. 북한의 이데올로기인 김일성 주체사상은 사상에 있어서의 주체, 정치에 있어서의 자주, 국방에 있어서의 자위 그리고 경제에 있어서의 자립을 바탕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북한 당국은 사상, 정치, 국방에 있어서 그들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을 확보함으로써 국방에 있어서의 자위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왔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핵무기의 개발과 경제 개발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병진 정책을 선언하였고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핵무기는 포기할 수 없다고 헌법까지 고쳐가면서 북한이 ‘핵국가’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북한이 핵국가가 되면 미국의 침략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그때부터 경제 개발에 매진하여 경제적 강성대국을 이루어 명실공히 주체적이고 강력한 국가를 이루겠다는 비전을 펼쳐왔다. 현재 그들은 칡뿌리를 씹으며 핵무기를 개발함으로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이제 그들의 국가 목표는 핵국가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경제적인 제재도 받지 않는 정상국가로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활약하여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장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를 혹독하게 견디어야 했다. 이러한 경제 제재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대다수 선진국이 동참하였고 심지어는 중국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심지어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북한을 군사적으로 협박하였다. 여기에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지녔으니 미국과 일대일로 협상할 수 있는 힘의 기반이 갖추어졌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 초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대미 협상 정책으로 국면을 전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의 동향을 살핀 북한은 지금처럼 핵무기를 소유하는 한 미국과는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고립되리라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군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평화협정, 미국과의 수교, 경제 제재 폐지, 한미연합훈련의 중단 등 평소부터 주장하던 것을 미국으로 얻어낼 뿐 아니라 외국의 원조 혹은 외국 자본의 투자도 받아내어 경제적 강대국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북한이 핵무장력을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인가는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2. 미국의 입장: 미국 제일주의 
2차 세계대전 중 핵무기를 개발해 일본 영토를 향해 사용한 미국은 미·소 냉전 초기에 소련의 도전으로 핵 독점력을 상실하였다. 그 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까지 핵무기를 갖게 되자 미국은 이들 강대국들과 담합하여 더 이상의 핵무기 확산을 금지시키는 국제적 합의를 끌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합의를 무시한 채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이 실질적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한쪽 눈을 감으면서 핵무기 비확산 정책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철두철미하게 반미정책을 써온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과 ICBM을 개발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별히 북한이 핵을 소지한다면, 그 핵무기를 테러리스트를 포함한 반미세력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본, 타이완 혹은 남한까지 핵을 보유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바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동안 지켜온 핵 확산 금지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할 입장에 놓이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와 동북아시아는 핵국가들의 각축장이 되어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핵무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정책을 펼쳐왔고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괄적이고 계속적으로 펼쳐왔다. 그러나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도 체제를 유지하는 내구성을 보였고, 3대에 거친 권력 세습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면서 꾸준히 핵 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정책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마찬가지였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계획했었지만, 핵 없이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북한과의 군사 대결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도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은 너무나 비싼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군사 행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북한이 붕괴되기만을 바라고 북한의 핵을 구경만 한다면 북한의 핵무장력은 점점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이제 미국은 인식했다.

또 하나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미국의 적자 재정이다. 이 적자 재정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해외 주둔 군사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당위를 안고 있다. 2016년 기업인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자 그는 미국 제일주의의 외교, 경제정책을 주장하였고 북한의 핵무기는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 군사비도 예외 없이 절감해야 한다는 필요가 겹치게 되자, 북한이 핵무장만 포기한다면 미국의 대북한 군사적 위협을 철회한다는 협상을 계산했을 법하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경제 제재를 극도로 강화시키고 군사적 공격이라는 실질적인 겁박을 전개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한 것이다. 다행히 타이밍이 절묘했다. 북한의 핵무장 프로그램 완성 시기와 일치하게 되어 북한과 미국은 협상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일찍이 미국 네오콘의 선두주자였던 딕 체니 부통령이 주장한 완전하고(Complete) 점검할 수 있고(Verifiable)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비핵화(Denuclearization)인데,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다. 트럼프 정부가 유연성을 가지고 협상할 수밖에 없었음이 확인되었다.

3. 풀어야 할 과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볼튼 보좌관 등이 가장 원하는 것은 북한이 먼저 완전한 핵무장 해제를 하고 미국은 그 결과를 점검한 후에 보상을 하는 리비아식 비핵화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그렇게 되진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도 수용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래서 북미 협상의 최종적 목표는 북한 핵과 ICBM 관련 시설·물질·장비 불능화(disablement) 및 해체(dismantlement)까지 포함하는 명확한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기대되는 쉽고 즉각적인 조치로는 북한이 핵무기와 핵시설 현황 조사를 위해 핵시설, 핵무기, 핵연료에 대한 신고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관과 관계 전문가들의 사찰을 통한 검증이다. 

당연히 미국은 북한이 검증에 대해 명확한 일정표를 제시하기 원하고, 그 세부 과정이 자신들의 진행 계획에 합치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그런 구체적 조치를 합의하지 못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합의 조항들을 보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양국 관계 정상화, 당면한 핵문제 해결 노력, 전쟁 포로 송환 및 유해 수색 등이 담겼다. 합의문에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표현이 나오긴 했지만 미국이 원하는 ‘CVID’라는 표현은 비껴갔고, 비핵화의 일정표와 초기 단계의 비핵화 조치, 미국이 북한에  해주겠다는 제재의 해제, 경제 지원에 대한 것도 모두 빠져버렸다.

북한이 원하는 보상은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안전 보장 조치라고 한다. 그런데 과거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안전 조치란 과연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안전 보장 조치는 한미연합훈련 중지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그 약속과 함께 후에 미군 철수를 고려하겠다는 언질까지 받았으니 큰 수확을 얻었다.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군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목적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북한은 미국과 종전선언을 하고 불가침 조약을 맺어 미국 의회의 비준을 얻어내고 나아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를 원한다. 이런 과정을 밟아 북한과 미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면 국제적 고립을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설사 미국과 북한 사이에 비핵화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의회가 비준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협정은 종이일 뿐 양국 중 일방이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북한이 핵의 일부나마 포기할 것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경제 개발을 위한 서방의 지원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의 예산으로 북한의 경제 발전을 도울 여력이 없다. 이미 트럼프는 그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그래서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를 포함한 인도적 원조와 미국 민간 자본의 투자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즉각적으로 외국 민간 자본이 투자되어 단시일에 이윤을 낼 수 있는 투자 환경을 마련해놓지 못하였다. 이윤이 나지 않을 곳에 민간 자본가가 투자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4. 국민의 염원을 평화 에너지로
김정은도 트럼프도 도박을 한 것이 아니다. 미국도 북한도 협상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었고 그 시기가 문재인 대통령과 두 정상의 노력에 의해 예상보다 당겨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앞서 지적한 어려운 문제들을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놓았다. 앞으로 장기간 전개될 협상 과정이 깨어질 위험 요소는 너무나 많다. 그 때문에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북미 관계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이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여정에 첫발을 떼었음을 인식하자. 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 직전까지 갔던 북미 관계의 전환점을 만들어 전쟁의 위협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제 남한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는 외교적 주권을 다소나마 행사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평화에 주도권을 쥐고 인도적 지원, 경제 협력, 문화 교류 등에 앞장서야 한다.

이참에 주한미군 축소 및 철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민감한 주제이지만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 문제도 공포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그리고 그 평화가 종래에는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을 한 데 묶어 정치적 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군사적·외교적 자주를 두려워하는, 심지어는 통일까지도 두려워하는 세력이 평화를 향한 여정에 걸림돌이 될 것을 경계하면서, 있는 힘 다 짜내어 힘겨운 길을 해쳐가는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박문규
서울대학교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학, 아이다호주립대학에서 공부한 정치학자다. 오랫동안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가르쳐 왔고 지금은 학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한의 현대 정치를 논한 《뜻으로 본 한국정치》가 있으며, 최근엔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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