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허혁 지음 / 수오서재 펴냄 / 14,000원

“노동이니 고백이니 하는 말을 접어두고서라도, 이 글은 버스기사들의 세계를 내밀하게 드러낸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말하자면 가장 친절한 ‘버스사용설명서’이고 지침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일이 없는 특별한 인생이라면 관계없지만, 오늘도, 내일도, 버스를 타야 하는 당신과 함께 이 글을 읽고 싶다.” (12쪽)

대리운전 경험으로 《대리사회》를 쓴 김민섭 작가의 추천사다. 격일로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가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원래 나쁜 기사는 없고 현재 그 기사의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라며 “누구나 잘하고 싶지 일부러 못하고 싶은 기사는 없다”고 버스기사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새벽 대여섯 시부터 운전을 시작해 저녁 여덟 시쯤 되면 감각도 둔해지고 온몸이 안 결리는 곳이 없다. 그 뒤로도 서너 시간을 더 버텨야 하는데 기사들 영혼까지 다 갉아 먹힌다. 신경이 바늘 끝같이 예민해지면서 운전이 난폭해질 수밖에 없다. 피로와 짜증을 어디다 풀 길이 없으니까 운전으로 푼다.” (81쪽)

버스기사들은 극한의 피로와 짜증이 밀려드는 순간에도, 안전 운전을 위해 자신을 다잡는다. 저자는 기사들의 자질을 논하기에 앞서, 배차 간격에 여유가 생긴다면 거의 모든 동료들이 승객을 충분히 배려하며 다닐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기사가 승객에게 잘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승객이 기분 좋게 내려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도 기분 좋게 대할 것이다. 사소한 시내버스 하차 하나가 빛의 메아리가 되어 멀리멀리 퍼질 수 있다는 상상으로 하루를 보냈다. … 우리 사회가 시내버스를 통해서도 많이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127쪽)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상적인 격일제 운행을 가능케 했던 근로기준법 59조 독소조항이 폐기되면서 저자는 그토록 고대하던 1일 2교대 시범운행 중이다. 최저임금까지 오르면서 가족의 삶은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핍진한 버스기사를 돕는 방법,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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