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인문학 /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 17,000원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연재된 글로, 꼭 챙겨보던 글이었다. 그동안 ‘좋은 것’이라 알고 있던 인문 담론들을 다시 보게 하는 내용들이라 꽤 충격을 받으며 읽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이들을 향한 비판이었기에 거부감이 있었으나, 새겨 읽을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클레멘트 코스, 빌 게이츠의 ‘빅히스토리’ 지원, 신영복의 ‘CEO 인문학’, 유시민의 ‘사회투자론’ 등이 사실은 ‘기업 인문학’이라는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는 책이다.

기업 인문학이란 쉽게 말해 반성, 회의, 비판이 빠진 인문학적 사고다. 최종적으로는 자본의 증식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문학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업 인문학과 자본가 사이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좌파 지식인’이다. ‘날라리 운동권’이었던 저자는, 사회변혁에 대한 신념도 강했고 헌신적이었던 ‘투철한 운동가’들이 어떻게 대기업과 초국적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 파고든다.

“사실 삼성 사장단의 부름에 응해 강연한 좌파 지식인은 신영복만이 아니다. 김상조, 김호기, 정승일 등도 강연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좌파의 외연 확장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려면 강의 이후 삼성의 조직문화에 일말의 변화(노조를 허용했다거나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했다는 식의)라도 생겼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 지식인들도 불러서 이야기를 듣다니, 역시 일등 기업 삼성은 다르다!’” (103쪽)

삼성 사장단 강의는 1회당 500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매우 훌륭한 강사’라는 준거로 작용해 강사의 몸값도 올라간다. “좌파 지식인이라고 해서 이런 자부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저자가 작은 트집을 잡아 크게 부풀리는 것은 아닐까도 싶겠지만, 오로지 ‘인문학이 재벌과 자본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단순 명료한 기준으로 들여다 볼 뿐이다. 의심과 비판의 눈으로 보면, 친기업적 뉘앙스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타협을 일시적인 일로, 전략적 유연성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선 것은 아닐까? 이런 여지를 품고 책을 읽었으나, 결론은 싸늘했다. 이 보 전진을 위해 일 보 후퇴한다고 하지만, 그곳은 낭떠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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