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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난민’과 우리 곁의 난민
[333호 커버스토리]
[333호] 2018년 07월 30일 (월) 10:53:57 김선욱 goscon@goscon.co.kr

기독교인의 이스라엘 친화성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가지는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특히 구약성서를 축자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들의 삶과 역사,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앙의 핵심과 삶의 모범과 교훈을 찾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에서 다소 거북하고 비판적인 감정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유대인 전체가 아니라 바리새파 등 일부 부류들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 그리고 그들을 따른 많은 무리들, 그리고 바울과 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우리의 호감은 이처럼 성서적 근거가 있다.

그뿐이 아니다. 1970년대에 교육 받은 나와 같은 세대들은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발전하기 위해 삼았던 모델이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굳이 기독교인들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은 호감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사막의 기적을 일군 키브츠, 주변의 아랍 강대국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린 6일 전쟁, 납치된 자국민들을 구해낸 엔테베 공항에서의 놀라운 기습작전. 이는 우리 세대에게는 자료를 찾지 않고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친이스라엘적 ‘팩트’들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교회가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정치적 기도회를 열 때마다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성조기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일명 ‘태극기 집회’ 정신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정치가 올바르지 않다며 기독교적 정치가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에 가장 적합한 상징물은 이스라엘 국기일 수 있다. 그들 상상 속 이스라엘 국기는 기독교 신앙과 박정희 시대의 번영을 종합한 표상일 수 있다.

   
▲ 1947년 7월 18일, 이스라엘로 이주해온 유대인 난민들. (사진: The Palmach Photo Gallery/위키미디어 코먼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
유학생 시절 영어 시험을 보기 위해 내가 앉은 자리의 옆에 중동 사람 몇 명이 보였다. 시험 전에 영어 연습도 할 겸 말을 붙였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떠벌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떤 연유로 유대인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상대방 표정이 영 시원찮았다. 내 말이 끝나자, 그가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그러고는 고개를 자기 친구에게로 돌리고 나를 외면했다. 그때 난, 그런 외면을 받아 마땅했다. 나는 왜 예루살렘이라는 말에 유대인만 떠올렸을까.

팔레스타인에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사는 게 당연하지만, 그곳의 땅 주인은 현재 유대인이다. 팔레스타인에는 국가가 서 있으며, 그 영토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은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은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박해를 받는 유대인들은 조금씩 그곳으로 옮겨와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 그 지역의 지배권은 시기에 따라 바뀌었지만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활동과 외교적 노력을 통해 급기야 20세기 초부터 그 지역을 관할하던 영국이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허용하여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국제연합(UN)의 승인까지 받았다. 유대인들은 1942년에 이미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주권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포했고, 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인들은 모두 2등 시민의 자격을 갖는다고 했다. 그 선포가 건국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유대인 문제’라는 말
유대인들이 나라 없이 ‘디아스포라’로 떠돌아다닌 것은 오랜 세월의 일이다. 난민이 된 이들의 곤경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유대인 문제’(the Jewish question)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남들이 붙인 표현이다. 개성이 강한 유대인 집단과 더불어 잘 살아가지 못하고 불편하게 느끼게 된 어느 시점부터 유대인들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 유대인들이 스스로 자초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들 자기 식으로 살아가는데 유대인들에게만 동화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은 오직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때에만 가능한 관점일 것이다.

유럽 역사를 보면 유대인들이 그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내버려두거나 존중을 받은 때도 있었고, 계몽주의 시기에는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유대인과 친구가 되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근대의 국민 국가가 민족 중심의 폐쇄성을 강화하고 제국주의 경향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나타나면서 유대인들의 존재는 그런 정치적 환경에 따라 달리 대우받게 된다. 그런 와중에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반(反)셈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다.

‘반셈족주의’라는 용어는 ‘Anti-Semitism’을 옮긴 말이다. 흔히 이 단어는 ‘반유대주의’로 옮겨졌는데 이는 잘못이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 혹은 유대교에 대한 반대 이데올로기인데, Anti-Semitism은 글자 그대로 셈족(Semites)에 대한 반대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그런데 ‘유대인’(the Jewish)이란 표현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는 뜻과 종교적으로 유대인이라는 뜻으로 모두 사용되는데, 전자는 사실상 셈족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유대교를 종교로 가진 사람을 말한다. 한국인도 유대교로 개종을 하면 유대인인데, 이는 크리스천이나 무슬림과 같은 레벨의 말인 것이다. 그럼에도 유대인이라는 말을 곧장 셈족과 동일시하는 데 구분이 필요하다. ‘유대인’이란 표현의 애매성은 한국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문제이다.

반셈족주의가 이데올로기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때 ‘이데올로기’란 검증되지 않는 집단적 신념체계를 의미한다. 유대인 혹은 셈족에 대한 단순한 반감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우리가 특정 외국인들에 대해 단순히 반감을 가질 수는 있다. 그냥 호감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데 그 수준을 넘어서 ‘어느 나라 사람은 이러이러하다’라고 규정하고 믿으며 혐오나 애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된다. 반셈족주의는 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혐오를 체계화한 이데올로기이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나 증오는 오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체계화하여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집단을 움직이는 노선이 되어버린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의 일이라는 게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의 제1부 “반셈족주의”에서 언급하는 내용이다.

유럽 유대인 난민의 운명
유럽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삶은 결코 평안하지 못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초기에는 이민을 떠나야 했고, 나중에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의 지배권 바깥에서 이루어진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도 만만치 않았다. 이 점은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진 경향이 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에서 유대인들은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서유럽으로, 그리고 유럽 외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일찍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고, 그래서 나중 독일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과 새로운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 유대인 난민 출신인 한나 아렌트는, 원치 않는 이주를 해야 하는 나민들이 "권리들을 가질 권리"가 없는 상태에 처한 존재라고 했다. (사진: CC BY Ryohei Noda)

독일에서 살던 유대인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는 점차 극심해졌고, 극우 세력들은 이런 증오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민들의 사회적 불안에서 야기된 심리적 불만을 해소하도록 유도했다. 극우 세력들은 1918년부터 인종적 국수주의·반셈족주의·극단적 민족주의 세력들을 모아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고 그들을 비방하는 포스터 등을 만들어 유통시켰다. 히틀러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런 인종주의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뒤 유대인들에 대해 갖은 박해를 시작했고, 여기에 대중들도 협력했다. 나치의 최초 계획은, 유대인들을 해외로 내보내서 유대인 없는 지역(judenfrei)으로 만들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 줄 나라들이 많지 않고 받아주더라도 제한된 인원만을 받아들인 탓에 결국 유대인들은 살던 곳에 그냥 눌러 앉아야 했다. 비교적 이동이 자유로웠던 유럽에서 특히 독일계 유대인들 다수는 유대인들에게 개방적인 프랑스로 이주해 갔다.

미국 철학자 리처드 번스타인은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Why Read Hannah Arendt Now, 8월 중 역간 예정)라는 최근의 책에서 이런 상황에 처한 한나 아렌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1933년에 아렌트는 구속되어 8일간 조사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했던 일을 자백하지 않았고 결국 석방되었다. 이것은 특별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게슈타포의 감방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맥락 없이 읽게 되면 전기적 저술에서 흔히 보이는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 가해진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군복을 입고 영웅적 역할을 했던 유대인도 비참한 운명을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아렌트에 대한 번스타인의 언급은 문자 그대로의 상황 설명인 것이다.

프랑스로 망명한 유대인 난민들
프랑스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들의 국적은 원래 독일이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프랑스로 이주한 뒤 이들은 ‘훌륭한 프랑스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프랑스 시민이 되는 길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약 7년 동안 이들은 프랑스인이 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이 프랑스 국적을 얻기 전에는 일단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프랑스에는 나치의 괴뢰 정권인 비시(Vichy) 정부가 들어섰는데, 비시 정부는 독일계 유대인들에게 수용소로 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이미 프랑스에 충성스런 사람들이 되어 있었으므로 자발적으로 수용소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이들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독일인으로 수용소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하였고, 이에 프랑스 정부는 독일계 유대인들이 있던 수용소의 성격을 강제 수용소로 바꾸었다. 그리고 거기 있던 유대인들은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수용소로 옮겨져 살해되었다.

이것이 난민의 운명이다. 자신의 국가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 하는 난민에게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처한 상황을 아렌트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가 없는 상태라 했다. 인권이 보장되는 권리들을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그 권리 자체를 갖지 못한 이들이라는 말이다.

한나 아렌트도 다른 독일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구르(Gurs)에 있는 수용소로 들어갔지만 나중에 서류를 위조하여 수용소를 탈출하여 포르투갈로 건너갔다. 거기서 아렌트는 운 좋게도 미국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행 배를 타고 뉴욕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서류 위조를 거부하고 수용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나중에 모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랭크의 가족들은 1938년부터 미국 이민을 준비했으나 결국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1944년 8월 발각되기까지 은신해 있었다고 한다.) 이 이송 계획은 아이히만이 세운 것이었다. 나중에 아이히만 재판에 대하여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펴낸다.

600만 유대인 난민을 죽음으로 내몬 몇 가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되돌아보면 유대인들이 겪은 참혹한 운명은 여러 요소들이 결부되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근거 없는 인종차별주의이다. 개인을 두고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국민 전체나 민족 전체를 향해 차별적 규정을 내리는 것은 어떤 근거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유대인의 열등성과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우생학적 연구들이 나치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모두 사이비 과학일 뿐이다.

둘째, 극우적 분위기의 발흥과 그에 대한 동조이다. 혐오의 언어를 거침없이 내뱉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며 이를 대중적 선동으로 만들어 가려는 것이 극우의 모습이다. 극우주의는 깊은 숙고와 인간에 대한 애정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얕은 감정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과도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음에도, 자신이 처한 곤경 등을 이유로 지나치게 거친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셋째, ‘국익’이라는 좁은 이해에 갇혀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못하고 스스로 정의로운 불편과 개방적 이해를 팽개쳐 버리는 국가들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생겨난다. 자신의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되는 시민들과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정책 결정을 내리는 위정자들의 태도가 600만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기여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가혹한 운명을 겪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뒤에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만이 주권을 갖고 다른 민족들은 2등 국민이 되는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방향을 세웠을 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은 팔레스타인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과거를 그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되풀이하게 되는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지난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일본 내 ‘혐한 발언’과 우리 안의 ‘혐오 발언’
우리가 다른 민족의 비극적 사건인 홀로코스트를 관심 갖고 살펴보는 이유는 워낙 엄청난 규모의 과거 사건이어서 사실관계가 불을 보듯 명확하고, 따라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사례인 것이다. 이 사건에 비추어 보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어디에 견줄 수 있는지가 명확해진다. 우리에게 가까이 온 난민들에게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퍼부어지는 언어들, 심지어 그들을 돕고 위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폭력적 언어들을 보면,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사용했던 언어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직설적이다.

지난여름 일본에서 있었던 어느 모임에서 90세가 넘은 한 일본인 목사님이 만든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에는 동경에서 혐한 시위를 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들이 내뱉는 말 가운데는 “재일 조선인들을 가스실로 보내 다 죽여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재일 조선인들은 난민들이다. 그들이 일본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왔더라도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은 이들은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격한 감정이 솟아났다. 그 일본인 목사님은 그런 시위들을 채증하여 미국 의회로 보내, 일본에서 혐오발언금지법이 만들어지도록 운동하는 분이었고 그 운동은 성공적이어서 혐오 발언은 길거리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데 지각없는 일본인들의 혐한 발언과 동일한 혐오의 표현들을, 우리에게 다가온 난민들을 향해 혹은 그들을 돕는 이들을 향해 쏟아붓는 현실을 보는 심경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난민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난민은 5,000만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6,8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난민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영화배우 정우성 씨는 어느 모임에서 “타민족 배척하며 어떻게 세상을 사랑하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하였다. 하나의 단어만 바꾸어 “타민족 배척하며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하면, 그 물음은 우리 시대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 아니겠는가.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로, 한국아렌트학회 회장 및 가치와윤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철학회 사무총장 및 기윤실 사회정치윤리운동본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한나 아렌트의 생각》 《정치와 진리》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행복의 철학: 공적 행복을 찾아서》 《아모르 문디에서 레스 푸블리카로》 등이 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공화국의 위기》 등을 번역하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등을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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