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커버스토리]

▲ 유대인 난민 출신인 한나 아렌트는, 원치 않는 이주를 해야 하는 나민들이 "권리들을 가질 권리"가 없는 상태에 처한 존재라고 했다. (사진: CC BY Ryohei Noda)

기독교인의 이스라엘 친화성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가지는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특히 구약성서를 축자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들의 삶과 역사,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앙의 핵심과 삶의 모범과 교훈을 찾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에서 다소 거북하고 비판적인 감정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유대인 전체가 아니라 바리새파 등 일부 부류들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 그리고 그들을 따른 많은 무리들, 그리고 바울과 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우리의 호감은 이처럼 성서적 근거가 있다.

그뿐이 아니다. 1970년대에 교육 받은 나와 같은 세대들은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발전하기 위해 삼았던 모델이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굳이 기독교인들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은 호감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사막의 기적을 일군 키브츠, 주변의 아랍 강대국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린 6일 전쟁, 납치된 자국민들을 구해낸 엔테베 공항에서의 놀라운 기습작전. 이는 우리 세대에게는 자료를 찾지 않고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친이스라엘적 ‘팩트’들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교회가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정치적 기도회를 열 때마다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성조기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일명 ‘태극기 집회’ 정신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정치가 올바르지 않다며 기독교적 정치가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에 가장 적합한 상징물은 이스라엘 국기일 수 있다. 그들 상상 속 이스라엘 국기는 기독교 신앙과 박정희 시대의 번영을 종합한 표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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