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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를 고민하라
[333호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
[333호] 2018년 07월 30일 (월) 11:05:31 최종원 goscon@goscon.co.kr

1. ‘텍스트’에 갇힌 교회
제도(권) 교회를 공부하는 제 고민의 출발점은 수많이 제기되는 새 관점이나 새로운 신학적 사유들과, 오늘 21세기 한국교회라는 제도 교회의 상황 사이 연결성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제도 교회의 관심은 경전 텍스트의 정합성을 찾고 오늘 따를 신조를 확인하는 내부적인 것으로 제한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기로 종교개혁가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그들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제도 교회라는 치열한 현장, 즉 콘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에 대립되는 이들은 상아탑 속에 갇혀 있던 스콜라 신학자들이었습니다.

면죄부 판매나 교회 타락이 성경을 떠나서 생겨난 것이기에 다시 성경의 가르침을 붙들자고 했다는 식의 단순한 도식이 아닙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속에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생성되었다는 것은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가톨릭 구조에 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콘텍스트의 변화에 따라 텍스트를 해석하는 최종 권한을 더 이상 가톨릭 교회만이 독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성서 시대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수용하고 지키자는 의미를 넘어 중세의 질서와 결별하고 새로운 종교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새 종교, 새 구조를 만들자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순서는 오늘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사회와 문화, 공동체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오직 성경으로”라는 명제는 실은 당시 면죄부로 대표되는 (종교적 구원조차도 물질로 획득할 수 있다는) 타락한 욕망을 간파하여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절대적인 신의 은총을 갈구한 것이며, 성경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회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 은총, 성경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조차도 왜곡될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의 교회 현실은 ‘오직 성경, 오직 은총’이 이 땅의 이웃과 주변의 고통과 아픔을 효과적으로, 또는 정당하게 비껴가기 위한 도구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성경을 붙들어야 한다든가, 우리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하니 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 끓어야 한다든가 하는 식의 표현들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타자를 외면하는 불편함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화는 기제로 종종 활용됩니다. 즉 성경이 우리 주변의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할 근거로 오용되곤 하는 것입니다.

2. 콘텍스트를 통해 텍스트 읽기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조금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표현들은 자칫 우리에게 돌아갈, 회복할 가시적인 원형이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기독교는 ‘당위의 전쟁’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에 이러이러하게 표현되어 있으니까, 성소수자들은 혐오해도 돼.” “성경에 이러이러하게 나와 있으니까 지도자가 어떤 수준의 사람이건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순종해야 해.”

이렇듯 우리가 주장하는 당위를 지지할 근거를 성경 텍스트에서 끌어옵니다. 그런데 성경 텍스트에서 답을 찾는 일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콘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당위와 교조적인 시각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동의하건 하지 않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당위와 규범적 주장에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천착한다면서,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토대인 콘텍스트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해석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텍스트 속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이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도피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삼은 규범적 언설은 동성애에 관해서건, 예멘 난민 혹은 이슬람에 관해서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위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합의된 고민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할 권위이지 출발점은 아닙니다. 성경의 존재 자체가 그저 권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또 선포한다고 하여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닙니다. 권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를 해석하고 분석한 후에 그것을 최종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권위와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과 제도 교회의 역사는 헌법과 법원 판례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판례는 끊임없이 콘텍스트에 부합되게 조정됩니다. 한 20년 전의 동성동본 혼인에 대한 수용, 한 10년 전 호주제에 대한 판단, 그리고 얼마 전 대체복무제 허용 판결 등은 여전히 헌법의 권위 내에서 수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첨예한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급심 판례에서 무죄가 계속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체복무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성경이 무오하며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려면, 우리 믿음에 반하는 사회 변화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붙들기보다는, 시대 변화와 과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의 가르침이 충족성을 지니고 있음을 믿고 적극적으로 그 변화를 담보해 낼 가치를 성경에서 찾는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날 숱하게 쏟아지는 신학적, 목회적 논의에도 한국교회 현실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 듯한 불균형의 핵심은, 신학과 목회가 텍스트에 몰두하는 만큼 그 텍스트가 구현되는 현실에 밀접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텍스트가 텍스트답게 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 속에서 정합성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네 교회 현실을 우리네 시각과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천 년의 가톨릭은 대중 종교라고 불립니다. 얼핏 성직자들이 중심이 된 엘리트 종교로 지배한 것 같으나 교회는 끊임없이 대중의 필요와 종교적 열망에 반응하여 변천을 거듭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종교개혁은 엘리트 종교가 대중들과 분리된 결과로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스콜라 신학이라고 불리는 상아탑 신학이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의 고민과 문제에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루터, 츠빙글리, 칼뱅의 종교개혁은 이런 시민 대중의 욕구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그들 학문의 출발점은 대학에서 라틴어로 가르치는 스콜라학이 아니라, 성직자들이 속되다며 ‘속어’라고 부른 대중들의 언어로 하는 인문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종교개혁은 신학이 가장 발전했던 파리대학이나 옥스퍼드대학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학들의 풍토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 대학들은 종교개혁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중세 말 종교개혁은 스콜라학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신학이 제기한 논쟁이 현실의 문제에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3. 세계종교가 된 비결: 기독교의 가치가 사회의 보편 가치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소개되고 연구되는 신학 담론 속에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당위’를 찾아가려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답’을 찾는 것이 우리 신앙과 삶과 공부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 공부란 콘텍스트에 대한 고민으로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해야 할 고민은 이처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여전히 정합성을 유지하며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질적이고 낯선 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열린 만남을 시도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엄밀하게는 성서의 이상이 구현된 기록이기보다는 교회와 세상의 상호작용의 기록입니다. 그 상호작용의 적실성을 유지할 때 교회는 존속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콘텍스트를 얘기할 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이 두 사상의 충돌과 결합을 얘기합니다. 저는 여기서 조금 다른 시각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헬레니즘은 우월한 헬라 문화를 기반으로 그렇지 못한 것을 야만으로 치부하는 ‘문화적 인종주의’였으며, 헤브라이즘은 선택 받은 유대민족 외의 모든 혈통은 이방인으로 간주하는 ‘혈통적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토대에서 기독교가 태동한 것은 분명하지만, 갈릴리 변방에서 출발한 이 흐름이 거대한 양대 흐름을 넘어갈 수 있었던 건 바울 사도의 표현대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차이를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당연시 되던 그 시대 정서 속에서 기독교는 출신 배경이나 혈통을 넘어선 보편의 인간애를 추구했습니다. 영아 살해, 특히 여아 살해가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로마 사회에서 그 악습이 폐기된 것도, 노예제가 폐기된 것도, 차별 없는 이 복음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특수해 보이는 그들의 인간에 대한 가치가 보편적인 신적 가치의 반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초월성이 사회 속으로 내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규범과 당위로서 확장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일반적인 인간관(남성·성인·자유민만 인간으로 규정하는)을 뒤집은 것입니다.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일까요? 복음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믿음일까요? 오히려 그보다는 복음에서 제기하는 인간관이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인간의 보편 가치를 반영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노예와 여자와 아이들은 사람 숫자에 들지 못하는 것이 보편이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친교를 나누는 밥상은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특수해 보이지만, 시대가 지향해야 할 보편의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핍박을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지향하는 대상은 타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유대인의 혈통적 배타성뿐 아니라, 헬라의 문화적 배타성까지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성의 구조에 편입되고자 했다면 다른 여타 식민지의 종교들처럼 존중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당한 핍박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고 다녔기 때문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체계가 헬라의 통념을 넘어서는 급진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되었다는 것은, 특수해 보이는 기독교의 가치가 사회의 보편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만약 초대교회가 유대교와 헬라의 인종주의가 두려워 빗장을 걸었다면 제3의 대안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4. 교회의 쇠퇴 이유: 문화적·혈통적 인종주의
뒤집어 보면, 교회가 쇠퇴한 이유나 결과는 대부분 인종주의로 귀결됩니다. 초대교회 말기는 공의회라고 불리는 전 세계 교회의 회의를 통해 기독교 신조가 결정된 시기이지만, 세속사에서는 로마제국이 망해가는 시기입니다. 로마의 철학자들은 제국이 처한 위기의 원인이 유약한 기독교가 로마의 남성성을 거세했기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렸습니다. 교회는 대내외적인 도전에 맞서 신조와 직제를 마련했지만, 그와 동시에 차별을 제도화했습니다. 가장 높게 드리워진 벽은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 확산된 ‘여성에 대한 배타’라는 벽이었습니다.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인종주의는 근대 유럽에서는 제국주의와 결부되었습니다. 근대 유럽 제국들은 고대 그리스를 이상적인 체제로 규정하고, 고대 문화와 자신들을 동일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국의 약소국 침략과 야만적인 문화 약탈을 정당화한 것이지요. 현대 한국교회 역시 교세가 크게 확장된 이후 ‘종교적 인종주의’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 성 소수자, 타종교 등 타자에 대한 배려를 교회 공동체 내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초대교회의 정신에 비추어 보면 심각한 일탈입니다. 오늘 기독교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포스트모더니즘, 이슬람, 동성애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기독교의 외피를 입은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에 갇혀 있는 현실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문화적·혈통적 인종주의와 자기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한 헬레니즘 및 유대주의와 다를 바 없습니다.  

복음은 국가와 혈통의 가치를 넘어선 보편의 가치를 담지하고 있으며, 교회는 본래 이를 구현하기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의 뿌리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낯선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타자를 우리 쪽으로 동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결국 동화되리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대응적 시각이 문화우월주의와 타자에 대한 배타주의를 낳습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이는 신학적인 질문인 동시에 문화적, 사회적인 질문입니다. 초대교회는 낮은 자리로 내려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공동체로 자랐습니다. 본회퍼 목사님 말씀처럼 타자를 지향하는 수도원 공동체였습니다. 제도 교회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답을 확인하거나 찾기보다, 우선 답은 늘 바뀔 수 있는 유보적인 가치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회 속에서 강자의 의지를 반영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함께 가기 위해 기꺼이 변화를 선택하는 넉넉한 품을 지니는 일 말입니다. 문제는 그 성취 방식이겠지요. 깊이 있는 성경공부가 대안일까요?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에 앞서 성경의 가르침이 구현되어야 하는 콘텍스트에 대한 공부, 사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타자를 만나고 이해하면서 축적하게 되는 절대적인 양의 경험만이 우리에게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5. 문화 우월주의의 실패와 타자 수용
요즘 첨예한 이슈로 등장한 예멘 난민 문제는 어떨까요? 합의하여 선택할 하나의 정답이 나올 문제인지는 조심스럽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문제의 본질이 그들에게 있다기보다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수용하든 하지 않든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떤가 하는 점입니다. 한국 거주 외국인 수가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웬만한 규모의 광역시 인구를 뛰어 넘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라는 범주에 ‘그들’이 들어올 수 있을까요?

유럽의 예를 들어보자면, 2000년대 들어 유럽 각국은 앞다투어 다문화주의 실패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런던 지하철 테러에서 보듯 유럽에서 태어난 무슬림들이 자생적인 테러조직에 가담하는 현실에 부닥치자 당황한 것입니다. 유럽인들은 2차대전 이후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앞다투어 옛 식민지 국민들의 이민을 받아들였습니다. 유럽인들은 ‘우월한’ 유럽 문화에 그들이 ‘동화’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근대의 문화 우월주의인 헬라주의에 거세게 반발했고,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를 유지했습니다.

사회는 통합되기는커녕 분열되었습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만, 타자를 받아들인다면서 그들의 문화를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기보다는 문명 대 비문명, 우월한 문화 대 열등한 문화의 구도로 접근한 것입니다. 한 TV 다큐멘터리에서 백인 택시운전사와 파키스탄인 택시운전사의 24시간을 추적한 결과 동선이 겹치는 지역은 기차역이 유일했습니다. 이 고민 해결책의 한 방편으로 영국 정부는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모여 사는 집단 거주 마을을 만드는 시도를 했습니다. 건축 형태는 중립적으로 비잔틴 양식으로 했습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급기야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사회통합을 위해 이슬람의 샤리아법도 필요한 경우 수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의회의 한 의원은 일부다처제 전통의 국가에서 온 여성들의 복지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그들을 대상으로 한시적 일부다처를 허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우려했습니다. 그가 불법 이민 온 부모와 아이들을 분리시켰을 때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멀리 있는 그들의 아픔에는 공명하면서, 우리 곁에 와 있는 타자나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대해서는 단서가 많이 붙습니다. 심지어 예멘인들은 불법 입국을 한 것도 아니고 난민 ‘신청’을 한 상황일 뿐인데도 말이지요. 이를 사회학에서는 ‘준거 기준의 이중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우리에겐 타자와 만난 경험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위를 묻는 건 의미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다름과 타자에 대한 우리의 경험 수준이 우리의 수용 수준을 말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귀국한 2008년 시골 마을 여기저기에는 한 동남아 국가의 여성들을 지칭하며, “◯◯◯ 여자 도망가지 않습니다”라고 쓴 국제결혼업체 광고가 버젓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딱 10년 전의 타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타자와 조우하는 충분한 경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6. 그럼에도 교회에 희망이 있다면
그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교회는 여전히 이 사회 속에서 타자를 지향하는 가치를 보편의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도 교회에 희망을 거둘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교회가 사회 속에서 적실성을 가질 때는 교회의 특수성이 사회의 보편성에 호응할 때입니다. 그 호응 여부가 교회의 존재 의미를 판단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낯설고 힘들지라도 부대끼면서 알아가고 살아가는 경험치가 쌓여야 합니다. 더디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년간 의식 있는 개인들이 함께한 아래로부터의 몸부림을 통해 강고한 구조를 바꾸어 낸 힘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이제 교회에서도 공유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우리 삶의 목표는 믿는 바를 확인하고 다지기 위한 것이기보다, 신앙의 이름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여러 교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고민하고, 그 구조가 우리 사회 속에 적실성을 가지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상상 속 교회의 이상적인 원형이나 이미지를 갖고 당위로 접근하는 시각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오늘 몸 담고 있는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느냐, 사회가 교회를 수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사회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나간다면 교회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 차원에서 교회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거친 표현일 수 있습니다만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 가치와 타협하자는 말이 아니라, 교회의 특수성이 사회의 보편성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는 교회의 특수성이 사회의 보편성을 형성했습니다. 사회의 대안 가치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가치는 급진적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고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시도하면 좋겠습니다. 막아서는 것, 벽을 세우는 것이 길인지, 흘러 나가고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길인지, 거꾸로도 보고 뒤집어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의 경험을 통해, 역사를 거기, 그때,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오늘, 우리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오늘 제도 교회가 부딪친 문제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경험을 통해 성찰을 쌓아가는 길입니다.


최종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교회사와 지성사를 강의한다. 인문주의 정신의 존중이 교회 갱신의 핵심이라고 믿고,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교회사 재구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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