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믿는 '페미'들의 직설]
결혼하고 얼마간 지났을 때 일이다. 신학교 때 학생회 활동을 했던 동료들과 한 집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졸업하고 시간이 좀 흘렀으니 누군가는 목사가 되고, 누군가는 운동판에서 잔뼈가 굵고, 누군가는 결혼해 가정을 이루거나 더러 아이를 낳기도 했다. 단체 카톡방에서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아이를 둘 낳아 키우는 동기가 나에게 불쑥 말했다. “그날 모이면 우리 애들은 달밤이가 봐. 미리 연습 좀 해.”
나는 무척 당황했다. 왜 하필 나에게? 그 친구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써가며 두 아이를 ‘독박 육아’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모임에 온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럴 때라도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밥 한 술 편하게 먹는 게 얼마나 요원한지 알기에 나는 얼마든지 도울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자기 남편도 아닌 나를 굳이 지목하여 아이 돌보기를 ‘연습’하라고 말한 그 의미를 왜 모르겠는가. ‘이제 너도 곧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 즉 내가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돌보게 되리라는 전제가 깔린 말이었다. 아이 돌보기가, 가까운 남편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여자 동기에게 더 편하게 전가되는 이유는 여성은 곧 어머니가 되고, 모성을 발휘할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아이는 우리 부부가 볼게, 편하게 저녁 먹어”라고 말했지만 두 가지 진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이를 가질지 말지,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누가 육아를 담당할지 정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전형적인’ 어머니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