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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청년’에게 작별을 고하다
[333호 쪽방동네 이야기]
[333호] 2018년 07월 30일 (월) 11:27:05 이재안 goscon@goscon.co.kr

집착의 끈을 놓다
작년 1월 말, 설 명절 기간에 부산지역 언론에서 ‘사하구 막걸리 청년’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20대 청년이 배가 고파서 막걸리를 훔쳤다. 상담소 소장님과 면담을 통해 우리가 이 친구를 돕기로 결정하고, 직접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2월 1일 언론사 기자와 함께 이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와의 만남은 1년 6개월 동안 이어져 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제, 이 친구를 놓고자 한다. 어찌 보면 집착(?)이었던 시간이었다. 모 재단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술값과 유흥비로 나흘 만에 소진한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리하고자 결정했다.

내막은 이렇다. 지원금 300만 원은 심리상담치료비 100만 원과 전월세 보증금 200만 원으로 지원된 것이었다. 그러나 용도 외 유흥비로 소진한 것이다. 구청 관리계를 통하여 불이행 등의 사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탈락 처리되었다. 이제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며칠 뒤 천연덕스럽게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녀석을 잡아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단란주점도 가고 그랬단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에게 전달한 내용은 상담소 등록 제외, 수급 탈락, 고시텔 퇴거 및 부산에서 추방, 고용센터 지원금 300만 원 갚을 것. 김 선생을 통해 연결한 상담 치료 100만 원도 취소했다. 이상 종결.

절망만 가득하다. 부디 이 친구에게 주님의 은총이 있으면 좋으련만, 글을 쓰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 지난 7월 9일 늦은 밤, 이 친구에게 분노를 터트리며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죗값을 달게 받으리라…
6월 4일 햇볕이 무척 뜨거웠던 날, 생명은 공짜로 일구어지지 않는다는 걸 온종일 체험했다. 오전 10시 집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정리하고, 10시 40분에는 극단 해풍의 연극 티켓 10매를 수령하고, 11시에는 교우 세 분을 만나 차에 타 12시에는 땡볕에 양산 모모의 정원에서 1시간 동안 갓 수확을 함께하고, 14시에는 밀양에서 귀한 비빔밥과 콩국수 점심을 먹고, 15시에는 종이작가 공진두 형님의 작품이 전시되는 밀양아리랑 아트홀에 갔다. 16시에는 장씨 총각을 밀양역에 데려가 알바 시간에 맞추어 기차를 태워 보내주었다.

17시에 ‘밀양솔밭’에서 영남루를 바라보며 자연을 즐기고, 19시에는 2,500원짜리 짜장면으로 저녁 식사를 나누고, 20시 30분에는 부산으로 와 금정구 서동 월세방에 사는 박씨에게 먹을거리를 나누어 드리고, 21시 30분에는 교우 분들을 부산역까지 모셔다드렸다. 22시에는 집에 도착해서 세면을 하고, 22시 30분에는 장씨 총각 알바 완료 전화를 확인하고, 24시 50분에는 드디어 잠들기를 준비했다.

편안히 잠드나 했더니 웬걸, 새벽 1시에 모 지구대에 잡혀 있는 김◯◯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움을 단호히 거절했다. 1시 15분, 역시 김◯◯의 2차 전화가 왔다. 강력 거절. 눈을 감고 죗값을 달게 받기를 기도했다.

‘과연, 그런 건가요?’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기도 순례를 마치고서야, 이씨 아저씨 상황이 걱정되었다. 출근해서 오후에 방문 일정을 잡고 첫 방문으로 이씨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요즘 한창 자원 활동을 하는 두 분과 동행했다. 골목을 들어가니, 아저씨 방문이 반쯤 열려 있다. 주무시거나, 밖에 나가 고물을 줍고 계시겠거니 생각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아저씨는 출입문 바로 앞에 매달려 있었다. 수초간 보니,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급히 119에 신고하니 지구대 경찰이 먼저 왔다. 돌아가신 지 몇 시간은 지난 것으로 보였다. 20분 후 형사들이 왔고 이어서 법의관들이 와서 고인의 자리를 정리하고 사인을 규명했다. 전날 자정을 조금 넘어 숨이 멎은 것으로 추정했다.

   
▲ 반빈곤 노래패 '길위에' (이하 사진: 이재안 제공)


경찰서로 가서 조서를 쓰고, 가족을 확인하니 누나가 계셔서 근처 장례식장을 잡아 빈소를 차릴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고인의 근황에 대해 전달해드렸다. 고마워하셨다. 가족들은 화장을 하고 강원도 선산으로 보내드렸다.

6개월 전인가, ‘죽고 싶다’며 전화가 왔기에 몇 시간 후에 집에 가니 목에 빨랫줄을 두른 채 술에 취해 자고 계셨다. 깨워 위로하고 돼지국밥 먹고 전통찻집에 가서 오미자차를 맛있게 먹었었는데….

잊지 못하는 기일
지난 5월 23일은 옛적 다니던 교회 선교단 베이시스트 유 집사님의 두 번째 기일이었다. 나와 동갑인 73년생이다. 작년 이맘때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을 뵈었다. 한참을 울먹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젊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깊은 사연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어떻든 그가 하늘나라로 간 데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기로 했고, 내 삶의 끝까지 추모하기로 결심했건만 소박한 자리도 만들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아파하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한다.

5월 23일은 또한 78년생 동생이었던 정현성의 네 번째 기일이기도 하다. 20대 중반에 만나 장애인 분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친구다. 부산밀알선교단 찬양팀에서 만나 형 동생의 의리를 다지며 수년간 함께한 친구였다. 헤어진 후 현성이는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로 일하며 장애인 인권 활동에 온몸으로 투신했다. 5년 전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장 집회에서 노래 부르던 현성이를 20여 년 만에 만나 조만간 밥을 먹자고 했건만…. 나는 약속을 잊은 채 수개월을 보냈고, 그사이 현성이는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한 한계 상황에 직면하여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현성이와 함께했던 이들은 부산반빈곤센터에서 노래패를 시작했고, 올해는 노래패 이름을 ‘길위에’라 짓고 인권을 노래하고 현성이를 추모하며 현장 곳곳을 다니고 있다. 열창하던 현성이가 그립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오늘도 그를 기억한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윤씨 아저씨는 올해 환갑이라,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드렸다. 원래 절대로 소주를 드리지 않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렸다. 교우이자 주민인 현기 씨랑 함께였다. 맛나게 음식을 나누었다. 예전에는 터널 뚫는 발파작업을 하며 전국을 다녔다며 추억도 나누었다. 본인 생일이라 직접 한턱낸다기에, 식사 도중 살짝 가서 계산했다. 4층 옥탑방까지 지팡이 짚고 다니시는데 고혈압, 당뇨는 없으나 간경화가 심하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7월 어느 날 새벽, 잠시 잠을 청했다가 1시 22분 ㅂ병원 중환자실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윤씨 아저씨가 하늘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한다. 지난 6월 25일, 배가 아파서 스스로 응급실로 입원하셨다가 다음날 복막염 수술을 하시고 회복하지 못하고 일주일 만이다. 십이지장에 궤양이 생겼는데 그걸 몰랐던 것 같다. 주치의와 면담해보니 이미 일주일 이상 복막염이 진행된 상태라 회복이 힘들었고 간경화, 신장 등에 문제가 있어서 더 어려웠다고 한다. 마지막일 것 같은 인사를 드렸다.

“잘 가셔요. 아저씨, 마음 편하게 먹으셔요. 그동안 사느라 고생하셨어요.”

우여곡절 끝에 아저씨의 친척과 통화를 했으나, 무연고로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몇몇 분들과 함께 장례로 함께했다. 빈소는 차리지 못했다. 영정사진도 준비하지 못했다. 7월 6일 금요일 오후 2시경 화장을 진행하고 영락정 납골당 지하 1층 무연고실에 안치해 드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조만간 여동생이 와서 한 번 보시겠단다.

‘죽음’은 ‘살아 있음’의 반대말 같지만, 죽음과 삶은 매우 가까운 사이다. 숨이 멈추고, 심장이 멎고, 심폐소생술로도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죽음’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과 같다. 우리들도 갈 거다, 곧.

그래도 생명은 자라난다. 뜨거웠던 늦봄과 여름 사이, 온배움터에서 활동하시는 채상병 선생 댁 ‘모모의 정원’에 가서 텃밭 활동을 했다. 교우 두 분, 아들과 함께 파밭 잡초 뽑고 물주고, 흰색 털이 매력적인 산양 우리를 돌보고, 닭들과 함께 인사 나누고, 못자리로 모를 옮겼다. 온 생명 어우르는 흙 만지는 행복을 몸소 체험했고, 흙 사랑이 이웃 사랑이요, 하늘 사랑인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채 선생이 만들어준 유기농 열무국수를 시원하게 후딱 먹었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준비를 돕는 ‘달팽이학교’를 연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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