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면 어려웠을 일, 안식

   
▲ 일러스트 정동철

터널의 끝자락에서
“여보 이건 터널이야, 막다른 동굴이 아니라구…. 조금만 더 달리면 출구가 있는데 여기서 돌아가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 되는 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인내하면서 계속 전진하는 것뿐인 것 같아.”

힘들 때마다 아내에게 했던 말이다. 강원도를 여행할 때 지났던 10km가 넘는 터널이 떠올랐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중간쯤에서 잠시나마 ‘이 터널의 끝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 의심한 적이 있었다.

더러는 나와 같은 의심을 잠시 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두려운 나머지 차를 돌려 역주행을 감행하는 이는 없다. 잠시 후면 끝을 알리는 빛이 터널의 출구 쪽에서 비춰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우린 달려온 길보다 훨씬 긴 거리라고 할지라도 안심하며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짧은 레이스가 아니다. 길의 상태가 고속도로처럼 단조롭거나 모두에게 동일한 코스도 아니다. 지도나 교통표지판처럼 친절한 예측 도구도 없다. 마라톤 코스가 42.195km인 것을 몰라서 완주를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레이스가 길고 험하면 지쳐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은 그리 현명하지 않은 말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들은 이 고역이 언제쯤 끝날지를 예측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대부분 빗나가기 일쑤다. 누워 있던 아이가 뒤집으면 뒤집어서 힘이 들고, 일어나면 일어나서 사건 사고가 끊임없다. 말을 하고 자의식이 생겨서 손이 좀 덜 간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미운 짓을 하며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이 모든 고역의 끝자락에서 둘째가 들어서면 지루한 노래에 도돌이표가 붙은 것을 발견한 것 같은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아내는 아이 셋을 키웠고 13년의 세월을 묵묵히 달려왔다. 터널 거의 끝자락에서 우린 멈춰 섰고, 위험한 터널 안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억지로 차를 밀어서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더 이상 터널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위로도 격려도 아닌 말 따윈 약발이 듣질 않았다. 쉼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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