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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경 읽기’가 필요하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
[335호] 2018년 09월 20일 (목) 15:44:48 강호숙 goscon@goscon.co.kr
   
▲ 예수는 유대 사회에서 억눌리며 차별당한 여성들을 사랑한 페미니스트였다. (그림: 구에르치노의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성차별·성폭력에 취약한 교회
저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성경적”이라며 앞다투어 논하는 마당에 나 역시 숟가락 하나 얹어 식상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지 망설이다가, ‘여성의 성경 읽기’가 곧 이 시대 ‘올곧게 읽는 성경’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2천여 년 기독교 역사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설교한 자들은 대다수 남성이다 보니, 여성의 입장과 경험이 외면되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았다. 이제 ‘여성의 성경 읽기’를 통해 그동안 가부장적으로 치우쳐 온 성경 읽기를 일정 부분 ‘곧게’ 펴는 ‘바로미터’가 되게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인류 역사나 교회사 모두 가부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지주의(Gnosis)는 신비한 지식을 추구하는 이념으로서 영은 고상하나 몸은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이 이념이 금욕주의와 결합하면서 유독 여성의 몸을 열등하고 천하게 보게 되었다. 또한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해 그리스와 로마 당시에 상당한 여아 살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현대는 어떤가? 가부장제와 소비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얼짱’ ‘몸짱’이라는 어젠더(agenda)를 퍼뜨려 여성의 외모는 남성에게 인정과 평가를 받게 되었다. 끝내 남성에게 권력까지 거머쥐게 하는 몸의 자본화, 몸의 서열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교회사를 보아도 성을 차별적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남성 인물들은 과하게 영웅화하거나 신비화하는 반면, 성경 속 여성 인물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고 심지어 왜곡과 경멸을 덧붙여 해석한다. 마치 성경이 남성만을 위해 기록된 것인 양 왜곡된 해석이 남발되어 온 것이다. 남성 교부들과 남성 신학자들은 가부장적 성경해석을 ‘진리’라고 퉁치면서, 여성을 ‘열등한 존재’ ‘종속된 존재’, 심지어 ‘위험한 존재’(‘꽃뱀’, ‘음녀’, ‘유혹자’)라는 선입견을 갖게 함으로써, 여성의 인격, 가치관, 여성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왜곡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성(性)의 목적엔 관심 없이 ‘남녀질서’에만 몰입한 결과, 성 배제와 성차별, 성추행과 성폭력과 같은 중요한 성윤리와 성문제에 대해 무방비했던 게 사실이다. 교회의 가부장적 성경 읽기는 하나님의 역사를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구속사로만 이해하여, 외형적으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다”고 하면서도 “여성은 종속적이며 유혹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학습시켰다. 그렇게 한국교회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2016년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화두가 던져진 것이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차별과 폭력, 배제와 살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2018년에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가 법조계, 문화예술계, 대학교, 정치계의 대대적인 미투운동을 촉발했다. 이는 성별 권력에 의한 불평등과 성폭력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권력자 남성들의 조직적 관행에 맞선 여성들의 용기 있는 폭로였다.

필자는 페미니즘과 미투운동을 통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정체성 찾기와 성평등을 염원하는 거대한 물결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좀 더 공평한 사회로 전환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인권과 성차별의 사각지대인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교회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외치려는 게 아니다.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와 고통이 현재에도 계속되는 현실을 문제 삼아, 모두가 성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과 희망에 따라 살아가도록 도모하려는 것이다(김영희). 오늘날 여성들의 주체적인 인식적 물음과 참정권, 인권과 교육받을 권리, 가정폭력방지법 등 보호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건 과거 가부장 시대에서도 사력을 다한 페미니스트들의 공헌 덕분이다.

최근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20-40대 교회 여성 1,3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페미니즘을 학습한 젊은 여성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로, 교회 내 불평등한 성역할과 성차별, 소통 부재라고 응답하였다. 이 와중에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자처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중심으로 한 보수 기독교는 페미니즘과 젠더 담론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비판하면서, 인권과 성평등 의제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혼전순결과 결혼, 젠더 정체성과 젠더 역할에 대해선 가부장적 관점으로 호도하는 반면에, 반동성애(LGBTQ)와 관련하여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현재 보수 교단에 속한 대학교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해체를 노리는 젠더 이데올로기… 연합해서 대처해야 한다”면서 페미니즘을 ‘거짓 인권’ ‘거짓 평등’ ‘거짓 사상’으로 매도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보수 교단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표면적인 이유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급물살을 탄 급진적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폐기하기 때문”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보수 교단에서 페미니즘을 “신학계와 교회를 무너뜨리는 불온하고 위험한 이념”으로 보도록 왜곡의 불씨를 키운 건 총신대 총장이었던 고 김의환 박사가 만든 “여성 안수=동성애”라는 프레임 때문이다. 그는 페미니즘 신학으로 촉발된 여성 안수 논의를 동성애와 함께 엮어,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것이 곧 보수 신학의 최후 보루인 양 인쳤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 교단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보수 신학을 공부한 필자의 판단에 의하면, 보수 교단이 페미니즘 신학을 거부하는 속사정은 ‘가부장 권력’이라는 헤게모니(hegemony) 때문이다. 보수 교단의 여러 행태를 보면, 지키고 싶은 건 성경의 권위가 아니라 가부장 권력이라는 걸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실례를 들자면, 2015년에 헌법재판소가 내린 “간통죄 위헌”이라는 판결은 엄연히 십계명에 명시된 “간음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으로 성경의 권위를 지키려는 자들이라면 저항했어야 했다. 그러나 침묵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는 대법원에서 판결한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에 대해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3)는 성경 말씀에 따라 마땅히 징계했어야 했건만, 오히려 ‘성범죄 은닉 메커니즘’을 가동시켜 이를 덮어버렸다.

교회의 가부장 권력은 성경의 권위를 남성들의 입맛에 따라 선별적으로 취하면서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 이를 볼 때, 페미니즘이 교회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가부장적 권력이 오히려 여성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면서 스스로 황폐화되고 있다.

성경 속 페미니즘 찾기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와 신약의 유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가부장 사회였기에, 신구약은 모두 가부장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을 보면, 여성은 전적으로 남편에 의해 평가되었고, 단지 자식(특히 아들)을 얻는 수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은 ‘수’(數)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열등하였고, ‘이혼권’과 사유재산권이 없었으며,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일부다처제나 계대결혼, 상속법 등 여성에게 불리했던 제도들이 오늘날에는 다 폐기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성경이 인간 존엄과 평등사상을 담고 있어서다(갈 3:28). 여성의 눈으로 성경 속 페미니즘 가치를 살펴보자면 첫째, 남녀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이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필자는 무한한 인격자이신 하나님을 닮은 ‘유한한 인격적 존재’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원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룬 구원의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 즉, 인간성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어(Kierkegaard)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건 “인간을 재는 잣대가 자그마치 신이라는 뜻”이라고 했으며, 17세기 현대교육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메니우스(J. A. Comenius)는 인간을 ‘소우주’로 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부분에서 ‘자유의지’를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한편,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으로 남녀 모두가 ‘통치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음은 중요하다. 이는 ‘파트너’(partner)라는 단어가 앵글로-불어 ‘parcenter’의 ‘동반 헤드십’(co-headship)을 가리키는 말에서 파생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남성과 여성은 인간됨의 요소이자 남녀 모두 피조 세계와 하나님 백성의 영혼을 돌보는 청지기 역할을 감당해야 할 왕적 통치자요 파트너들인 것이다.

둘째, 남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이다. 오순절 성령 충만을 경험한 남녀 모든 제자들은 승천하기 전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따라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남녀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자유와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또한, 유기체인 교회는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고백하듯, 남녀 위계 없이 서로 친교를 나누는 ‘하나의 몸’으로서 이해된다(고전 12장). 하여 페미니즘은 남녀의 위계질서가 아니라, 남녀 각자가 서로 평등하게 어울려 적당한 지분(portion)을 차지하면서 각자의 은사에 따라 조화롭게 사랑과 ‘하나 됨’을 실현하는 질서가 되도록 돕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성차별하지 않으시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남녀 간의 연합과 균형으로 이뤄지는 유기적 교회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자유와 정의, 사랑과 평화, 친교와 거룩함을 되찾게 될 것이다.

셋째, 성경은 여성에 대해 열려 있으며, 예수는 페미니스트라는 점이다. 성경은 불임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던 시대에서도, 불임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알려준다. 성경은 여성을 가부장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 보편성과 영원성, 공의와 올바른 정치 질서, 인간 상호 간의 화평의 나라를 실현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서 소개한다. 그 정점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예수는 유대 사회 당시 남성들에게 억눌리며 차별당한 여성들을 사랑한 페미니스트였다. 예수가 왜 페미니스였는지는 그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때 잘 드러난다(요 4장). 예수는 유대 사회가 중요시했던 세 가지 정도의 사회적 통습을 깨셨다. 즉, 예수는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던 유대 민족의 질서, 여성을 생각 없는 열등한 존재로서 취급했던 가부장의 질서, 여자와 집 밖에서의 대화를 금기시했던 랍비 전통의 질서를 과감히 깼다. 여성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며 인격적으로 대한 혁명적 페미니스트였다.
이뿐 아니다. 성경은 요시야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훌다 여선지자, 이스라엘의 보호자요 어미가 되었던 드보라 사사, 남자에게만 허락되었던 상속을 당당히 요구한 슬로브핫의 딸들, 무자의 결핍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도래할 메시아의 나라를 예언한 한나, 이방 여인임에도 예수의 족보에 오른 여성들(다말, 라합, 룻), 시대의 통념에 도전하면서 그리스도의 장사를 준비한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고 끝까지 증인이 되었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이외에도 뵈뵈 집사, 루디아와 다비다 제자, 브리스길라, 유니아 사도 등 시대의 편견과 한계에 매이지 않은 주체적인 믿음을 지닌 ‘드센’ 여성들이 하나님 나라 주요 일원이었음을 증언한다. 특히 주님께서 그 당시 ‘증인’이 될 자격이 없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과 전달자로 삼으신 사건은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다. 예수를 목격한 증인의 말을 믿는지 여부가 신앙과 불신을 나누는 기준이었고, 그 증언을 전달한 첫 사람이 여성이었음은 매우 파격적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복음의 역동성과 초월성은 시대의 한계를 넘어 여성을 자유케 하고 온전케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과 일꾼으로 일으켜 세웠다. 따라서 여성의 성경 읽기는 지금까지 가부장적 성경 해석과 남성 중심의 직제 담론으로 배제·축소되어 온 여성의 지위와 정체성과 역할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어떻게 바로잡아 적용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방향타’(rudder)가 될 것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성경 읽기
초기 한국교회는 남녀평등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실천에 옮겨 교육과 문화를 선도했는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사회의 인권 의식과 성평등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존 나이스비트는 《메가트랜드》에서 “21세기는 3F의 시대”라며 ‘Female’(여성성), ‘Feeling’(감성), ‘Fiction’(상상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촛불혁명으로 거듭난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편적 인권과 성평등,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 감수성과 공감 능력, 열림과 변화의 주체자로서 잘 교육받은 강인한 기독 여성 리더들이 준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가복음 10장 26절,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는 예수의 물음에서, 성경을 읽는 주체자 여성의 입장과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파할 수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석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선하신 뜻에 맞는 여성됨과 사명을 좇아 소리를 내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성으로서 마땅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온전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다.
 
여성의 성경 읽기는 성경의 권위로 가장된 ‘남성의 권위’의 신화에서 기독 여성들이 성경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여성을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의 능력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울러 여성의 성경 읽기는 진리(text)와 문화(context)를 구분하여 21세기 오늘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남성의 성경 읽기와 비교하여 ‘같음과 다름’을 찾아내어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인식적 넓이와 깊이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여성의 성경 읽기는 단지 여성의 위상에만 목적을 두려는 게 아니다. 기독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경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의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여성들이 복음적 자존감을 회복함과 동시에, 기독 신앙과 성의 문제, 성윤리와 남녀 파트너십의 건전한 지도(direction)를 통해, 정의와 사랑, 평화와 연합, 복음의 실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 즉, 전인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서 여성의 성경 읽기는 젠더 정의(gender justice)를 통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는 실천적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을 아는 만큼, 교회는 그리스도 복음의 실현에 역동적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 확신하면서, 여성의 성경 읽기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강호숙
총신대에서 ‘교회여성리더십’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은 후, ‘현대사회와 여성’ ‘여성학’ ‘한국 사회와 여성문제’ ‘칼빈주의와 문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보수 교단의 차별적이며 종속적인 여성관에 문제의식을 갖던 차에,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보수 교단의 성윤리, 남녀 파트너십, 성차별적 설교, 교회리더의 성(聖)과 성(性)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개혁주의 여성리더십의 이론과 실천》이 있으며, 역서로는 《세상은 미로 마음은 천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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