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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스포츠
[335호 민통선 평화 특강]
[335호] 2018년 09월 20일 (목) 16:04:47 정지석 goscon@goscon.co.kr
   
▲ 2018 아시안 게임의 한 장면 (사진: 위키미디어코먼스/ Hamed Malekpour)

평화의 메신저, 스포츠
한반도가 전쟁 위기 상황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데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관계는 갈등과 단절로 이어졌고, 단절된 관계는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여 급기야 전쟁 위기로 치달았습니다. 이럴 때는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만나 오해와 불신을 풀고 전쟁의 파국을 막아야 하는데, 그것이 정치의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는 그럴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정치가 나서면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뿐이었습니다. 정치는 갈등을 풀 수 없는 ‘평화 무기력 정치’가 되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이때 스포츠가 그 단절된 소통을 잇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적 단절과 군사적 대결의 긴장 상황에서도 남북은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남쪽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요청하는 비정치적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스포츠 행사입니다. 세계 올림픽 관계자들은 북한의 참가를 위해 노력했고, 남북한 올림픽위원회 관계자들은 만남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스포츠 외교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북한 최고지도자는 2018년 새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낸다고 선언했습니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의 만남과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절되었던 남북관계는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비정치적 스포츠로 시작된 연결과 대화는 정치 군사적 갈등 해결의 대화로 발전했습니다. 동계올림픽 이후 두 달여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다시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졌던 전쟁의 그림자는 거둬졌습니다. 스포츠가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입니다.

단절과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만나서 대화해야 합니다. 만남과 대화는 ‘평화 건설’(Peace-building)의 기초요 핵심입니다. 정치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인데, 능력 없는 정치 지도자들은 갈등을 악화시키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독재 권력자들은 갈등 상황을 조장하고 이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정치는 갈등을 평화로 만드는 평화예술입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권력 투쟁의 장이 되어 평화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정치적 평화 엔진이 작동하지 못할 때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만드는 스포츠의 역할은 현대 평화학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운동을 목적으로 ‘스포츠와 평화’란 국제기구가 2007년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비정치적 평화정치
20세기 냉전 시기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는 스포츠를 통한 평화 건설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서로 적대국이었고 단절된 관계였던 미국과 중국은 탁구경기를 통해 만남과 대화를 시작했고, 국교를 맺으면서 적대국에서 친구의 나라로 변했습니다. 스포츠가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스포츠로 만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은 끈질긴 정치적 대화를 이어갔고 마침내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북경에 미국 대사관이 세워지고, 워싱턴에 중국 대사관이 세워져서 양국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화가 시작한 이후 국교 수립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국교 수립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후 남북 및 북미 간 국교 수립이 빨리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중 국교 수립의 사례를 보면 너무 조급해할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시민들이 꾸준한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 진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포츠 교류는 평화적 관계를 더욱 넓히고 활기 있게 할 것입니다. 선수단과 함께 시민 응원단도 함께 가면 시민들 간의 상호 교류와 만남도 늘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한 과정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북녁 땅에 미국 대사관이 생기고, 남녁 땅에 북한 대사관이 생겨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여행하고 일하는 날이 반드시 오고 말 것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렸습니다. 아시아는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가 함께 사는 곳입니다. 국경을 둘러싼 분쟁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들의 스포츠 행사인 아시안 게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인들이 서로 단결하고 사귀면서 평화로운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목적 아래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지만 무력 충돌을 피하고 상호 이해와 발전을 도모하는 데 스포츠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군사적, 정치이념적 대결보다는 평화적으로 경쟁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데 동의하여 4년마다 스포츠 축제로 모이게 된 것이 아시안 게임입니다. 20세기 이데올로기 냉전시대에 서로 적대국이었던 국가들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만나 스포츠 경쟁을 하며 사귀고 교류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아시아는 다양성 속에 평화를 이루는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처음 참가 선수단은 1천5백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1만여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지구촌 세계 시민들은 평화로운 공동체에서 살고 싶은 희망을 스포츠 축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평화의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은 스포츠가 비정치적이라는 데 그 주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현실 정치가 평화 창조 능력이 없고 오히려 갈등 조장자 역할만 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정치를 논하면서 정치란 개개인의 능력을 상호보완해줌으로써 상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갈등 해결의 정치를 정치의 본질로 말했습니다. 공자는 권력에 초연해야 참된 정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정치는 권력 추구를 목적으로 삼고,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로 전락해 있습니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 추구가 되어 있습니다. 권력 추구 정치란 타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힘의 정치를 의미하는 바, 갈등과 분쟁은 필연적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 정치는 갈등과 분쟁 해결에서는 거리가 멀고 정치가들은 평화를 창조하는 데 무능력합니다. 평화정치란 말은 형용 모순의 말이 되어있습니다. 현실 정치는 안보정치, 권력정치, 욕망의 정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정치적 행위일수록 평화정치가 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스포츠가 갈등 해결의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비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비정치적 행위지만 결과적으로는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평화 정치의 본질을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스포츠가 평화 건설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은 사람들(民)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는 놀이하는 인간으로서 우리의 신체적 본능을 충족시켜 줍니다. 이기고 지는 게임도 재미있습니다. 정해진 공동의 규칙을 지키면서 하는 공정성(페어플레이 정신)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여가와 휴식을 갖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합니다. 이렇게 스포츠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국가 간 스포츠 경기는 군사적 충돌의 욕구를 대리충족으로 풀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스포츠는 직접 해도 좋고, 관전자로서 지켜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스포츠는 갈등이 필연적인 삶의 세계에서 평화적 갈등 해결 요소를 포함하고 평화 건설의 도구 역할을 합니다.

   
▲ '철원 DMZ 국제평화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뛰는 국경선평화학교 피스메이커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스포츠의 부정적 수단화
스포츠가 평화 창조의 긍정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첫째는 비정치화의 부작용입니다. 독재권력자들이 통치 기술로 사용했던 3S 정책은 Screen, Sports, Sex입니다. 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는 우민화 정책으로 스포츠가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독재자들이 프로 스포츠를 이용하여 우민화 정책을 조장한 역사가 있습니다. 

둘째는 스포츠 도박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스포츠의 게임과 경쟁을 도박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프로 스포츠는 대개 도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박은 사행심을 조장하여 민의 정신은 쇠퇴하고 타락합니다.

셋째는 스포츠가 지나친 승부 의식과 집단 이기주의와 결합되어 폭력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특히 민족주의 감정과 결합되면 평화를 해치는 역할을 합니다. 유럽 축구경기에서 종종 일어나는 관중들의 폭력 사태는 지나친 승부욕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축구경기장의 폭력배 훌리건(hooligan)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폭력 충돌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서 스포츠를 폭력의 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일전이 열리면 민족 감정이 투여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평화에 반하는 부정적인 요인들입니다.

마라톤과 평화운동
국경선평화학교 교육과정에는 평화스포츠란 코스가 있습니다. 피스메이커의 건강을 튼튼히 하고자 하는 교육목표 아래 진행하는 과정 입니다. 테니스를 배우고 탁구를 칩니다. 스포츠를 즐기면 심신이 건강해집니다. 건강은 평화의 주요한 요소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평화운동도 할 수 없습니다. 피스메이커는 심신의 건강을 수련하는 일에 게을리 해선 안 됩니다. 국경선평화학교 평화스포츠에서 필수과정은 마라톤입니다.

철원에는 매년 9월 ‘철원 DMZ 국제평화마라톤’ 대회가 있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 3년 정규과정에 등록한 학생들은 1년차에는 10km, 2년차에는 하프(21km), 그리고 3년차에는 풀코스(42.195km)를 뜁니다. 저는 이미 풀코스를 뛰었고, 금년에는 하프를 뛰었습니다. 마라톤을 해보면 평화운동과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합니다. 마라톤은 평화운동가에게 신체 건강 증진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매우 적합한 스포츠임을 깨닫습니다.

마라톤과 평화운동이 가까운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마라톤과 평화운동 모두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신념을 필요로 합니다. 단거리 경주처럼 짧은 시간 빨리 뛰어서는 안 됩니다. 길게 멀리 바라보며 꾸준히 뛰어야 합니다. 중간에 힘들고 지칠 때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뛸 때 골인 지점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내가 마라톤을 왜 뛰어야 하지?’라는 질문이 일어납니다. 실용적이고 타당한 대답이 마땅치 않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권력을 얻는 일도 아니고, 사회적 명예를 위한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질 때 이 의미에 대한 질문이 일어나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평화운동도 비슷합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 거지? 내가 한다고 평화가 이뤄질까?’ 단거리를 뛰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뛰어야 할 일이 평화운동입니다. 기간을 정해 놓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성과를 얻는 일이 아니어도 하는 일입니다. 꾸준히 신념을 갖고 뛰면 결국 목표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둘째,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냥 뛰면 될 것 같지만, 제법 긴 거리를 뛰는 일이라 훈련 없이는 완주하기 힘든 것이 마라톤입니다. 충분한 준비와 연습 없이 참가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저도 중간에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금년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연습하지 못하고 참가한 친구는 다리를 다쳤습니다. 준비와 연습 없이 하면 마라톤은 고통입니다. 근육과 폐활량을 길러 놓지 않으면 마라톤을 뛰기 어렵고, 설령 뛴다고 해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심한 고생을 하고, 뛰고 난 후에도 후유증이 몸에 많이 남습니다. 평화운동 역시 준비가 필요한 일입니다. 준비 없인 할 수 없는 일이 평화운동입니다. 우선 깊이 기도하면서 평화 의지와 신념과 확신을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중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폭력과 승리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평화는 비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념과 확신은 평화운동의 장거리를 뛸 때 정신적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평화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몸으로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에서 마라톤과 평화운동은 일맥상통하기에 국경선평화학교 피스메이커 훈련을 받는 사람들은 철원 평화마라톤에 참가합니다.  

셋째, 혼자 뛰는 일입니다. 그러나 같이 뛰면 훨씬 힘이 나고 재미있고 지쳐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생깁니다. 그러면서도 뛰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힘들어도 견뎌야 하는 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결정요인은 정신적인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마라톤을 뛰면서 평화운동의 길을 생각합니다.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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