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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벌부’는 살아 있다
[335호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 공포와 욕망의 이중주
[335호] 2018년 09월 20일 (목) 16:08:04 최종원 goscon@goscon.co.kr
   
▲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마리우스 그라네의 그림 <면벌부를 사는 시골 처녀> (출처: 위키미디어코먼스)

종교개혁 500주년을 떠들썩하게 기념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그후 1년의 소회는 각기 다르겠으나, 한국교회 전반을 감싸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중세 교회의 말기적인 현상을 대표하는 상징은 아마 면벌부(免罰符)의 남용일 것입니다. 어쩌면 면벌부란 과거 거기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 우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반복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마주하기 고통스럽지만, 면벌부를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과 우리 안의 욕망을 연결시켜 보고자 합니다.

1. 면벌부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중세 말 면벌부는 가톨릭 교회 타락의 결정체로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간단한 문제 제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면벌부 제도가 종교개혁 시기까지 약 400년 이상 존속되었고, 그 이론적 구조가 오늘까지 유효하다면 한두 마디로 간단히 규정해버리는 것이 타당할까요? 이제 종교개혁 연구의 주류를 차지한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면벌부를 둘러싼 문제가 중세 말의 현저한 요소가 아닐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교개혁가들 중에 루터 외에는 누구도 면벌부 문제를 개혁의 핵심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중세 말 면벌부의 오남용 현실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논지의 핵심은 면벌부가 ‘연보궤에 땡그랑 돈 떨어진 소리에 연옥에 있던 영혼이 천국으로 뿅 올라간다’는 희화화된 현상에 휩쓸리기보다는 당대 가톨릭 교회 구조 내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예상 가능한 기제였음을 냉정하게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동방교회의 맥락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는 중세 가톨릭 교회는 광범위하게 유포된 대중의 신앙 행위들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하는 토착화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동방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면벌 교리’나 ‘연옥 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면벌부는 중세 교회가 규범화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칠성사’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교회의 성사를 지키면서도, 죽음과 구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늘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 따르면, 한 사람이 죄를 고백할 경우 그가 범한 죄는 신의 은총과 사제의 권한에 의해 용서되지만 죄로 인해 생긴 후유증은 남게 됩니다. 이를 참회자가 해결해야 할 ‘잠벌’(暫罰, temporal punishment)이라고 합니다. 잠벌은 고해 사제가 죄의 경중에 따라 명하는 금식, 기도문 암송, 성지순례, 지정된 교회 순례, 자선행위 등을 통해 처리되고 경감됩니다. 일생 동안 다 해결하지 못하고 남은 잠벌은 그 분량만큼 연옥에서 정화하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면벌부는 이 내세의 잠벌을 해결해주는 증서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는 증서가 아닌, 잠벌을 없애 주는 것인 만큼 면죄부보다는 면벌부가 더 정확한 용어입니다. 가톨릭에서는 ‘대사부’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어떤 단어도 면죄부만큼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습니다!

2. 면벌부의 사회사
최초의 면벌부는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가는 십자군들을 위해 교황이 처음 발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회 고행에 버금가는 행위인 성지순례나 십자군 원정 등 어렵고 위험한 종교적 행위에 동참하는 이들의 안전한 천국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군 원정 이후에도 면벌부는 대중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구원에 대한 열망을 업고 확대재생산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대중적인 흐름을 신학적으로 추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대중들의 실질적인 삶과 내세의 고민을 ‘천국문을 여닫는’ 교회의 권위가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면벌부의 도입과 이론적 정립은 대중 종교의 집단 심성이 표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면벌부 시행은 교회가 대중에게 부과했던 일방적인 은전이기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쌍방향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 권위라는 위로부터의 부과와 대중들의 구원이라는 아래로부터의 욕구가 결합하여 생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애초 면벌부는 금전적으로 매매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군 원정이 끝난 13세기 이후에 면벌부는 다른 참회의 고행 대신 금전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면벌부의 대중화는 화폐 경제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연보할 돈이 없어 ‘날연보’나 ‘성미’ 등으로 자신의 정성을 표현했던 한국교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순간 ‘화폐’로 헌금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된 경우와 비슷합니다. 더 나아가, 십자군뿐 아니라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학생들을 후원하는 일, 교회 병원 도로 및 교량 건설 등 공공의 선, 사회 안전망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에 면벌부가 판매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면벌부를 교회가 발행한 ‘천국 약속 어음’이라고 부릅니다.

면벌부가 학문의 장에서 공론화되었을 즈음에는 기본적으로 면벌부의 유용성과 유효성에 대한 합의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였습니다. 면벌부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는 교황과 주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행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학문적인 용어로 이론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연옥이라는 명사를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성가대장 피에르는 면벌부가 적법하게 수여될 수 있는 조건을 ‘교회의 권위’ ‘성도의 교통’ ‘참회의 노력과 헌신’이라는 세 가지로 규정하였습니다.

첫째, 교회의 권위는 마태복음 16:18에 나온 대로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지상교회를 이끌 권위를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맡겼다는 이른바 사도 전승을 의미합니다. 초기에는 수도원장들도 면벌부를 발부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13세기 초 교황과 주교들만 발행권을 가지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교황은 모든 잠벌을 면제하는 전대사와 부분적으로 면제하는 한대사를 발행할 수 있으며, 주교들은 오직 한대사만 수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성도의 교통은 개신교와는 다소 이해가 다른 개념입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통은 ‘공로의 보고’(treasury of merits)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구원을 얻는 기준을 100으로 놓고 볼 때, 연약하고 죄악된 인간은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나 인간의 연약함을 넘어선 성인들은 그 기준을 능가하는 공로를 쌓았습니다. 그렇게 획득한 잉여의 공로를 ‘공로의 보고’에 쌓아 두고, 인간이 그 공로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인들의 공로를 현세의 대중이 혜택으로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참회의 노력과 헌신. 1350년을 희년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는 교서에서 교황은 희년과 면벌부에 대한 성서적 기초를 주장했습니다. 매 50년마다 모든 부채가 탕감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모세의 관용에 대한 율법이 교회를 통해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면벌부는 실질적으로 재물을 통해 가난한 자들과 교통하는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도구였습니다.

3. 공포와 욕망, 하나의 유럽을 무너뜨리다
면벌부의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효용에도 불구하고, 태생 자체부터 면벌부는 교회 권위와 대중 욕망의 만남이라는 불안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12세기 파리 대학의 교사 피에르 아벨라르는 당시 주교들이 성당 건축 기부를 받고 잠벌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을 면제해주던 관행을 비판합니다. 15세기 초반의 한 참회고행 지침서는 로마를 순례하여 사도신경을 다섯 차례 암송하고, 피에타 상 앞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면 연옥에서 33,000년 동안 받아야 할 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잉글랜드의 한 작가는 면벌부가 벌을 면제한 전체 기간을 합치면 1,640,037년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세 말 면벌부의 오남용에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망자(亡者)를 위한 면벌부’가 등장하고부터입니다. 본래 면벌부는 오직 살아 있는 자들의 잠벌을 면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망자의 영혼을 위해 가족이나 친척이 면벌부를 구입하는 것이 교회에서 수용된 것은 15세기 이후입니다. 망자를 위한 면벌부는 가장 오랫동안 신학적으로 논쟁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비엔나 공의회(1311)에서는 망자를 위한 면벌부를 홍보하는 면벌수사들을 탄핵했습니다. 그로부터 150년 후 1476년 교황 식스투스 4세는 면벌부가 죽은 자들에게까지 효력을 미친다고 공식 인정했습니다. 다시 그후 40년 만에 루터는 면벌부를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면벌부 오남용의 직접적 책임은 교회에 있었지만, 면벌 교리는 대중의 욕망과 함께 부풀어 올랐습니다. 어느 때고 삶과 죽음의 무게가 무겁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14세기 유럽을 초토화한 흑사병을 시작으로 종교개혁 전야, 압박해 들어오는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을 마주하는 유럽인들은 심리적 공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면벌부의 일탈은 진노의 날을 면하고자 하는 대중의 두려움과 이를 악용한 교회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소산입니다. 면벌부는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가장 구체적이고 안전한 자선 행위이자, 연옥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가장 높은 배당이 보장된 펀드였습니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면벌부 판매자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만, 구입하려고 열광한 이들의 종교적 욕망도 무작정 긍정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면벌부가 초기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사회사적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화폐경제의 발전은 면벌부 구매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절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은 모든 관습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그 무너진 경계로 무엇이 쏟아져 들어올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논란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망자를 위한 면벌부는 ‘대박 상품’이었습니다. 욕망을 매개로 대중의 요구와 자본 시장의 힘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망자를 위한 면벌부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교황 레오 10세는 처음에는 도미니크회와 아우구스티누스회 간의 해묵은 신학적 갈등으로 판단했습니다. 그가 놓쳤던 것은 종교의 외피를 입은 자본과 욕망의 힘입니다. 루터가 살던 작센 지역에서 판매한 면벌부 수익으로 성베드로 대성당을 짓던 레오 10세는 자신의 욕망이 1,000년을 지탱하던 하나의 가톨릭 교회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언감생심 상상이나 했을까요?

4. 면벌부는 살아 있다
중세 가톨릭이 죽음과 구원에 대한 공포를 천국 열쇠를 쥔 교회의 권위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 면벌부는 교회가 고안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적 산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실, 루터가 면벌부를 통해 비판한 것은 당대 교회의 오남용이었지만, 인지했든 못했든 그는 결과적으로 중세 신학의 ‘불안한 고리’를 끊었습니다. 그 고리를 끊고 유럽을 나눈 것은 면벌부 자체가 아니라 면벌부를 둘러싼 교회와 대중의 욕망이었습니다. 만시지탄이었겠지만 가톨릭은 면벌부 신학에 도사린 욕망을 인식했고, 종교개혁 이후 면벌부를 돈으로 매매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렇지만 면벌부가 가톨릭 신학의 결과적 산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개신교인들에게는 대단히 낯설겠지만, 언뜻 기억나는 것만 해도 직전 교황 베네딕투스 16세가 즉위 후 바티칸 광장에서 첫 미사를 집전할 때 참석한 이들에게 전대사를 선포했습니다. 한 8-9년 전인가, 사도 바울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가톨릭 청년 집회에서도 전대사가 선포되었습니다.

금욕(禁慾)은 욕망 없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요? 주어진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의 삶을 지탱합니다. 핵심은 그 욕망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니, 공교회가 그 욕망을 경고하고 지켜주는가 하는 점입니다. 적어도 오늘의 가톨릭에서 면벌부와 자본은 상관이 없습니다. 욕망을 종교적 어휘로 가장한 면벌부는 중단되었습니다.

자, 곰곰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실제로 면벌부가 용서한 것은 내세의 잠벌이 아니라 현세의 인간 욕망이었습니다. 교회가 면벌부 판매의 소구점으로 삼은 것 역시 내세에 대한 공포를 매개로 하는 인간의 현재적 욕망 자극이었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종교적 공포라는 기제와 그에 덧댄 인간 욕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면벌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화폐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면벌부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금욕의 종교와 욕망의 자본이 긴장 없이 만날 때면 언제 어디서든 유사한 괴물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개신교를 한 번 차근히 돌아보겠습니다. 종교개혁은 구원을 이끄는 주체로서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의 권위가 무너진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무너진 권위 위에 새로운 권위를 세워야 했습니다. 성경의 권위든, 성경을 해석하는 목회자의 권위든 간에 새 것을 세운다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었습니다. 그 어려움이 어찌 목회자들뿐이었겠습니까? 갑자기 자신이 속한 지역이 개신교 지역이 되면서 졸지에 개신교도가 된 이들이 겪었을 종교적 혼란을 상상해보십시오!

중세 말 일반적인 귀족의 예를 들어 보자면, 죽을 때 교회에 기부를 하고 연옥에 있을 자신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해주도록 유언장을 남기는 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개신교 틀에 맞게 유언장을 바꾸고 인식을 전환하는 일이 빠르게 일어났을까요? (따라서 개신교 지역에 개신교의 심성이 얼마나 정착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당시의 유언장을 연구하면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신교가 형성되었다고 해서 인간의 현재와 내세에 대한 욕망과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개신교가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면 대중들의 불안은 확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해, 가톨릭과 다르게 개신교가 더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중세 천 년을 지배한 가톨릭 신학을 넘어 개신교 신학이 신교 지역에 빠르게 뿌리내릴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신학적인 층위를 비롯하여 여러 층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회사 관점에서 개신교가 뿌리내리게 된 것은 근대국가 형성과 자본주의 확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개신교 설교 강단에서는 가톨릭처럼 사제가 구원을 선포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이 땅에서의 삶과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다만,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서 그리스도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구원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으며, 속된 세상을 사는 구원 받은 자의 도리를 반복했습니다. 중세에 면벌부를 구매함으로써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게 했듯, 이 땅에서의 성실하고 금욕적인 삶과 그에 따른 성취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주어진 소명을 감당했습니다. 칼뱅의 본래 의도는 차치하고라도, 금욕적으로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라는 정신은 성실의 열매로 얻어지는 자본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었음은 자명합니다. 종교적 금욕과 자본의 욕망은 동전의 양면이었습니다. 중세 말 면벌부가 자본과 결합하면서 확대되었듯, 개신교도 자본주의와 사이 좋게 발전했습니다. 획기적인 차이라면, 중세 말의 면벌부는 죽기 전엔 권리 행사가 불가능한 생명보험이지만, 근대 개신교인들에게는 현세의 복락으로 현금화될 수 있는 전환 사채가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구원은 내세에 약속되는 것일 뿐 아니라 현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면벌부의 심성이나 예정론의 심성은 그것이 오용될 때 한 끝 차이도 없습니다. 신의 예정을 받은 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자본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정당화해주는 면벌부로 작용할 가능성은 차고 넘칩니다. 이 땅의 성취가 곧 신의 소명을 완성하는 것이기에, 현세적 성취와 자본의 소유는 모든 문제를 정당화해주는 면벌부 역할을 합니다. 논리를 거칠게 확대해 보면, 어쩌면 대형교회는 종교적 심판과 구원에 대한 교회의 권위와 현실적 구원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극적으로 만나는 장소 아닌가 합니다. 대형교회 목회자와 그 핵심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이미 성공을 통해 세상에서 신의 우호적인 판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을 본받는 것은 역시 신의 호의를 얻는 좋은 방편입니다.

이렇듯 대형교회 담임목사를 비롯한 ‘성공한’ 내부자들의 ‘공로의 보고’ 계좌 잔고의 자리수는 헤아리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그들이야말로 죄인들에게 공로를 나눠줄 수 있는 적임자들입니다. 곧 그들의 말은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됩니다. 소위 ‘성취한 자’들의 간증은 종교적 경외감을 줍니다. 심지어 그들은 사회법이나 사회의 통상적 관념을 자신들의 종교적 성취를 근거로 간단하게 무시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공동체 속의 무리들은 세속의 관념과 가치를 뛰어넘은 지고한 종교적 가치에 도취되어 외부의 목소리에 무신경합니다. 자신들이 쌓아 올렸다고 자부하는 종교적 성취에 매몰되어 사회적 감수성을 상실해버린 일부 대형교회의 종교적·사회적 일탈은 이미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5. 면벌부 없이 오직 은총으로
이쯤 되면 ‘대형교회 자체가 면벌부’라는 지적은 더 이상 은유나 비유가 아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 대형교회가 약속하는 종교적 숭고는 대중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정말 고민해야 할 지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대중이 옳을 수 있을까요? 대중들이 면벌부를 파는 면벌수사를 경계하고, 면벌부를 욕망하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면벌수사의 인격과 능력에 집중하는 것은 초점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대형교회에 다니거나 욕망하는 대중들이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목회자가 반사회적 행위로 법적인 단죄와 사회적 지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면서 영혼을 저당 잡혀준 이들은 더 이상 자유의지를 지닌 시민이 아닙니다.

자각이 있는 시민들은 항상 옳습니다. 자각하지 않는 대중은 항상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와 개신교가 절묘하게 포착한 것은 대중의 발견입니다. 근대 교회사에서 교회의 운동이 진지하게 민중들을 향하고 조직화한 대표적인 사례는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감리교는 교회에 민중 의식을 가진 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운동은 교회 내에서조차 계급의식이 투철했던 유럽에서는 혁명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대각성 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 운동으로 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색채를 빼고 담백하게 그려본다면 이 운동은 대중들의 자본 욕망과 뒤엉켜 상승작용을 일으킨 운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한국 개신교의 경험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60-197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조직해낸 소외되고 가난한 대중은 적어도 현세에서 구원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집단적으로 축복에 빠져 긴장을 놓쳤을 때 집합적인 의미에서 그 교회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법으로 구성한 우중이 모인 사회 속에 스스로 발부한 ‘면벌부’를 쥐고 있습니다. 대중은 왜 사회적 문법에 맞지 않는 대형교회와 그 목회자들에게 종속될까요? 언젠가 그들과 같은 차원으로 올라서고자 하는 자각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대형교회 현상은 종교사회학뿐 아니라 정신분석의 대상입니다. 내세와 종교를 가장한 현세의 욕망의 표현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게 합니다. 점차 그 대상의 권위에 무한 종속됩니다. 종교적 자유인으로 시작했지만 자유의지로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성찰 없는 신앙과 사이비 종교에 몰입하는 현상은 큰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핵심은 이론 체계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신앙을 성찰하고 사유할 힘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본래 곤충, 파충류, 포유류 등 다양한 종이 자신의 포식자를 만났을 때 몸이 굳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 앞에서 저항의 흔적을 보이지 못한 이유를 의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이 개념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당연히 저항해야 할 것 같은 상황임에도, 압도하는 공포로 인해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병리가 엄연한 부정과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현세와 다음 생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목회자 한 사람의 입에 수천 수만의 눈과 귀가 몰입하는 압도의 현장에 적응한 이들에게 ‘긴장성 부동화’가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면벌부, 대형교회, 권위와 욕망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이 아닙니다. 신앙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고 욕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잘못된 권위에 의해 오도될 때 욕망하는 자를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목회자의 권위, 이미 주의 종의 인도와 발자취를 따라 성취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의 교통, 그리고 그런 성취를 이루기 위해 절제하고 노력하는 삶,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끄는 힘이라면 우리는 이미 면벌부에 필요 충분조건은 다 갖춘 셈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불확실성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직면해 나가는 것이지, 제도교회가 약속하는 면벌부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을 신의 은총이라는 종교적 외피로 가리는 것 역시 21세기의 면벌부에 다름 아닙니다.

이제는 두려움 대신 믿음을 갖고 조금은 더 주체적이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내면의 욕망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손쉬운 성취를 약속하며 다가오는 면벌부의 유혹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최종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교회사와 지성사를 강의한다. 인문주의 정신의 존중이 교회 갱신의 핵심이라고 믿고,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교회사 재구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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