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호 쪽방동네 이야기]

   
김ㅇㅇ 아저씨 방 (이하 사진: 이재안 제공)

6시간의 행복
여전한 폭염이다. 8월 20일, 박◯◯ 선생님과 6시간 정도를 동행했다. 암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하는 데 6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은 옆에 있어 주는 게 고마웠는지, 검사와 검사 사이 잠시 쉬는 시간에 카페에서 간식 대접도 해주신다. 암으로 투병하는 외로운 이와 그저 여섯 시간 함께 있는 것이 좋다. 행복이란….

열흘 뒤, 복숭아 한 상자를 나눠 드렸다. 3주 전에 구입한 복숭아는 맛있게 잘 드셨단다. 까칠한 분이다. 무른 복숭아는 싫단다. 개중에 가장 딱딱한 복숭아를 골라 드렸다. 다시 항암을 시작한다. 잘 이겨 내시길 바란다. 아니 내가 잘 버텨야 한다. 바라보고 함께하는 게 동정심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행복은 때로 ‘버티기’라는 생각이 든다.

추울 땐 연탄 같은, 더운 날엔 시원한 열무김치 같은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나 하나 올곧게 서기 힘들다. 힘들 땐 그저 침묵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뿐이다. 고통 속에 애통하는 절규로 죽음에 대면하여 나아간다. 살아가기 너무 버거운, 살기를 버린 이들이 허다하지만, 그저 농담 한 마디 던지며 살아가는 우리네 군상을 본다. 부활의 꿈을 다지며, 먼저 가신 이들을 돌아본다.

지난 7월 31일 새벽 6시경, 홀로 잠자듯 가신 김씨 아저씨. 수도 없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들락날락하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신과의 그 기억들 제가 잊지 않을게요.”

닷새 전에도 뵈었지만, 애써 외면한 나를 이해하실 거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본의 아니게 자주, 죽음에 다가가셨거나, 죽음 이후에 뵐 수밖에 없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가시는 분들을 가만히 보자면, 본인들이 겪을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면, 주변 공동체 지체들이 곁에서 함께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헤어지는 그 직전까지 그저 눈을 마주치고 “잘 가라, 그동안 사신다고 수고하셨다,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하고 이야기를 건네는 그 자체가 의미이고 생명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 성찰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늦은 밤 3층까지 귀뚜라미 속삭임이 울려 퍼진다. 또 날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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