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호 에디터가 고른 책]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하는가
해리엇 러너 지음 / 이명선 옮김
부키 펴냄 / 15,000원

“‘좋은 여자nice-lady’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며 분노를 회피하고 참는다. ‘나쁜 여자bitch’는 쉽게 화를 내지만,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싸움과 불평, 비난에 매달린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해리엇 러너의 대표작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하는가》(The Dance of Anger)에 나오는,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이나 평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좋은 여자란 착하고 상냥하고 ‘화내지 않는 여성’이며,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면 ‘여자답지 못하다’거나 ‘공격적’이라고 규정짓는 말을 감수해야 한다. 스스럼없이 대놓고 분노를 표현하는 ‘나쁜 여자’는 남성에게 요주의 인물이나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얼마나 금기시당해 왔던지, 여성들은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한다.

오래된 ‘분노 억제/표출 이론’(분노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마음속에 억제할 때 생기는 심리적 재앙을 막아준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에도 상식처럼 여겨온 우리는, 분노 에너지를 자신과의 관계 및 타자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배우지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 대부분은 … 분노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분노를 전면 부인하고, 분노를 부적절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또는 자신에게로 돌리도록 교육받아 왔다. 분노의 진정한 근원은 외면한 채, 분노에는 어떤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도록, 또는 현재 상태를 문제 삼기보다는 유지시킬 뿐인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도록 배워 왔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장과 존엄에 이바지하는 ‘분노 에너지 사용법’”을 배우는 일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말없는 복종, 비효율적인 싸움·비난·불평, 정서적 거리 두기 등 기존의 낡고 뻔한 분노 처리 방식을 중단하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분명하게 밝히고 드러내는 일에 분노를 사용할 줄 아는 통찰력과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중요하고도 절실한 필요에 응답한다.
물론 이 책은 대체로 가족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의 분노와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그게 문제가 될까 싶다. 페미니즘이 가르치듯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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