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호 스무 살의 인문학]

그래도 태양은 돈다
대도시 하늘을 가득 메운 우주선에서 괴물들이 쏟아집니다.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정부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도시가 박살나면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등장할 테니까요. 막강한 힘의 지구방위대는 외계로부터 쳐들어온 괴물들을 무찌르고 지구를 구원합니다. 7월 초에 방문한 외계인들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몰아내고 또 하나의 독립을 이루는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 침공의 공식을 따르는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미국으로 쳐들어온 외계인들을 막기 위해 전군을 투입하지만 실패하고, 미국인 과학자가 우연히 밝혀낸 기술로 미국 대통령까지 참전해 외계인들을 쓸어버리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비틀어 볼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외계인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나요? 물론 그네들도 먹고살자고 지구를 침공했겠지만, 그보다 좀 더 영화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봅시다. 영화는 외계인을 왜 등장시켰을까요? 외계인이 영화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멋쩍을 정도로 사소합니다. 외계인의 존재성은 인간의 독립을 축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간의 독립성을 한껏 드러내기 위해 외계인들은 갑자기 등장해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그보다 더 잔혹한 반격으로 인해 괴멸당합니다. 대사 한 줄 없이 죽이다 죽습니다. 참 초라한 독립기념일입니다. 반격할 수 있는 억압자를 상정하고 그를 두들기며 만끽하는 독립의 카타르시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계몽과 근대는 시작되었습니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라는 종교적 믿음이 실증성에 의해 깨지는 충격이 물결치며 개인적 믿음을 부르짖는 종교개혁과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알리는 정치혁명의 씨를 뿌렸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인디펜던스 데이〉와 같은 영화를 볼 때면 과학혁명의 근본인 지동설의 인류사적 영향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 광활한 우주 앞에서 인간은 과연 초라해질까요? 글쎄요. 외계인이 인간을 방문하는 것이 외계인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지구라는 별이 우주적 차원에서는 작고 보잘것없다고 과학 시간에 배웠습니다만, 쉬는 시간에 우리가 보는 영화는 온 우주가 힘을 모아 지구를 방문하는 작품들이군요. 지구는 과연 도는 것일까요.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