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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용기가 절실할 때가 더 많다”
[337호 커버스토리] ‘가까운책방’ 대표 김신일 목사에게 듣는 ‘지역’의 사회운동
[337호] 2018년 11월 27일 (화) 16:43:26 김신일 poemgene@goscon.co.kr
   
▲ 김신일 목사 ⓒ복음과상황 오지은

대전에서 그래픽노블 전문서점을 운영하는 김신일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대전지역의 여러 사회운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다. 직함만 10여 개에 이른다. 그는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역에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역별 전문가가 길러지기보다는 소수의 사람이 여러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지역”은, 소위 ‘중앙’이라 불리는 서울과 구분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중앙’으로 쏠리는 거센 흐름에도 김 목사는 ‘성서대전대회’를 꾸준히 치러왔으며,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대전캠퍼스를 안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전신학대학교의 정상화를 촉구하다가 졸업이 취소되는 황당한 일도 겪었다. 그에 더해 총장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수사를 받고 있다. 쓰라린 현실에서도 평온하게 책장을 넘기는 그에게 ‘지역’의 사회운동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 맡은 직책을 하나씩 열거해주신다면?
일단은 목사이고, 책방 대표다. 성서대전 실행위원장이면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대전캠퍼스 운영위원장,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평화누리 집행위원, 민생네트워크 새벽 이사 등… 하는 일은 많이 없는데 이름만 올려놓은 것 같다.(웃음) 또… 대전충남 녹색연합에서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배재대학교 강사로도 있고….

끝이 없을 것 같다. 이 책방 ‘공간’은 목사님께 어떤 의미인가?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중학생들도 오고, 시인도 오고, 여러 사람들과 이 공간에서 만나 책도 보고 이야기도 나눈다. 책방 이름이 ‘가까운책방’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지지와 연대를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연대한다고 해도 완전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자기 삶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과 책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이 공간은 책이든 사람이든 그런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가 생기는 곳이다.

‘그래픽노블 전문서점’을 표방하는데,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이 무엇인가?
그래픽노블에 대한 기원은 논란이 많다. 흔히 알려지기로는 아이들이 보는 만화와 어른이 볼 수 있는 스토리의 만화를 구분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대형서점 그래픽노블 코너에 가면 마블이나 DC코믹스의 만화들이 쭉 꽂혀 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더 확장되어서 다양한 작품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작가들 작품 중에서도 ‘이게 그래픽노블이지!’ 할 만한 작품들이 나온다.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작가주의 만화라고 할까?

원래 만화를 좋아했나?
교회 부교역자 시절에 청년들에게 용산 참사 같은 사회 아픔을 다룬 만화책을 빌려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서로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이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만화만큼 좋은 매개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만화를 ‘착한 만화’라고 부른다.  

   
▲ 대전지역 촛불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 김신일 목사 (사진: 김신일 페이스북)
   
▲ 사진: 김신일 페이스북

대전의 여러 사회운동에도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계시다.
서울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다 2012년 대전으로 귀향해서 성서한국 대전대회를 준비하는 분들과 연결된 것이 계기였다. 성서한국 대전대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실무를 맡게 되었고, 대회 치르면서 지역에 있는 기독교 단체들도 만났다. 이후로 에큐메니컬 진영이라 할 수 있는 대전NCC, 대전여신학자협의회 등과 연합해 아픔이 있는 현장에 찾아가 기도하는 ‘고함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집회 중인 노동자분들과 만나 기도회 취지를 설명하러 갔는데, 거기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콜트콜텍 노동자였다. 기도회를 같이 했다. 18대 대선(2012년) 후 대전지역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작은 집회들이 있었는데, 그때 지역의 시민사회·노동·종교 단체와 연대하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이름이 ‘국정원대선개입 진상규명 대전 시국회의’였는데 후에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민주수호 대전 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활동하던 중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세월호 진상 규명 목표가 하나 더 생긴 거다. 이어 연대 조직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조직이 분리되거나 확대되는 등 개편되었지만, 핵심 구성원은 거의 같다. 2016년 촛불 정국에서는 ‘박근혜 퇴진’으로, 지금은 ‘적폐 청산’을 목표로 사회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목사’로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 주로 집회 사회를 봤다. 내가 특정 당에 속한 것도 아니고, 사회운동 단체의 특정 정파에 속한 것도 아닌 사람이기에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웠다. 목사로서, 특정 사람이나 단체에 잘 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고, 특별히 못 만날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은 나의 장점인 듯하다.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는 몇몇 사람들도, 촛불집회 사회를 보는 사람이 목사라고 하면 반가워하더라. 길거리에서 어린아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 적도 있고. 인근 대형교회 다니는 어떤 분은 집회 때 수화 통역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대전에서 졸업하셨다. 서울에서 몇 년 사역을 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활동을 하신 건데, 대전만의 특색이 있는지?
대전은 특별히 지역색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딱히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내가 보기엔 분명 지역색이 있다. 타지에서 온 어느 교회 목사님은 몇 년 이곳에서 지내보시더니 대전을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라 정의하더라. 그 말이 맞다.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지역색은 분명하다. 대전이 그런 재밌는 도시다. 객관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1인 가구 비율 높고, 청년 인구도 6대 도시 중 제일 많다. 정착해서 오래 사는 사람보다는 이동 인구가 많다는 의미다. 최근엔 세종시의 영향으로 인구가 줄고 있다. 15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대전이 주변에 중요한 시설이랄 게 많다. 대학이나 연구 기관들도 많은데, 사람들은 잘 모르는 원자로 같은 위험 시설도 있다. 핵폐기물이 몰래 반출되기도 하고.

거의 모든 인프라가 서울 및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중인데, 지역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심각하다. 한 예로 지역에는 영역운동이 없다. 소수의 조직이 여러 영역의 운동을 감당하고 있다. 특정 영역을 전문화할 여력과 시간이 부족한 거다. 이런 상황이 계속 누적되면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해결하기 어려운, 오랜 문제인데 이제는 서울에 있는 조직이나 사람들이 정말 심각하게 의지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지역 조직의 강화를 위해 소위 ‘중앙’에서 더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꼭 돈 문제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나눠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한국’에는 그래도 영역별 전문가들도 꽤 있고, 지역에 비하면 재정적인 여력도 충분하다. 괴리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성서대전’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대전캠퍼스’는 지역 활동의 한 모델이 될 수 있겠다.
느헤미야 대전캠퍼스, 성서대전 등 지역의 운동들도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성서대전은 안 걸쳐 있는 운동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지역 노동단체에서 기도회 해달라고 하면 안 갈 수 없고, 환경문제 다루는 쪽에서 요청이 오면 또 연대해야 한다. 우리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관심 갖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총체적 복음 안에서 사회문제에 관심 두는 사람이 지역엔 많지 않다. 지역의 여러 가지 요청에 기꺼이 응하곤 있지만,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조직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다. 전문성을 키워가야 할 영역도 많이 보인다. 지금 느헤미야 대전캠퍼스의 경우는 서울에서 교수님들이 돌아가며 한 분씩 내려오고 계신다. 대전에서 우리끼리만 했다면 수강생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대전캠퍼스는 올해가 3년째인데 입문과정 50명, 심화과정 20명이다. 수강생 중에는 교회에서 상처받은 분이 정말 많다. 수업 초기에는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다. 우리와 대전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분도 꼭 강사로 섭외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들이 지역의 기독교 사회운동을 위해 다방면으로 역할을 할 날도 있을 거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매우 활발한 편이다.
대전에는 다양한 청년 활동이 있다. 2년 전에 느헤미야와 성서대전 등이 침신대에서 성서대전 지역대회의 일환으로 ‘청년함께’ 수련회를 했다. ‘사람책 도서관’ 콘셉으로 10-15분씩 각각 단체를 소개했다. 참여한 활동가들이 다 기독교인은 아니었고, 그때 왔던 청년 중에 지금은 구의원이 된 청년도 있다. 공유경제 측면에서 청년들의 다양한 도전이 시도되고 있다. 청년 중 한 명은 “목사님, 교회 수련회에서는 우리를 절대 안 불러요” 하더라. 교회가 지역 청년의 활동과 고민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그렇다. 답답하다. 실제로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청년들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는 잘 안 들린다. 반면에 지역의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면 뭔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보인다. 그 에너지의 물꼬만 트이게 해줘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꼭 돈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 돈보다 용기가 더 절실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재작년 8월에 대전에 있는 저소득층(한부모가정, 기초생활 수급자, 장애인 등)을 위한 공공주택에서 불이 났다. LH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는 거주지 제공 이외의 보상은 할 수 없다 하고,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가재도구와 생활용품 등을 잃고 주거 난민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분들과 함께 일일찻집 열고, 바자회에 참석하고, 재능기부로 공연해주실 분들 섭외하고…. 돈 드는 일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연대하는 일에 반드시 조직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재정이 튼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 사진: 김신일 페이스북

최근 대전신학대학교 졸업 취소 통보를 받았다. 신대원 졸업 10년 만인데, 워낙 충격적인 일이어서 SNS를 통해서도 꽤 확산됐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학교가 보복 조치를 한 거다. 10년 전 성적표에 한 과목이 중간·기말고사 성적이 적혀 있지 않다고 ‘부정 학점 취득’이라는 거다. 당시 담당 교수도 학교 측에 정상적으로 점수가 나갔다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학교가 졸업 취소 근거로 삼은 시행세칙도 학부 학칙이다. 그동안 이사회와 총장 퇴진을 요구해온 내가 마음에 안 들어 표적으로 삼은 거라 본다. ‘졸업 취소’를 무효화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대장간 출판사 배용하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소송 착수금을 모금했는데, 닷새 만에 다 채워졌다.

총장 퇴진을 요구한 이유는?
총장 재직 중 비리와 전횡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판단해서 1인 시위, 성명서 발표 등을 해왔다. 이 문제가 올해 불거진 거지만, 사실 오래 묵은 문제다. 교수협의회도 현 총장에 강하게 반대 의사를 내왔고 그 과정에서 징계, 연구실 폐쇄 등의 비상식적인 조치들이 이뤄졌다. 이사회는 연임을 밀어붙이려고 공개적으로 총장을 모집하는 절차도 밟지 않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교수 전원을 징계했다. 작년 2학기 임용된 교수를 빼고는 8명 전부 징계를 받은 거다. 직위해제 당한 교수도 있고. 총장은 교수의 임기 보장 여부를 스무 번도 넘게 번복하며 교수 길들이기를 했다. 교직원들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임금을 깎았다. 문제 제기를 하면 개혁에 반대하는 파렴치로 낙인찍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동문들과 온라인 서명운동을 하고, 총장 퇴진과 교수 징계 건에 대해서도 항의하고, 1인 시위를 주도했다. 3월에 이사장과 총장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해 압수수색이 진행되기도 했다. 총장도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1인 시위를 할 만큼 간절했던 이유는 뭔가? 교수나 교직원도 아닌데. 학교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진다.
지방의 신학교들은 여러 가지로 어렵다. 나는 배재대 신학과를 졸업했고, 2000년도에 대전신대 신대원에서 공부했다. 지방 신학교에 다니면서 서글펐던 적도 많고, 학과의 존재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1990년대 말에는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배재대 신학과(현재는 복지신학과)가 인문대 안에 들어가게 되면서 폐과 위기에 처하는 일도 봤다. 인문대 안에서 신학과를 선택하는 학생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학과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학교 안팎의 관계자들을 많이 만났다. 2000년도에 신대원에 들어갔을 때도 지방 신학교를 무시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목사가 빨리 되려는 이유로 대전신대에 와서 공부하던 이들 중 ‘지방 신학교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배재대 신학과를 무시하는 신대원생도 있었는데, 지금은 꽤 유명해진 사람이다. 어쨌든 속상한 한편으로는 졸업생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겠지 싶더라. 지역의 신학교가 계속 존재하려면 그 가치는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는가가 오랜 고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운영이 투명하게 진행되고 원칙과 상식에 따라 세워지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부 인가를 받은 학교 아닌가? 그에 걸맞은 기본은 지켜야 한다. 바르고 열심히 학교를 운영하다가 입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본을 지키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은 안 된다 생각했다. 교회든, 신학교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다가 망할 수 있다. 문 닫을 수 있다. 그런데 상식을 포기한 운영으로 문을 닫게 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고.

현재 상황은?
총장은 사표를 낸 상태에서, 새 총장 뽑을 때까지 임기 보장을 요구하는 것 같다. 총장 모집 공고가 났는데, 우려되는 것은 이사회 및 몇몇 동문들이 새로운 총장으로 찍어둔 사람이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총장 한 사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총장과 이사회 편에서 ‘열일’하는 사람들도 다 목사들이다. 씁쓸하다. 어제(11.7)부터 교육부 감사가 진행되었으니 사실관계가 더 드러날 거다. 

지난여름 〈일요신문〉에 ‘세습’ 아닌 ‘개척’을 택한 목사로 소개가 됐다. 아버지께서 꽤 큰 교회 목사였다.
아버지께서 1981년도에 개척한 교회다. 5년 전에 은퇴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교인 600~700명 정도의 안정된 교회다. 청빙 요청도 없었고, 요청이 있었다고 해도 그런 교회를 이끌어갈 능력도 없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지금 마당교회의 ‘전도목사’로 있다.
대전노회 국내선교부에서 파송하는 형식으로 ‘전도목사’로 마당교회에서 김철호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 〈복상〉에도 인터뷰(2016년 1월호 ‘사람과 상황’_10년 넘게 금융소외계층의 파산·회생 돕는 김철호 목사)했듯, 지역의 변호사와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적협동조합 민생네트워크새벽’을 설립해 취약계층에 채무, 복지 관련한 전문적이고 실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가까운교회’를 이끌고 있다.
올해 2월부터 실험적으로 모이는 공동체다. 매주 스무 명 정도 모이는데, 교단이 다 다르다. 환경운동연합 교육실을 빌려 예배를 드린다. 매달 페이스북에 재정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헌금 중 필수 활동비를 제외하고는 다 어려운 분들 돕는 데 쓴다. 여기서 필수 활동비는 10%의 적립금, 20% 목회활동비, 장소 대여료가 전부다. 나머지 재정은 이웃의 몫으로 사용한다. 인근 쪽방에 계신 어르신들도 돕고. 이번 달부터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성적과 상관없이 주는 거다. 우리가 주는 것인 줄 모르게 학교에서 주는 것처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식으로 매달 마지막 날에는 재정을 0원으로 만든다. 10%씩 적립한 금액이 9개월 만에 100만 원이 됐다. 그것도 다 교회 바깥을 위해 쓸 생각이다.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는 실험이지만,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이웃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을 새삼 깨닫는다.

   
▲ 가까운책방 앞 벤치에서 김신일 목사  ⓒ복음과상황 이범진


그래픽노블 서점 대표로서, 목사로서, 사회운동가로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청소년, 청년들의 진로 고민을 돕고자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페토 사회적협동조합’과 연결되어 중학교 두 곳에서 방과후학교를 하게 됐다.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 ‘감잎 이야기’를 한다. 우리 집 앨범에는, 1958년도 감잎이 한 장 끼워져 있고 그 내력이 이렇게 적혀 있다.

 
   
 
 

‘값지고 귀한 것을 선물로 드리려 생각해보다 찾지 못하고, 귀히 보관하던 이 잎을 일기장에서 떼어 신부님께 드립니다. 1958년, 지금은 어머니가 된 어느 여인이 소녀 시절에 따서 고이 간직한 잎입니다. 1966년 7월, 그의 여동생이 언니가 자기에게 준 귀한 것이라고 국민학교 학생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일기장 맨 앞에 부착시켜준 지도 3년, 자랑으로 삼다 친구의 신부님께 드리오니 감나무 많은 강진골에 계실 때 그 감잎들과 비교하며 즐거운 앞날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상인 친구 기성.’

상인이 내 아버지다. 그러니까 아버지 친구가 친구의 아내인 내 어머니에게 선물로 준 거다. 친구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을 때, 이 선생님에게 뭔가 드리고 싶었던 학생이 언니가 시집가면서 자기에게 줬던 그 감잎을 선생님에게 준 거다. 그것을 우리 부모님이 결혼할 때 어머니에게 준 거다. 1958년에 우리나라에 감잎이 얼마나 많았겠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텐데, 그 모든 감잎과 이 감잎은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게 스토리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감잎이 가진 이야기가 그렇게 소중하듯, 우리가 각각 삶과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지나온 과거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수도 있는데 자기의 지난날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여러 만화를 추천할 수도 있지만, 그래픽노블을 볼 때 그 이야기에 주목해서 보시면 좋겠다. 또 만화는 그림을 보는 거니까, 한 컷 한 컷 그림에 담긴 의미도 주목하면 좋다. 옛날 영화인데 <스모크>(1995)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거리를 카메라로 찍어 스크랩하는 담배 가게 주인이 나온다. 무려 14년 동안의 사진들인데, 나중에 임신한 아내를 하늘로 보낸 작가가 그 무의미해 보이는 사진들 속에서 자기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천천히 볼 때야 발견할 수 있는 거였다. 똑같지 않다. 뻔하지 않다.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인생에서 그런 의미 있는 장면들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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