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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와 평화운동
[337호
[337호] 2018년 11월 28일 (수) 14:29:08 정지석 goscon@goscon.co.kr
   
▲ 퀘이커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퀘이커 앰블런스 구조대' 활동을 통해 폭격을 무릅쓰고 생명을 구조하는 자발적인 '대안적 봉사'를 벌였다. 이것이 오늘날 대체복무의 시작이며, 그들의 봉사 활동은 1947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사진: www.quaker.org.uk)

‘양심적 병역 거부’가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고 우리나라에서도 법적 정당성을 받았습니다. 군복무는 국가안보를 위한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해온 사람들에게는 충격이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가 20세기 주요한 평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평화주의 양심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줄곧 있었고, 주요한 이유가 ‘양심’입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도덕적·정신적·지적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대법원 판결문 2018년 11월 1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안보를 위한 병역의무 또한 국민이 지켜야 할 일이며 양심과 충돌하지 않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으나, 양심적 병역 거부는 병역의무와 양심이 충돌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 양심이 왜 군복무와 충돌하는 것인가가 중요한 논점인데, 여기에 ‘평화주의 양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양심은 행동의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의식을 의미하지만, 평화주의 관점에서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신이 거주하는 자리라는 종교적 의미로 이해됩니다. 이 점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즉, 평화주의자들에게 양심은 국가권력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며, 국가의 요구와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 평화주의자들은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행동을 합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평화주의 신앙양심과 국가 를 위한 병역의무가 충돌했을 때 신앙양심을 따르는 행위인 것입니다.

평화주의 양심은 전쟁 자체를 거부하고 또한 전쟁 참여를 거부하는 양심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국가권력보다 개인 양심을 더 중시하는 태도입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평화주의 양심의 지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전쟁 시기 양심적 병역 거부는 전쟁참여 반대의 행동으로 표출되었고, 평화 시기(휴전 시기 포함)에는 전쟁훈련 반대 행동으로 전개됩니다.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국과 미국의 퀘이커들이 양심적 전쟁 거부, 징집 거부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미국의 메노나이트 교회와 브레드린 교회가 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평화주의 신앙양심을 따라 세상의 전쟁 참여를 거부하는 이 세 교회는 ‘역사적 평화교회’(Historic Peace Churches, HPCs)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전쟁 전후로 우리나라에서도 활동했고 소수의 한국인 신자들이 현재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따름에 있어 살인무기인 총을 들기를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군복무 거부자가 되었습니다. 엄밀하게는 전쟁과 전쟁도구로서 군대를 거부하는 역사적 평화교회들과, 집총을 거부할 뿐 군대 제도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 사이에는 입장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평화주의 신앙양심의 큰 틀에서 보면 모두 양심적 병역 거부 평화운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퀘이커의 양심적 전쟁 거부·병역 거부 운동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은 20세기 두 번의 세계전쟁 중에 일어난 대표적인 평화운동입니다. 1차 세계전쟁 중에 영국에서 전개된 퀘이커들의 양심적 전쟁 거부, 징집 거부 운동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퀘이커들은 17세기 중반 영국에서 퀘이커 운동이 일어난 이래 고수해온 평화주의 신앙에 따라 20세기초 영국이 참전했던 1차 세계전쟁에서 국가의 징집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징집 명령에 따라 군대에 갔지만, 퀘이커들은 신앙양심을 우선적인 행동 기준으로 삼고 징집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평화주의 신앙양심에 따른 이런 행동에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란 말이 이때 처음으로 쓰였습니다.

영국 정부는 퀘이커들의 양심적 거부를 인정하고 법적 징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1660년 어떤 목적과 이유에서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평화주의 신앙 신조를 선언한 이래 그것을 고수해온 퀘이커들의 신앙양심을 존중한 결정이었습니다. 퀘이커들은 강제 징집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국가 안보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판단한 결정입니다.

이때 전쟁에 나가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군대 징집을 피하고자 갑자기 퀘이커 교도가 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기독교 소수 종파였던 퀘이커리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부쩍 증가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대목은 오늘 우리나라 보수 기독교가 염려하는 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보수 기독교계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비난하며,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일고 있는 점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군대 가기 싫어하는 청년들이 군 기피 목적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될 수 있다는 염려와 분노를 표출하는데, 영국 사례를 볼 때 이는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면 병역 도피자들이 모여든 여호와의 증인은 쇠망할 것입니다.

한국 보수 기독교가 배우고 도전받을 점은 평화주의 신앙의 진정성입니다. 퀘이커들의 양심적 전쟁 거부 운동은 초기에는 일반 시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리어 존경을 받았습니다. 영국 사회에서 주류 기독교는 쇠락을 거듭하여 지금은 존재감이 없지만, 소수 종파인 퀘이커 모임에는 젊은이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으며, 특히 지식인들이 좋아하는 평화의 종교로 좋은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경험을 오늘 한국 보수 기독교는 눈여겨봐야 합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아오면, 1차 세계전쟁 중 퀘이커들의 양심적 전쟁 거부 움직임에 대해 정부는 인정했지만, 일반 시민들의 감정은 달랐습니다. 시민들은 전쟁터와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퀘이커들을 매국노, 비겁한 겁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전쟁 중에 열광적 애국주의가 불타올랐고 분노한 시민들은 퀘이커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퀘이커들은 시민들의 감정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도피자, 매국노, 비겁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무언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선한 일을 해야 한다,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겪는 위험과 곤경 못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하자는 결심을 실행에 옮깁니다. 퀘이커들은 이 일을 ‘대안적 봉사’(Alternative Service)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체복무의 시작입니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평화주의 신앙양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퀘이커들이 벌인 대안적 봉사는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일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부상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일에서부터, 포로를 돌보는 구호 활동, 파괴된 집과 도로를 고치는 복구 활동, 정신병원과 고아원 등에서 소외된 이들을 돕는 사회복지 활동 등이 그것입니다. 전쟁터의 위험보다 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하는 일로서, 퀘이커의 양심적 거부자들이 벌인 대표적인 봉사 중에 ‘퀘이커 앰블런스 구조대’ 활동이 있습니다. 그들은 폭격이 진행되는 중에도 무너진 건물 속에 쓰러져 있는 시민들을 구조했습니다. 이를 지켜 본 런던 시민들은 퀘이커 양심적 거부자들이 겁쟁이, 도피자, 매국노가 아닌 부상당한 사람들을 구하려고 목숨을 내걸고 일하는 좋은 사람들(good men)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퀘이커들의 대안적 복무 활동이 양심적 거부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대체복무는 적극적 평화행동이다   
이번에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판결에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 대체복무 제도를 병역법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복무의 기간과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체복무의 정신은 어떤 것이었는가, 어떻게 출발한 일이며 그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대체복무는 양심적 거부자들의 평화주의 신앙양심에서 출발한,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책임 행동입니다. 감옥행 대신 선택하는 징벌이 아니며,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고, 평화주의 양심을 실천하는 숭고한 일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정해주는 일보다는 스스로 자발적인 마음에서 봉사의 일을 찾아 하는 것이 본래 정신에 맞습니다. 지금 논의되는 대체복무 제도는 이런 기본적인 평화주의 양심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복무기간이나 일의 내용을 국방부가 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부터 바꿔야 합니다. 대체복무의 주체를 국방부에서 양심적 거부자 당사자로 바꿔야 합니다. 양심의 실천은 양심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양심적 거부자들과 상의하고 협력해서 정하는 것이 좋은 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체복무를 입법화하자는 운동은 2000년에 이미 일어났습니다. 국회의원들과 많은 지식인들이 입법 청원을 서명하면서 추진했으나 보수 기독교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되었습니다. 지금도 보수 기독교계가 가장 심하게 반대하면서 대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모두 대체복무제 도입을 결정했지만, 보수 기독교계는 이를 비난합니다. 비난의 요점은 양심적 거부 합법화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침해하고,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특혜 입법이란 것입니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현황과 함께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방력, 국민의 높은 안보의식 등에 비추어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고 하여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2018.11.1.)라고 한 판결문과 동떨어진 입장입니다.

우리 사회가 처음 가는 길이에 많은 우려와 걱정이 앞서겠지만, 기본 정신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체복무는 평화주의 양심의 행동이자 실천입니다. 이 정신에 입각해서 대체복무 논의는 시작해야 합니다.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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