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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탄절이다
[337호 쪽방동네 이야기]
[337호] 2018년 11월 28일 (수) 14:52:36 이재안 goscon@goscon.co.kr
   
▲ 주민노래모임 멤버들 (이하 사진: 이재안 제공)

2년 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2세 리 슬라브 형님의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했었다.(2017년 1월호) 형님은 한국에 일하려고 왔다가 간경화와 만성질환으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 땅 부산에서 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 형님 이야기로 시작한 글 나눔이 이제야 종착지에 다다랐다. 애초에 1년 동안 연재하기로 했지만, 2년으로 연장되고 올해는 격월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형님 유골은 아직 우리가 보관하고 있다. 아들이 가지러 오기로 했는데…, 벌써 2년째 무소식이다. 어떻게 할지 늘 고민이다.

지난 8월 24일, 한 대학병원에서 폐암으로 투병하던 고시텔 어르신 가시는 길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저 병원에 잘 계신 줄 알았는데, 씁쓸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9월 말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고시텔 주인에게 전화하고 주민센터 주무관에게 간단히 확인하고 추모공원 홈페이지를 검색하니 그렇게 기록됐다. 추석 연휴에 교우 세 명, 형님 동생과 추모공원에 갔었는데 그 생각을 놓쳤다.

인연과 정으로 살아간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주민노래모임의 소식부터 전하고 싶다. 자그마한 열매로 작은 음악회를 연다. 12월 6일 목요일 5시에 시작한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음악회를 준비 중이다. 같이 모였던 분 중에 홍일점이었던 조용애 누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지난 4월 18일이었다. 우리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노래모임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 조용애 누님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해수욕장에 가서 모래찜질도 하고, 가을에는 쿠바 가수의 콘서트도 보러 가고, 노래방에 가서 고함도 지르고 연극도 함께 보러 갔다.

좌충우돌 이렇게 지내왔다. 함께했던 ‘막걸리 청년’도 얼마 전 우리 동네를 떠났다.(8월호)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작은 희망으로 노래한다. 우리를 도와주는 좋은 선생님이 있다. 두드림 인형극단 박은희 대표다. 인연으로 알게 되어 은총으로 연결되었다. 얼마 전에는 전자오르간 키보드도 기부해주셨다. 알고 보니 오빠가 작은 음향회사를 운영하시며 평소에도 찬양사역을 하러 다니는 분이셨다. 우리가 모르는 천사가 곳곳에 있다.

태씨 형님은 지난 이른 봄, ‘페암 3기B’로 진단되어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했다. 큰 고통의 터널을 함께 지나왔다. 2년 전부터 유난히도 온몸이 아프다, 난리를 쳤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내가 짜증이 나서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그때 암이 진행되는 몸 상태였구나, 그래서 그렇게도 아프다 아프다 했나 보다. 10월부터는 추가로 생긴 작은 종양이 발견되어 치료받고 있다.

그런 태씨 형님이 송도해수욕장 옆 암남공원 해안 부둣가, 평소 시민들이 많이 찾는 낚시 포인트에서 의대생 동아리 ‘라포’ 학생들과 함께 야간 낚시를 함께했다. 형님은 낚시 전문가다. 아픈 몸이지만 그동안의 인연과 정으로, 새벽이 맞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며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잡은 생선들도 숯불에 구웠다. 학생들은 연신 맛있단다.

생명 순환의 원리로 살아간다
일교차가 심해지는 늦봄, 늦가을은 심신이 아픈 이들에게 잘 견뎌야 하는 시기다. 할머니 할아버지만 힘든 게 아니라 멀쩡하게 보이는 76년생 남자도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다. 11월 4일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즈음, 정씨 동생 고시텔에 들렀다. 대낮인데 얼굴은 퉁퉁 부어 있고 쿨쿨 정신 놓고 자고 있다. 좁은 방을 둘러보니 소주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술을 계속 먹은 것 같았다.

고시텔 좁은 방 침대 아래를 뒤져보니 4홉들이 플라스틱병이 서너 개 나온다. 한숨을 푹푹 쉬고,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너무 화가 나서 입에서 쌍욕이 나온다. 하지만 어쩌랴 병든 마음이 병든 몸으로 연결되었으니 정신을 차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꼬박꼬박 약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술 대신 다른 대안을 잘 사용해 조금씩 나아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아프고 힘들고 괴로울 때는 더 마음 열고 온몸으로 마주 보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마주 보면 서로 힘들다. 지켜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모른 척하고 싶다. 그럼에도 두서넛 동지가 되어 끝까지 버티고 마주 보아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밀고 들어가서 서로 직면하고, 그 동굴을 통과해야 우리 삶 가운데 밝은 누리가 펼쳐진다.

우리 마음속에는 아기, 엄마, 아빠가 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괴로워 다른 것으로 대치해서 욕구와 욕망을 해소하려 한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대는 버리고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뚜벅뚜벅 버텨가며 진중하게 바라보고 기대하며 기다리자. 여전히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더러운 입 냄새가 진동을 하고, 서로 탓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는 위선과 기만의 부패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래도 함께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인다. 지금 여기, 곧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제일이다.

11월 5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드디어 의료원 소화기 내과로 정씨 동생의 입원이 진행되었다. 의사가 간단히 말한다. “입원해서 잘 치료합시다. 알겠지요?” 입원시키고 돌아오니 담당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금단현상이 우려되는데 밤에 같이 계실 수 있는지 묻는다. 내가 말했다. “예전에 금단현상이 있었는데 심하지 않으셔서 괜찮으실 거예요. 혹시 긴급한 일이 생기면 야간에라도 전화하셔요. 제가 금방 갈게요.” 그렇게 말을 전하니, 간호사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지난 이틀 동안 아무 일 없었다. 오늘 오전에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단다. 생명 순환의 원리에 따라 생사고락을 함께하리라 다짐한다.

   
▲ 두 눈을 마주 보고 얼굴의 표정을 세밀하게 바라보고 차가운 마음 따뜻해지라고 손잡아주고, 꼬옥 서로 껴안고 살아가도 모자라는 세상이다.

아늑한 밤, 생명은 유난히 아프다
생명…, 살음 그리고 죽음.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유난히 아프다. 한국이라는 좁은(?) 땅에서만 하루에 30명이 넘는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병원에서 도로에서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생을 마감하고,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세상에 별처럼 선물로 온다. 오는 생명들은, 천사처럼 별나라에 온다. 하지만, 가는 이들, 순서를 알 수 없이 떠나가는 인생들을 바라보는 이들은 고통스럽다. 돌발적이고 미쳐버린 듯한 죽어감의 사건들은 또 다른 아픔과 고통에 직면하게 한다. 이 죽음 그 죽어감 앞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과 온 만물이 아파하고 고통 가운데 살아간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고 내일을 희망하는 삶일 뿐인데, 갑자기 불현듯 찾아온 죽어감 앞에서는 너무너무 아프다.

우리 모두가 아프지만,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만 가장 아프다고 생각한다. 생각 틀을 바꾸지 않으면 평생을 그리 살게 될 거다. 살아있음에, 죽어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한다. 그저 한마디 농담과 쓴웃음 짓고, 주식이 올랐느니, 아파트값이 올랐느니, 신혼여행을 호주로 간다느니 따위의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민감하고 따스하게 순간순간 살아가야 하리라. 두 눈을 마주 보고 얼굴의 표정을 세밀하게 바라보고 차가운 마음 따뜻해지라고 손잡아주고, 꼬옥 서로 껴안고 살아가도 모자라는 세상이다.

항상 진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담백하고 솔직하게 가슴을 열자는 말이다. 두려움으로 방어막 치지 말고 그저 지그시 바라보자는 말이다. 사업, 업무, 운동, 사회활동으로 정의롭게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 말고, 그저 지그시 여섯 살 아이의 뽀실뽀실한 뺨과 도톰한 손등을 그저 바라보자는 말이다. 과제와 숙제, 사명에 매여 너무 무겁게 대하지 말되 생명 있음에 아니 조금 소중하게 죽어가고 있음에 민감하고 세심하게 대처하자는 말이다. 경찰도, 피시방도, 에스컬레이터도, 동생도, 좀 서로서로 모두 민감하게 순간순간을 살아가자. 살아가고 있음이 얼마나 놀라운지.

지난여름, 연극체험을 통해 관계를 맺었던 극단 ‘해풍’에서 연극 티켓을 보내줘 주민 일곱 분과 〈타미카레드〉라는 연극을 봤었다. 연극을 실제로 처음 본 분들이 대다수였다. 홍보 포스터의 문구를 배우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더욱 큰 울림이 있었다.

“사랑은 서로를 견디는 거야. 나는 당신을 견뎠고, 당신은 오늘까지 나를 견뎠어.”

“견디라”는 말, “버티라”는 말…, 극히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겐 오히려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관계의 깊이와 지속성 맥락에서 보자면 책임감과 진정성을 되새겨 볼 수 있는 말이다. 차후에 이러한 주제로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도 필요하리라.

다시 곧 성탄절이다. 아기 예수님은 다시 바닥으로 찾아오신다. 독자분들이여, 멀리 있는 예수님, 화려한 조명, 따뜻한 가스보일러 좋은 방에서 예수님을 찾지 마시라. 구석 후미진 곳, 더러운 곳, 아파하는 곳에 예수님 숨어있으니 잘 찾아보시라. 길을 나서기 바란다. 다시 광야로 가시기 바란다. 우리 몸의 아픈 곳이 중심이듯, 우리네 중심은 예수님 십자가의 그 고통의 현장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저, 시 한 편으로 마지막 데이트를 마치고자 한다.

몸의 중심   _정세훈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 ‘쪽방동네 이야기’는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볶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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