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호 스무 살의 인문학]
길거리와 시장 어귀를 나도는 광인들을 근대 국가는 억압 기제의 표현물인 감옥과 정신병원에 몰아넣습니다. 정상성을 규명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것들을 격리했던 것이지요. 마녀가 그러했듯 그들은 역겨운 목적을 갖고 마을로 들어온 악마로 취급되기도 했고, 한센병 환자를 대하듯 그들을 격리된 구역에 가둬서 ‘우리’와 존재적으로 구분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추방의 역사는 이방에 대한 공포를 다층적으로 보여줍니다. 외지의 것은 두렵고, 두렵기에 가두었으나 사실 가둔 것은 우리와 다른 것이고 그래서 더욱 무섭습니다. 그러나 균질에 대한 강박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킵니다. 외계인이나 괴수가 갑자기 등장해 온 나라를 박살내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표상인 군대와 경찰을 분쇄하며 초국가적 힘을 자랑하지요. 결벽증적인 공간에 틈입한 전적인 타자(das ganz Andere)를 보면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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