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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들고남을 알아차리는 일
New [338호 평화를 살다]
[338호] 2018년 12월 27일 (목) 16:18:35 문아영 goscon@goscon.co.kr
   
 

얼마 전 종로 3가역에서 환승을 하던 때였다. 바빠 보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뛰다시피 승강장에 도착했는데 마침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행이었다. 그 열차를 놓치면 5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줄이 좀 짧은 칸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는 바닥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등을 보았다.

바닥에 동그마니 앉은 뒷모습은 왜소했다. 종로 3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의 인상, 모르긴 몰라도 대낮부터 술에 취한 노숙인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열차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열차에 타려다가 그분이 계신 쪽을 바라보니, 사람들은 그가 거기 앉아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놀라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그를 비껴 지나가고 있었다. 열차 문이 닫혔다. 나는 열차에 타지 않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진 승강장은 고요했다. 

괜히 술주정뱅이 노인에게 봉변당하는 건 아닐까? 귀찮은 일이 생기면 어쩌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내적 갈등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연세가 꽤 높은 어르신이었다.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상태로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감아 쥔 왼손을 매우 심하게 떨고 있었다. 비닐봉지는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렸고 걱정했던 술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어르신,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힘이 없어서.”
“혹시 넘어지신 건가요?” 
“아니, 갑자기 힘이 없어서 좀 앉았어요.”
“손은 갑자기 떨리시는 건가요?”
“손은 원래 떨어요, 원래.”
“그러시구나. 근데 어디 가시는 길이셨어요?”
“집에요, 집에. 이 역에서 어떻게 나갈 수 있어요?”
“댁이 가까우셔요?”
“탑골공원 근처예요. 골목에.”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병원은 괜찮아요. 택시만 좀 탈 수 있으면 좋겠는데.”
“택시 타시려면 이 역을 빠져나가셔야 하는데, 여기서 지상까지 가시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요. 어르신, 그럼 잠시만 계세요. 제가 역무원 분들 연락드려볼게요.”
“고마워요.”

어르신의 대답은 느리고 힘도 없었지만 또렷했다. 역무실에 전화를 했고 역무원 두 사람이 곧 도착했다. 역무원들 역시 도착과 동시에 어르신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나의 질문과 비슷하지만 꽤나 다른 질문 목록이 이어졌다.

“어르신, 왜 이러고 앉아계세요?”
“…….”
“어르신, 손은 원래 떠셨어요?”
“예.”
“병원엔 언제 가셨어요?”
“…….”
“집에 누가 계세요?”
“…….”
“아니, 몸이 이래가지고 어떻게 살아요?”
“…….”

걱정이 담긴 듯은 하나 그다지 위로는 되지 못하는 질문들이 몇 차례 더 이어지자 어르신은 대꾸를 않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냥 택시만 좀 태워주시오. 탑골공원 뒤에 제 집이 있어요.” 어르신은 한사코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내가 모시고 병원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인지라 역무원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지금 지원할 수 있는 별도의 서비스는 없다는 응답을 들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던 역무원 두 사람과 나는, 일단 원하시는 대로 댁에 모셔다 드리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다. 역무원 한 사람이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어르신을 부축하여 휠체어에 앉혀드렸다. 가벼워 보였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힘이 풀린 다리는 휠체어에 앉은 다음에도 발판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렸다. 어르신의 두 발을 하나씩 휠체어 발판에 올려드렸다. 어르신은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셨고 나는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30분쯤은 족히 흐른 듯했다. 그 사이 열차는 쉼 없이 지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어르신을 부축하다 균형을 잃어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이 시리도록 차가왔다. 그 얼음같이 차가운 바닥에 앉아 표표히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얼마 동안이나 바라보셨을까. 힘없는 그 목소리로 도와달라고는 해보셨을까? 1호선 인천 방향 승강장 6-2, 빠른 환승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내리는 바로 그 승강장에서 단 하나의 발걸음도 멈추어 세우지 못한 존재는 사물처럼 거기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마치 지하철 승강장에 있던 벤치나 기둥, 바닥의 타일처럼.

그가 오래도록 앉아 있던 자리, 그의 체온으로 덥혀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차가운 바닥, 그리고 그를 지나쳐간 여러 모양, 여러 형편이었을 삶들을 생각한다. 그에게 말을 걸기 직전까지 망설이던 나의 마음과 그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찌푸렸던 내 미간의 움직임을 기억한다. 지나쳐버리는 것이 멈추어 서는 것보다 훨씬 쉬운 세상에서, 어디에도 상이 되어 맺히지 못하고 흩어져버리는 일상의 장면들 속에서 서로를 알아차리는 일, 이것은 평화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일상의 장면들, 그 시공간을 함께하는 존재들의 들고남을 알아차리는 것, 작고 약한 고통의 신호들을 서둘러 알아차리는 것, 그리하여 그 풍경 속에서 그가 ‘사물’이 아닌 ‘사람’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평화가 어떠하다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문아영
피스모모(
www.peacemomo.org)라는 평화교육 단체를 2012년에 설립하여 함께 운영해오고 있다. 실천적으로 사유하는 삶에 관심이 많다. 네 마리의 고양이, 새촘이, 우아, 레오, 라라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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