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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판
[339호 평화를 읽다] 2019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로 한반도 정세 읽기
[39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1:24:19 윤환철 goscon@goscon.co.kr
   
▲ 지난 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중계한 <조선중앙통신> 화면 갈무리

비핵화 의지의 전언(傳言), 활자, 육성 버전
2018년 3월 6일 특사로 북한에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측이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으며,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의제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고, 대화가 지속하는 동안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4월 21일에는 “주체 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 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다는 소식을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이 알렸다(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 이 발표 한 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며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This is very good news for North Korea and the World-big progress! Look forward to our Summit)”고 밝혔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비핵화 대화 의지’와 ‘비핵화’는 다르다” “미국의 요구에 맞췄지만, 우리에게는 부족하다”라는 등 의심을 거두지 않았었다.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던 것은 북의 행보가 미국과의 대화를 위한 미국의 숙원을 들어줄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습니다”라고 한 것은 지난 3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전해진’ 핵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이 권력 핵심부의 공식 입장이었음을 육성으로 확인한 셈이다. 박지원 의원은 이를 ‘모라토리엄 → 동결 → 북미 간 신뢰 회복 후 완전한 비핵화’의 3단계 중 동결 단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미국과 국제사회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사찰, 핵 관련 시설 신고와 폐쇄·불능화·폐기로 이어지는 표준화 된 절차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2009년 추방되었던 IAEA 사찰단의 재진입을 생각한다면, 북한은 미국과 사찰과 제재 해제를 주고받는 협상을 하자고 명백하게 말한 셈이다. 신년사는 ‘가혹한 경제 봉쇄와 제재’를 비핵화 부분이 아닌, 말미에 주어가 없이 배치함으로써 제재 해제를 ‘구걸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그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임을 드러냈다.

‘진정성’의 미국 버전
북한은 뭘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존재였고, 특히 미국에게는 멸시의 대상이다. “정상회담을 개최할 때마다 김정은이 자신을 합리적인 사람으로 묘사 …”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김정은은 미쳤기 때문”에 제재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 공화당 마르코 루비오 상원 외교위원의 입에서 나왔다. 민주당의 벤 카딘 상원 외교위원은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북한의 비핵화 계획이 마련된 이후”에 하라고도 했다. 사실상 회담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미국 조야에서 회담을 지지한다 해도 기대가 약하거나, 미국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중국이 뭔가 해야 한다는 식의 떠넘기기가 일반적이다. 다만, 연방의회 개원식에 참석했던 미주한인유권자연대 김동석 대표는 주요 의원들의 냉소는 전보다 줄어들었고, 한미 관계가 탄탄하므로 북미 관계도 긍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한다.

사실 미국의 대북 정책을 보면 오랫동안 서서히 합리성을 소모해버린 것 같다. 결과를 담보한 회담만이 가치 있다거나, 이미 만나 대화하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거나, 중국을 견제하면서 중국이 자신들에게 뭘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의 우스꽝스러운 집단지성을 볼 때 그런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집단 간 적대적 관계에서 상대의 진정성은 내가, 나의 진정성은 상대가 변수일 수밖에 없으며, 일방에게 사전(事前)의 ‘진정성’을 논하는 것은 하나 마나 한 소리이거나 대화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통상 미국과 미국인들이 합리적인 지성을 가졌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지루한 반복은 피로감의 표현이고, 또 다른 피로를 유발하는 기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으며, 영리적 사업에 대한 도전과 성과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온 인물이다. 그는 피로감을 덜 느낄 뿐 아니라 상황 반전에 성공했을 때 얻어낼 수 있는 평가를 생각하면 ‘북핵 문제의 해결’과 그 이상의 과제에 도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결국, 미국판 ‘진정성’은 오랜 피로감과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현상 유지 세력을 극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필, 그러한 역사적 혁신을 이른바 ‘주류’ 정치인이 아니며, 미국과 세계의 지성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트럼프가 치고 나간다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주류라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반성할 일이다. 70년 이상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며, 미국의 국제 갈등 역사를 봐도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2018년 11월 중순 남측 병력과 북측 병력이 지뢰 제거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인근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제공)

‘우리민족끼리’의 새 버전
북한의 ‘자주’니 ‘우리민족끼리’니 하는 말은 외세, 즉 미국을 배제하자는 언술이었다. 김무성이 유세장에서 흔들어댔던 ‘2007년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의 전문(全文)에는 예의 ‘자주’를 내세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자주국방’ 하는 나라는 미국뿐이고, 나머지 세계는 모두 외교 관계로 안보를 유지한다고 일침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정일은 남한이 미국 의존적이라고 꼬집은 것인데, 노 대통령은 ‘자주’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훈계하며 대외 개방으로 유도한 것이다. 이에 김정일 위원장은 곧바로 ‘자조’라는 의미라고 수습한다.

2019 신년사에 나타난 ‘우리 민족끼리’와 ‘북남 관계의 새로운 단계’는 김정일 시대의 답습이 아니다. ‘조미관계’ ‘조미수뇌상봉’ ‘6.12조미공동성명’과 함께 ‘새로운 관계 수립’을 대미 관계의 목표로 명시하면서,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선행적 조건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이익 공동체로 민족 내부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신년사 발표 자리 뒤에 소품처럼 놓인 사진들 외에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과 신년사 전체를 통해 강조되는 ‘새로운 단계’ ‘청산’ ‘극적인 변화’ ‘비정상적인 상태를 끝장내고’와 같은 표현들을 겹쳐보면 ‘유훈’을 내세운 교조적 시대로부터 벗어나면서,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이러한 판갈이로 드러난다.

남북 간의 ‘소확행’
미국이 부여잡고 있는 ‘제재’는 그 명분상 목적이 ‘평화’다. 그러나 상대방의 적대적 행동을 바꾸는 동기부여 기능에 있어 그리 정교하지도 않고 막상 평화의 진전 상황에서 대응력이 떨어진다. 하나의 정책으로서 매우 허술한 것인데, 제재 대상에게는 맹위를 떨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제재에 대해 하나하나 찔러보는 식으로 대북 정책을 펼치고 있다. 평창 올림픽 시기의 항공기 운항, 남북 철도연결 조사에 필요한 연료 등 건건이 ‘이것도 제재 대상이냐?’고 묻는 형국이다.

인도적 지원 물자는 본래부터 제재의 예외라고 선언돼 있었지만, 막상 특정 물자가 인도적 물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절차는 없다. 유진벨재단의 스티브 린튼 박사는 ‘다제 내성 결핵’ 환자를 위한 진단 키트와 격리병동 자재를 북한에 가져가기 위해서 수년간 고생하다가 최근에야 제재 대상이 아님을 통보받았다. 수도 없이 ‘찔러본’ 결과였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국제 제재’가 이렇게 허술한 데에 놀라고, 우리 공직자들이 그에 대해 어떤 저항도 없이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현실에서 또 한 번 놀란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 제재가 겹겹이 쌓인 현실에서 북한과 ‘준법 공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남북한이 합의만 하면 제재와 무관하게 진척시킬 수 있는 평화 조치를 찾아 실현하는 것이다. 이미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정전협정을 그대로 준수하기만 해도 “한강하구(강화도·교동도와 북한 황해도 사이)의 ‘민용 선박’ 항행이 가능”하고,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 사이에 어떠한 적대행위도 금지”할 수 있으며, “비무장지대 내에 전부 들어있는 도로로써 연결되지 않는 경우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지역을 통과하는 이동의 편리”를 제공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비무장지대 내 지뢰 등 위험물 제거, 전사자 유해 발굴, 반출, 매장 자료 상호 교환”도 가능하다. DMZ는 말 그대로 ‘비무장’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엄격했던 판문점과 JSA는 모든 시민에게 근교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고 화상 상봉 등 방법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권 실현’의 가장 시급한 조치로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하다.

‘준법투쟁’이 연상되는 이러한 행보는 미국의 태도 변화와 무관하게 누릴 수 있는 공적·사적인 행복을 찾아내는 일이다. 신년사는 여기에 더하여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는 ‘소확행’을 제안했다. 이러한 부분도 ‘우리민족끼리’의 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 내부 관계를 증진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 평화 체제에 대한 의지를 각인하려는 것이다.

오래된 불일치에서 합당한 불일치로
북한 신년사 중에서 우리를 포함해서 외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남북 관계와 대외 관계를 다루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분량이 많은 대내적 메시지는 북한 특유의 국가자본주의의 현안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분석 대상이 되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다그치고’ ‘다지고’ ‘강화하는’ 류의 사회주의 도덕 강화는 외부인들에게는 지루하다.

우리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선순환과 평화적 진전에 대한 비전을 적극 지지하지만,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 일당 독재에 국가 주도 경제를 강화하는 것까지 지지하지는 않는다. ‘최고 령도자’가 일일이 ‘석탄공업’ ‘전력’ ‘제철’ ‘비료’ ‘수산’ ‘축산’을 챙기는 식의 체제에서 경제적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북한은 우리가 맘 놓고 지지해줄 만한 체제 혁신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의 변화를 좀 기다리는 입장에 있어도 좋을 것이다. 대외 정책과 고위 정치의 혁신을 전면적 내부개혁과 함께 추진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다만, 신년사 자체에 언급했듯이, ‘인민을 위해 밤잠을 잊고 피타게 사색’하고, ‘인민의 높아가는 웃음소리에서 투쟁의 보람을 찾’는 관료와 엘리트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변화가 수반된다면, 북한의 체제 부문을 지지하지 않지만, 그들 나름의 맥락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있을 수 있는 불일치로 접어두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누가 새 판을 열 것인가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패드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준 ‘4분 30초짜리 영화’가 있었다. “소수의 사람만이 역사를 바꾸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두 가지밖에 없다. 후퇴하는 것 아니면 전진하는 것” “우정, 신뢰, 선의가 있는 세계에 합류하라” 등 신파조의 내레이션이 담긴 영상은 회담이 마치기를 기다린 기자들에게도 상영됐다. 설득 같기도 하고 협박 같기도 한, 조금은 유치해서 외교적 결례가 아닌가 싶었지만, 북측은 별문제로 삼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머뭇거리고,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미국의 조직과 세력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다. 신년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진정으로 평화를 바라는 나라라면 현 국면을 소중히 여겨야 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밝힌 대로 주도적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석 대표가 전한 미 의회의 분위기 변화를 주목한다면, 전례 없이, 남북, 북미, 한미 관계의 선순환 가능성이 열렸다. 많은 세월 동안 어느 하나가 좋으면 어느 하나가 나빠지는 역학에서 벗어날 희망이다. 오랜 절망에 갇혀서 희망을 낯설게 여기고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이 있지만, 분단 이래 지금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진정성’은 상호의 행동으로 현실이 될 수 있으며, 새 판은 가장이든 진의든 그 진정성에 기반한 행동이 누적되어 형성된, 불가역적인 평화의 국면이기 때문이다.


윤환철
시민사회운동가. 〈복음과상황〉, 남북나눔운동, 한반도평화연구원(KPI)에서 일했다. 북한과 경제협력,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 실무차 평양, 신의주, 개성 등지를 왕래했다. 성공회대에서 NGO를, 연세대에서 통일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미래나눔재단 사무총장으로 탈북민 장학, 취업 창업 지원과 대북인도적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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