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미세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2월의 어느 날, 4월호 편집회의는 남북 관계와 평화 이슈로 정리되어 갔습니다. 어느덧 1년이 되어가는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지요. 때마침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리라는 뉴스가 보도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내 친구”라고 친근히 표현하면서 회담에 대한 기대감에 불을 지폈지만,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한 채 회담은 끝났습니다.

북미간 합의 결렬을 반기는 듯한 이들을 보면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훼방하며 ‘역모를 꾀한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던 산발랏과 도비야 일당을 떠올렸습니다(느 4:1-3; 6:1-9). 평화협정까진 아니더라도 종전선언이나 최소한 개성공단 재개를 기대하던 여론은 실망한 기색이었지요. 그러나 두어 해 전까지도 전쟁위기론이 언론에 공공연히 오르내리던 극한 갈등 상황이었음을 생각할 때, 적대적 원수지간이던 북미 양국 정상이 2차 회담에 이어 다음을 기약하며 웃으며 헤어지는 장면은 분명 지금까지 없었던 진보일 터입니다. 

양측의 합의 불발로 편집팀도 잠시 고민했으나, 시편 기자가 예루살렘의 평화를 간구했듯(시 122:6) 오늘도 ‘휴전 중’인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주제를 고수했습니다. “분단이 우리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299호·2015년 10월호), “사드 한반도 그리고 한국교회”(310호·2016년 9월호), “한반도 샬롬”(331호·2018년 6월호) 등 근 4년 사이 ‘한반도 평화’ 이야기를 같은 맥락에서 꾸준히 다루어 왔습니다. 이렇듯 “네 성벽 안에 평화!”(시 122:7)를 거듭 바라고 말하다 보면, 평화의 소망을 담은 말들의 온기가 한반도의 봄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지요. 

연결선상에서, 이번 커버스토리는 한반도 정세와 평화 여정에 대해 비교적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를 담아보려 했습니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북한 체제와 정치 구조를 오랫동안 경험한 관점에서 남북관계 및 북미회담 이후를 조망하고 평가합니다. 그 뒤를 북한학자이자 시민운동가인 윤은주 평통연대 사무총장의 남북간 대화와 합의에 대한 개괄과, 보수정치학자인 박문규 미국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날대학 학장의 북미회담 및 한국의 역할 분석, 북한 연구자인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의 남북 경제협력의 미래 조망 등이 이어집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사회 활동’ 통계 자료와 판문점 선언 이후 진행되어온 남북 교류·협력 현황을 읽다 보면, 남북 통합과 한반도의 미래를 품고 기도하게 되더군요. 지금은, 성벽 공사를 훼방하는 안팎의 대적에 맞선 느헤미야의 기도(느 4:4-5, 9)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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