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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들
[341호 믿는 '페미'들의 직설]
[341호] 2019년 03월 29일 (금) 14:59:08 폴짝 goscon@goscon.co.kr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그 후로도 그들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공주와 왕자 이야기는 늘 이런 내레이션으로 끝났다. 왕자가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면서 막을 내리는 이야기 말이다. 결혼식 이후의 삶은 나오지 않았고, 누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결혼 이후의 삶은 더 이상 동화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걸까?) 그들이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고 결혼에 ‘골인’했으니 그거면 된 거였다.

굳이 상상해보자면 공주와 왕자가 결혼해서 딸이나 아들을 낳고, 누가 아프거나 혹은 죽거나 실패하지도 않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의 반대편에는 주로 마녀가 있다. 늙고, 어둡고, 나쁜 마녀. 그리고 그 마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마녀는 나빴고, 마녀의 계획은 늘 실패했으며, 혼자였다. 애초에 나쁜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고, 혼자인 사람이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상상되지 않는다. 이 익숙한 서사들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비혼 여성의 삶 왜곡하는 ‘골드미스’ 프레임
나는 함께이기보다는 기꺼이 혼자이기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내 취미가 동그라미 그리기, 책 읽기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동그라미만 그리고 책만 읽던 내가 초등학생일 때, 신문이나 뉴스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골드미스’라고 호명하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인터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한 번은 신문에 실린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었고, 독신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미디어가 골드미스를 설명하던 방식은 일관적이었다. 사회가 규정한 결혼 적령기를 넘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고, 전문적인 직업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그리고 그 경제력으로 외제차도 타고 취미 활동도 즐기는 구매력 있는 소비 주체. 그러니까 골드미스라는 말은 그냥 결혼하지 않은 여성보다 ‘돈’(골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혼 여성을 향한 이러한 시선이 비혼 여성의 삶을 지나치게 축소했던 것 같다. 나처럼 꼬인 사람은 당시에 성인이었다면 ‘그럼 돈 없으면 혼자 살면 안 된다는 거야? 성별 임금격차가 얼마나 나는데! 돈이나 더 주면서 골드, 골드 하던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어쨌든 그 시절 초등학생인 나는 그들 존재에 비추어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꿈꿀 수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초등학생이 ‘독신’으로 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꽤나 허무맹랑해 보이다 못해 귀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뭇 진지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독신주의자예요”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그때마다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꼭 그렇게 결혼 안 한다고 하던 애들이 제일 먼저 하더라.”
그때 나에게 그 말은 저주와 다름없었다. 그때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여성의 오롯하고 충만한 삶은 잘 상상되지 못한다.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왜 어른들이 항상 그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억울했지만, 지금은 옅은 분노와 함께 (빈곤한 상상력에) 안타까움과 지루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근데 저 지금 결혼해도 일찍은 아닌 거 아시죠?(웃음) 진짜 결혼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하지 않겠다는 나에게 ‘그런 애들이 빨리 결혼한다’는 식의 대답으로 무례와 오지랖을 범한, 그리고 지금도 범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결혼이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거다. 과거엔 남자들이 ‘상투’를 틀면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이라고 인정하고 대우해줬다고 하니 그런 문화가 흐르고 흘러서 결혼이 중요한 생애 과업이 되었을 수도 있다. 교육과 사회 진출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결혼이 ‘보호’ 혹은 ‘안정’과 연결되었을 거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에게 기대되는 여성상을 떠올려 보면,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시켜 온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실제 결혼 후의 삶과는 별개로) 결혼을 행복, 안정, 결실, 성숙 등의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비혼은 위험, 불행, 불안정, 혹은 미성숙함의 상태로 연결지으면서. 하지만 묻고 싶다. 그 당연함과 자연스러움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당위와 의무, 책임을 따르는 삶이 진실로 ‘나’를 찾는 삶과 닿아 있는 것이냐고.  

교회 내에서 ‘불청객’ 취급을 당하는 이들
그렇다. 나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사랑, 더 나아가 내 삶의 결실과 종착을 결혼에 두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을 가장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곳은 어디일까? 바로 교회이다. 결혼하지 않은 채 교회 청년부에 계속 남아 있는 청년은 줄곧 미처 치우지 못한 짐 취급을 받거나 ‘바울의 은사’를 받았냐며 놀림의 대상이 된다.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청년부 담당 간사가 결혼하지 않은 언니에게 “위에서 꽉 막혀 있어서 아래 동생들도 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며 채근을 했고, 은근슬쩍 전도사와 소개팅을 권했다. 더 적극적으로는 교회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안) 하는 상황을 우려하여 교회끼리 수련회나 체육대회를 빙자한 ‘만남의 장’을 여는 교회도 있다면서,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이야기하는 사역자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부담과 어색함에 못 이겨 청년부를 떠나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도 있다.

당장 나만 해도 ‘결혼하지 않고 교회에 계속 있으면서 청년부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면 답답하다. 내 위 청년부 선배 중에 비혼으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답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이다. 규모가 작아서 부서를 나이대로 구분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새로운 형태의 결합을 선택했다고 해서 불청객처럼 공동체에 남아있는다거나 조언을 빙자한 간섭까지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불청객 취급받는 이들은 비단 비연애·비혼 청년들만은 아니다. 교회가 규정한 ‘정상’에 속하지 않는 많은 이들 역시 교회에 가면 ‘공동체적’이라는 탈을 쓴 무분별한 질문과 선을 넘는 관심을 ‘당하거나’, 혹은 있어도 없는 존재처럼 지워지는 무관심을 경험한다.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는 가족이 그렇고, 모나 부가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가족, 조모부가 손자를 기르는 가족,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린 가족들이 주로 그렇다. 이혼한 가족, 장애를 가진 구성원이 있는 가족, 구성원이 아픈 가족,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커플도 그렇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가거나, 반려동물이나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도 개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마 지금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그만큼 교회와 사회에서 지워진 가족들도 많을 것이다. 과연 교회가 환영하는 ‘정상 가족’의 기준을 나열했을 때 실제로 그 기준에 딱 들어맞는 가족이 있기는 할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교회가 당연시하는 그 ‘정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정상성이 진정 예수를 따르는 길과 닿아 있긴 한가.

‘부케’를 받지 않은 이유
작년 11월 결혼한 친구가 결혼 전에 한 번 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당연히 청첩장을 주겠거니 생각하고 나갔는데 부케를 받아줄 수 있냐고 했다. 생각해보니 친구들이 함께 있는 메신저에서 부케 받을 사람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고, 부케는 응당 남자 애인이 있고 ‘곧 결혼하겠거니’ 싶은 신부의 친구에게 부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결혼했거나, 부케를 이미 너무 많이 받았거나, 애인이 없었으므로 내가 봐도 부케를 받을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렵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결혼 자체나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고 있다고. 부케는 못 받지만 더 열렬하게 너의 결혼과 이후의 삶을 응원하고 축복한다고.

다행히 친구는 내 결정을 존중해주었지만 부케를 누구에게 부탁할지 고민하길래 애인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던 한 오빠를 추천했다. “그 오빠는 어때? 그 오빠라면 한다고 할 것 같은데!” 친구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화답했고, 연애, 결혼,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한참을 더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졌다. 몇 달 뒤 그 친구의 결혼식에서 내가 추천한 오빠가 부케를 받았다. 부케 받으러 나오라는 사진사의 말에 당당히 걸어 나가는 그 오빠를 보면서 사진사도, 뒤에 서 있던 하객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늘 의외성이 있는 그 친구답다는, 그리고 부케를 받은 그 오빠답다는 이야기를 하며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그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 잠깐 사이와 친구의 결혼식 당일까지 고민했다. 힘들게 부탁한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내 모습과 결정이 어떻게 보였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누군가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주 이상하고 별나다’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내 주변의 몇몇 사람 역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에 대해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하게 이기심(보통 이 경우 ‘애인이 불쌍하다’거나 ‘그럴 거면 연애를 왜 하냐, 얼른 애인이랑 헤어져라’라는 뒷말이 붙는다)이라거나 무책임(이 말은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혹은 ‘나 젊었을 때는~’라는 식의 애국심에 불타는 연설이 이어진다)이라는 라벨을 붙여 버리기도 한다.

그런 반응에 일일이 내 선택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결혼하는 선택만큼이나 결혼 안 하는, 혹은 새로운 방식의 결합과 관계를 상상하는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이해도,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

 

폴짝(필명)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아동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여성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전공보다 ‘캠퍼스와 세상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더 열심히 했지만 캠퍼스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성평등 없이는 하나님 나라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장래희망을 묻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장래희망은 ‘이야기 수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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